지난해 추진됐던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에 대해 관리당국인 금융위원회 실무자들은 ‘총수일가 그룹 지배력 강화’라는 공통된 평가를 냈다. 삼성 측이 재판 초기부터 삼성그룹 현안은 ‘총수 지배력 강화’, ‘경영권 승계’ 등과 무관하다고 일축해온 것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김정주 금융위 당시 금융제도팀 사무관, 김연준 전 금융제도팀장, 손병두 전 금융정책국장은 지난 7~9일 동안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6년 1~4월 간 추진된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계획’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이해했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놨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삼성그룹 미래전략실(현재 해체)은 2016년 1월 중순 금융위 금융정책국에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와 삼성생명 사업회사(자회사)로 인적분할(주주가 보유 지분율대로 신설법인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하는 계획안을 검토 의뢰했다. 삼성생명의 비금융계열사 지분 5.9조원, 지분 10.2%에 해당하는 자사주 2.1조 원, 현금 3조 원 등 자산 11조원을 지주회사에 이전하고 5.9조 원 상당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은 향후 5~7년 내 매각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지주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계열사의 최다 출자자가 될 수 없다.

김 사무관과 김 팀장은 삼성 측 계획에 대해 ‘대주주의 추가 자금 투입 없이 지분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토보고서가 담당 국장, 금융위 부위원장 및 위원장에게 보고되는 과정에서 이견은 제시되지 않았다.

해당 검토보고서 1쪽엔 “삼성그룹은 최근 수년간 계열사간 합병, 자회사 지분 매입 등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손 전 국장은 이와 관련한 ‘이건희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이재용 부회장 중심 구조로 개편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해했느냐’는 특검 측 질문에 ”그렇게 추측했다“고 답했다.

김 사무관 또한 삼성생명 현금 3조원을 지주회사에 이전하는 계획에 대해 “인적분할은 다른 기업에서도 이뤄지는데 삼성의 경우 최종 모습에서 3조 원이 신설법인(지주회사)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대주주 경영권 강화용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계획안을) 당연히 지배구조개편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3조 원은 향후 지주회사가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 지분 매입에 쓰일 예정이었다. 이 경우 △삼성생명의 유배당 계약자 보호능력 약화 △보험업법상 계약자 권익에 위배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에 계약자 보험료 동원 등의 문제가 발생해 사회적 비난이 거세게 일 우려가 있었다.

김 사무관은 법정에서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전환의 시너지 효과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우선되는 것은 지배구조 개편”이라면서 “현재 계열사 간 순환출자는 흩어져 있지 않냐.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하면 지주회사만 지배하면 아래 금융지주에 속한 자회사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관은 ‘경영권 승계 관련이라 보는 것이 (금융위) 합의된 의견이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팀장과 제가 이 건 관련해 어떻게 (경영권) 승계가 잘 되는 것인지 항상 고민을 했기 대문에 그런 인식을 공유했을 거라 추측한 것”이라 지적했다.

금융위는 삼성 측의 계획대로 집행될 시 이건희 회장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은 추가 자본 투입 없이 20.76%에서 45.78%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반면 삼성 측은 재판 초기부터 금융지주회사 건을 포함한 어떤 삼성그룹 현안도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와 관련이 없다고 변론해왔다. 삼성 측은 금융지주회사 건에 대해 “1월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특수관계인 및 자사주를 포함하면 삼성생명 지분율 과반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배력 확장·강화를 위해 전환을 추진할 이유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지난 8일 법정에서 “대주주(이건희 회장)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의결권 기준 52%로 지배에 문제가 없는 비율”이라면서 “(금융위) 계산대로 하면 지주 전환 시 의결권 기준 지분율이 52%에서 70%가 된다. 불필요하게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김 팀장은 “52%가 지배력에 충분한 진 판단이 어렵다. 나는 지분율 상승을 말한 것”이라 말했다. “지배력 강화가 전환계획의 결과냐, 아니면 목적이냐”는 질문에 김 팀장은 “목적이라 예단하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했다.

“특검, 금융위·공정위도 아냐… 행정부처 절대 안된다 반대한 게 강행된 것이 문제”

삼성 측은 지주회사 전환 건은 “사업상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현금 3조원’ 이전의 경우에도 ‘대규모 자본 확충 필요성’ 등의 이유로 택한 경영상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금융위가 제기한 금융지주회사법,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보험업법 등 위법 여부도 쟁점별로 반박했다.

▲ 사진=노컷뉴스
▲ 사진=노컷뉴스

특검 측은 본질적인 문제는 금융위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삼성이 계획을 강행한 점에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2~3월 동안 수차례 삼성 측에 기존 계획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금융위는 2월16일 청와대에 삼성 측 계획 불수용 방침을 보고한 이후에도 3월13일엔 정은보 부위원장이, 3월20일엔 임종룡 위원장이 안종범 전 경제수석을 찾아가 재차 보고했다. 삼성은 3월 중순 기존 안 강행 의사를 밝히며 ‘이사회 개최 날짜’를 금융위에 알렸다.

윤석열 전 특검 수사팀장은 지난 4월26일 법정에서 “특검은 금융위도 아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아니다. 피고인 측은 마치 특검이 금융위·공정위에서 내린 결정을 가지고 재판하는 것 같은 프레임을 가지고 대응한다”면서 “금융위·공정위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우리는 모르지만 이들의 반대엔 상당히 납득할 만한 의견이 있다. 행정부처가 절대 안된다고 한 일들이, 청와대와의 연계 하에서 이렇게 벌어졌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 말했다.

2016년 3월 삼성이 금융지주회사 전환 건을 추진 강행하기 전,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2015년 10월 위원장 결재까지 마친 ‘삼성물산 처분 주식수’ 결정이 번복돼 12월 삼성 측에 유리한 안이 최종 결정된 바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후 신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됨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 고리를 해소해야 했다. 특검은 수사 결과 이 과정에서 공정위와 삼성, 청와대 간 긴밀한 소통이 이뤄진 증거를 확보했다.

김 사무관은 ‘피인가권자가 인가권자 결정을 무시하고 추진한 게 이례적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일반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김 사무관은 또한 “우리로선 당연히 법률상 요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그런 부분을 미리 해소하겠다거나 이런 대응을 원했는데 없어서 안타까웠다”며 “‘나중에 보완하자’ 이건 인가권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김 팀장은 “금융위가 검토 당시 결론을 낼 수 있을 만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삼성의 두 장짜리 계획안을 보고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삼성으로부터 책임있는 자료가 온 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금융위가 삼성에 구체적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느냐’는 변호인 측 질문에 “요청한 적 없다. 요청이 있어야 계획을 제출하는 게 아니”라면서 “상식선에서 보면 최소한의 계획이라도 있었어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들은 강행을 추진한 배경으로 삼성그룹의 ‘윗선’을 지목했다. 손 전 국장은 2016년 3월 중순 이 전 전무에게 “왜 갑자기 전환계획을 추진하느냐”고 물었고 이 전 전무는 ‘윗분들의 추진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뜻이라 추측한 손 전 국장은 “삼성그룹의 중요 문제라 이재용 부회장이 모른 채 결정이 이루어졌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사무관과 김 팀장은 손 전 국장의 ‘윗선’ 전언을 듣고 3월13일 정은보 부위원장이 안 전 수석에게 보고할 문건에 '이재용 부회장이 강력한 추진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적었다.

특검은 삼성 측이 전환 계획과 관련해 금융위를 통하지 않고 안종범 전 수석과 직접 논의한 정황을 부정청탁의 한 고리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손 전 국장은 지난 2월 특검 조사에서 “삼성그룹의 대관 작업이 매우 치밀하다고 알려져 있다”며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실무부서에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 있는 모든 라인에 개별적으로 대관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청와대에도 별도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지난 4월7일 첫 공판기일에서 박영수 특검의 ‘정경유착 범죄’ 언급에 대해 “사업구조개편 등 여러 사업 활동은 기업의 정상적 활동일 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이 아니”라면서 “특검이 말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무엇이냐. 경영권 승계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인지, 이미 승계했지만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의 지배력을 추가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인지 의미가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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