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개는 상처를 통해 영롱한 진주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영롱한 진주로 즐거움을 얻는 건 조개 자신은 아니다. (...)상처를 통해 배우는 게 있다고 상처 주는 행위가 옹호될 순 없다.
(서늘한 여름밤-‘상처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 출처: 서늘한 여름밤 블로그 (http://blog.naver.com/leeojsh/220921989667)
▲ 출처: 서늘한 여름밤 블로그.(http://blog.naver.com/leeojsh/220921989667)
2.
‘편한 것’과 ‘함부로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좋은 딸이 못되는 걸 안다. 복잡하고 힘들게 살면서 착한 딸이 되느니, 차라리 나는 불편한 딸이 되고 싶다.
(서늘한 여름밤-‘나는 차라리 불편한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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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늘한 여름밤 블로그.
‘서늘한 여름밤’(이하 서밤)작가의 만화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정서와 정반대된다. ‘좋은 게 좋은 거’ 라고 넘어갔던 사회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안 해도 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이런 정서를 ‘착하지 않다’고 볼 수도, ‘까칠하다’고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속 시원하다’고 보기도 한다.

그의 만화를 꾸준히 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만화는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말할 수 없는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말하지만 그 어떤 만화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고려한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이 말로 누군가 상처받진 않을까’라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러한 특징이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상처를 잘 받았던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블로그에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을 연재하던 서밤 작가는 수만 명의 독자들을 확보했다. 이후 한국일보에 동명의 만화를 연재하게 됐고 지난 5월 해당 만화를 묶은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웹툰을 그리는 만화가로, 현재 상담센터 개소를 준비하고 있다한국일보 연재를 마치고 책 출간을 마친 ‘서밤’ 작가를 지난 7일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7일 오후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밤' 작가. 사진=정민경 기자.
▲ 7일 오후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밤' 작가. 사진=정민경 기자.
-심리상담 전공을 했는데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심리상담을 전공하고 대형병원에 다녔다. 군대문화가 심해서 3년 과정이었는데 3개월도 못 버티고 뛰쳐나왔다. 예정에 없던 퇴사를 하면서 백수로 지냈다. 퇴사한 사람들이 많다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퇴사한 후 성공한 사람들’이야기밖에 없었다. 성공하지 않는 퇴사자의 이야기는 없기에 내 얘기라도 해보자고 블로그에 만화를 그리게 됐다. 평소에 워낙 만화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만화를 그렸다.”

-전공 공부를 했고, 관련 회사에 들어갔으니 퇴사했을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의외로 퇴사 고민은 많이 하지 않았다.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토하고 싶으면 ‘이 음식 비싼데, 토할까 말까’하지는 않지 않나. 본능적으로 토해버리 듯 본능적으로 그만둬버렸다. 그래서 그만둬서 힘들었다기보다 내 인생을 다시 찾아가야 하니까, 그게 힘들었다.”

-만화가 SNS에서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내용은 좋은데 표현이 까칠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역시 아무래도 2월에 그린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에피소드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해당 에피소드는 며느리가 시댁에 가지 않는다는 소재를 다뤘는데 이에 작가가 “(남편이나 시댁에) 고마워 할 일이 아니다”라는 멘트를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당 만화에는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명절문화에 대한 토론이 오고갔다.)

‘굉장히 이기적이다’, ‘너 같은 여자 만날까봐 두렵다’, ‘글쓴이가 잘못생각하고 있다’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만화를 그리며 ‘나는 이렇게 살아요’라고 말한 것이고 ‘이렇게 사세요’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남편’이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에 ‘명절에 각자의 집에 가기’와 같은 명절보내기가 가능하다는 말도 나왔었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특별하게 ‘페미니스트’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부장제 같은 경우 이상하지 않나? 가정에서 동등한 역할을 하는데 왜 여자만 명절에 노동을 해야 하는지? 남편은 ‘페미니스트’라기보다 합리적인 사람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논리적인 생각이 가능하다. 이런 불평등이 이해가 안가는 거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 에피소드가 반갑고, 고맙다는 분들도 있었다. 사실 한분이라도 이런 반응이 나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표현이 거칠다’는 부분에서는 내 만화가 일기 같은 부분이 있고 그때그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거라 예상한다. 그런 분들은 저의 일기장을 살짝 덮어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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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늘한 여름밤 블로그. 
-한국일보 연재도 끝났고, 책도 출간됐다. 현재의 활동은.

“에브리마인드 상담센터 개업 준비를 하고 있다. 8월에 개소예정이다. 에브리마인드 상담센터란 심리상담센터로 내가 심리 상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둬야겠다.(웃음) 내 역할은 기획과 마케팅이다.”

-심리상담 전문 마케팅은 어떤 일인가. 만화는 그만두는 건가.

“아니다. 블로그와 SNS에 만화도 계속그릴 거고 심리상담 전문 마케팅이라는 게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이다. 상담에 대해서 알려주고,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콘텐츠로 풀어내는 작업을 할 거다. 블로그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심리 상담에 대해 궁금해 한다. 나으려면 상담 몇 회를 받아야 하나? 상담을 하면서 이런 것을 느꼈는데 맞는 건가? 내 이야기만 한 거 같은데 이게 맞는 건가? 같은 질문들이 많다. 이런 질문들을 풀어주는 작업을 할 것 같다. 형식은 지금처럼 만화가 될 수도, 더 다양할 수도 있다.”

-처음 심리 상담을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맨 처음은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한가?’라는 생각이다. 상담센터는 우울증 등이 심각한 사람만 가는 거라는 생각. 그 다음은 가격이다. 에브리마인드 역시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개인상담 외에도 집단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담의 벽을 낮추는 시도를 할 생각이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덜 고통스러움, 편안함이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다시는 감기에 안 걸리겠다’며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고통이 완화되면 훨씬 더 많은 것 즐길 수 있다. 공연을 볼 수도 있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을 수 있다. 고통이 없다고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100%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견뎌왔던 것보다 덜 불편한 삶을 얻는 거다.”

-만들고 있는 심리상담센터는 다른 심리상담센터와 어떻게 다른가.

“‘에브리마인드’의 뜻은 ‘당신의 모든 마음을 생각합니다’라는 뜻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상담센터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모든 지역의 상담센터를 가본 것이 아니니, 나도 추천을 받아 추천리스트를 만들어 올려놨다. 그런데 그 추천리스트 상담센터를 다녀온 분들 중에 상담사에게 여성혐오 발언을 듣거나,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들었다는 말들이 들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상담사들을 모시고 정말 추천할 수 있는 상담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분들이 안전하게 상담 받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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