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가 안광한 사장을 만났다고 말했다고요? 그런데 왜 고소를 한 거죠?”

어제(8일) 서울중앙지검에서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MBC는 안광한 전 사장이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정윤회를 만났다고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자 3명과 이정환 편집인을 형사 고소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한 검찰 관계자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5월17일자 TV조선 보도에서 정윤회는 안광한 전 MBC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MBC는 미디어오늘은 물론 TV조선에 대한 형사고소 역시 취하하지 않았다.

▲ 6월8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6월8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가 최근 자사 메인뉴스 리포트를 통해 “여당 고위 당직자가 공영방송 사장의 사퇴를 직접 압박하고 나섰다”며 정부여당의 ‘방송장악의도’를 우려하고 나섰다. MBC는 정부여당을 향해 “정권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앉히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수진영에서 문재인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한 달간 조선·중앙·동아일보 지면에서 MBC가 말한 ‘공영방송 장악’과 관련한 기사·사설은 한 건도 없다.

문재인정부에 날을 세우고 있는 보수신문은 왜 MBC의 ‘언론자유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걸까. 여기 하나의 사건이 있다. 2016년 8월16일, MBC는 ‘이석수 특별감찰관, 감찰 상황 누설 정황 포착’이란 리포트에서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 진행상황을 누설해온 정황을 담은 SNS가 입수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 청와대는 MBC보도 뒤인 8월1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건 중대한 위법행위로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 발표했다.

▲ 2016년 8월16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2016년 8월16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MBC보도에 격분했다. 조선일보는 8월19일자 사설에서 “감찰 정보 누설로 보는 것은 억지다. 훨씬 중요한 것은 기자의 취재 메모가 어떤 경로로 MBC 등 언론에 유출됐느냐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취재에 참여한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MBC보도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웃기다. MBC 보도대로라면 앞으로 MBC는 공개 브리핑에서 불러주는 내용 말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선일보 기자는 당시 MBC 보도를 두고 “우병우를 살리기 위한 물 타기”라고 말했다.

당시 보도본부장이 김장겸 현 MBC 사장이다. 조선일보 입장에서도 정부여당 측의 MBC사장 사퇴 요구가 ‘방송장악’이 아닌 ‘방송정상화’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언론계의 ‘국공합작’이 이뤄졌던 지난해 겨울, MBC는 외톨이에 가까웠다. 어느덧 언론계에서 MBC의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닌 저널리즘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경영진 비판보도에는 무차별 소송으로, 경영진 비판 사원들에게는 끝없는 보복성 징계로 일관했던 언론사에서 애초부터 온전한 저널리즘 구현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그러나 이 언론사가 공영방송사이기 때문에, 그저 낙담하고 뒤돌아서기에는 국민들에게 끼치는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방송정상화’를 위한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MBC는 문재인정부를 가리켜 “정권교체 한 달 만에 공영방송사 경영진 교체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언론 통폐합을 앞세워 언론을 장악했던 5공 군사정권과 닮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나는 문재인정부보다 MBC경영진이 5공 군사정권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별것 아닌 기자수첩을 쓰면서도 MBC의 법무팀과 고소장이 떠오르고 또 다시 검찰조사를 받더라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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