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여성혐오 콘텐츠가 많을수록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콘텐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15년 2월 잡지 ‘그라치아’에 실렸던 김태훈 칼럼니스트의 칼럼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 2015년 4월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 여성비하 발언 파문 이후 미디어의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늘어난 것이 일례다.

두 사건 이후 미디어의 여성혐오 행태를 지적해온 최지은 작가(전 ize 기자)는 “왜 계속해서 지적하는데도 바뀌지 않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9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란 주제 강연에서 최지은 전 기자는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제작자들의 관성과 소비자들의 취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했다. 최 작가는 기자시절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란 책 작업에 참여했다.

(관련기사: ize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 2015년 최지은 기자가 쓴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기사 화면 갈무리. 사진출처: ize 홈페이지
▲ 2015년 최지은 기자가 쓴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기사 화면 갈무리. 사진출처: ize 홈페이지
최 작가는 제작자들이 새로운 시도 대신 기존의 ‘안전한’ 방식을 선호하는 점이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를 굳건히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방송업계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5년 당시 엔터 업계에 ‘왜 여자출연자를 안 쓰나’란 주제의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무한도전’과 ‘1박2일’의 너무 큰 성공의 여파라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두 프로그램이 양대 산맥으로 예능을 이끄는 시기, 조금 모자란 남자들이 좌충우돌하며 ‘형·동생’하는 프로그램이 먹히는 프로그램으로 검증된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작가는 “실패에 매우 예민한 방송업계에서 여성을 넣었을 때 오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었고, 여성들의 사소한 잘못에도 부정적인 시청자 의견이 나오니 기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콘텐츠소비자인 시청자들이 △남성의 과오에는 너무 관대하고 여성의 실수에는 가혹하지 않은가 △특정 연예인을 비난하고 싶다면 무엇 때문인가, 그 사람의 잘못인가, 나의 기분 문제인가 △이성애 중심적 사고에 젖어서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최 작가의 설명이다.

특히 최 작가는 코미디언 장동민처럼 여성혐오 발언을 꾸준히 해 온 인물이 계속해서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이유를 ‘방송 내 남성들의 굳건한 네트워크’에서 찾았다. 그는 “팟캐스트 비하발언 사건 이후에도 유세윤·장동민·유상무는 계속해서 방송에 나올 수 있었는데 그 이유를 업계에 물어보니 ‘이미 사과를 했기에 문제가 없다’, ‘프로그램 외적인 문제라 상관없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방송업계가 남자들의 문제에는 서로 변호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장동민씨가 한 예능프로에 나와서 "여자가 설치고! 생각하고! 말하고!"라고 한 말은 이후 다른 의미로 페미니즘 운동의 구호가 되기도 했다.
▲ 장동민씨가 한 예능프로에 나와서 "여자가 설치고! 생각하고! 말하고!"라고 한 말은 이후 다른 의미로 페미니즘 운동의 구호가 되기도 했다.
최 작가는 여성 연예인은 남성 연예인들보다 더 혹독한 기준에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김슬기는 집들이용 고기를 넉넉히 사지 않았다며 비난을 받았지만, 같은 프로그램에서 전현무가 몇 달 동안 가전용품의 사용법을 알지 못하고 손님이 와도 방청소를 하지 않는 모습은 개그로 받아들여진다. ‘무한도전’ 등에서 남성 연예인들은 역사적 지식이 없는 모습을 보여도 개그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성 연예인들은 “역사인식이 없다”며 비난받는 식이다.

최지은 작가는 이 같은 사례를 언급하며 “남성들의 허술함, 서투름, 무식함은 ‘개그’로 승화되지만 여성들의 그런 특성은 비난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여성들의 웃음은 항상 건전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져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디어 내 여성혐오를 지적하고 싶은 시청자들이 있다면 △항의 표시와 불매 △관련 기관에 민원 제기 △각자의 채널을 통해 말하기 △나의 욕망과 지향에 대한 지속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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