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구가 작은 젊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주섬주섬 무슨 자료를 내밀었다. 두께가 얇지 않은 서류철에는 국영문 자료가 이것저것 섞여 있었다.” 초면에 그는 “미국산 소고기는 광우병 위험성에서 안전하지 않다” “소의 치아로 나이를 감별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임은경 당시 민중의소리 기자는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라는 직함으로 널리 알려진 박상표씨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는 참여정부 때였던 2006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기 2년 전 일이다. 그때부터 박상표 국장은 여러 언론사를 방문하며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언론조차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 때 그는 뛰고 있었다.

고인이 된 그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PD수첩 제작진 재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본 정부 문서, 영국 정부의 광우병 지침서, 미국 농무부 감사 보고서, 해외 광우병 학회지, 국제 토론회자료, 미국 시민단체의 연구보고서 등을 입수하고 분석해 정부의 ‘프레임’을 깨뜨렸다.

조능희 전 MBC PD수첩 CP는 ‘추모의 글’에서 “제작진이 조중동의 왜곡기사와 관변어용의사·수의사,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법정에서 묵사발 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박상표 덕분”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그가 PD수첩 제작 및 재판과정에서 박상표 국장으로부터 e메일을 통해 받은 자료만 1000통 가까이 된다.

미국산 소고기, 참여정부 때부터 도마에

무엇이 문제였을까. 영국에서 광우병 대란이 휩쓸고 간 이후인 2003년 12월말 미국에서 첫 번째 광우병이 발발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맺은 ‘소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따라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했다. 이어 2004년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소가 발견됐고, 2005년 텍사스주에서 두 번째 광우병 판정이 내려졌다.

미국은 다급했다. 해외에 소고기를 팔지 못하게 되자 ‘대책’이 필요했다. 미국은 한미가 FTA 협상 중이라는 점을 이용한 묘수를 찾았다. ‘4대 선결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재개와 한미FTA 협상을 연계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해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직후인 2006년 2월, 미국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이라며 “30개월 미만 살코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의 권위를 빌린 프레임 전략이었다. 일찌감치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던 수의사 출신인 박상표 정책국장은 시민사회와 함께 정부의 프레임을 무너뜨린다.

그는 “소의 나이를 세는 기준인 ‘월령’은 치아를 통해 감별하는데, 정확도가 15%에 불과하다”며 참여정부가 정한 기준으로도 30개월 이상 소고기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영국·일본에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한 결과 20개월~30개월령 사이 소에서 100건 이상의 광우병이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30개월 미만 소에도 광우병 감염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그는 OIE가 사실상 미국의 통제 아래에 있고, 미국의 요구로 광우병 통제국가를 분류하는 기준을 5단계에서 3단계로 바꿨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OIE의 ‘권위’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광우병 위험성과 졸속협상 폭로, 공영방송의 힘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 안전성 논쟁이 이어지던 도중, 정권이 교체됐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 바통을 이명박 정부에 넘겨야 했다. 시민사회는 정권이 바뀌었지만 논쟁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19일,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을 발표한 것이다.

최소한 참여정부는 30개월 이상 소고기가 위험하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뼈와 부속물을 포함한 모든 연령의 소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또, ‘수입 중단권’과 ‘도축장 취소권’ 등 검역 권한을 미국으로 넘긴 점도 문제였다.

▲ 2008년 4월 방영된 MBC PD수첩.
▲ 2008년 4월 방영된 MBC PD수첩.

이명박 대통령은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라며 ‘광우병 위험성’ 프레임을 봉쇄하고 나섰다. 그러나 제대로 된 소통 없이 내려진,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일본과 타이완은 2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었고 중국, 호주는 수입을 거부한 상황에서 한국만 월령제한을 두지 않았다. 시민들은 납득할 수 없었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5월초부터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광화문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MBC PD수첩 게시판에는 미국산 소고기 문제를 취재해달라는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PD수첩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을 폭로하는 등 가장 믿을만한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4월29일 MBC PD수첩 ‘미국산 소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이 전파를 타게 된다.

방송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소의 0.1%만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져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단정하는 정부의 주장은 믿기 어려워졌다.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다우너소를 학대하며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전에도 다우너소 문제는 신문을 통해 관련 문제가 보도된 적은 있지만 영상매체는 활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가졌다.

▲ MBC 취재진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 MBC 취재진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이 방송을 계기로 촛불집회가 확산된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 단위로 모였던 집회는 수만 명 규모로 군집하기 시작했으며 절정기였던 6월10일에는 주최 측 추산 70만 명이 참가했다. 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 이전까지 촛불집회로는 최다인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정부여당에게 MBC와 PD수첩은 눈엣가시가 됐다.

PD수첩이 광우병 문제에 집중했다면 진보언론과 KBS, MBC는 보도를 통해 소고기 졸속협상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정부가 권위를 부여해온 OIE가 정작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입장을 낸 점도 폭로됐다.

이들 언론과 미디어몽구, 진보신당 칼라TV를 비롯한 대안 인터넷 미디어도 가세해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서 군홧발로 시민을 짓밟고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을 공격하고 직사 물대포를 사용하는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노종면 해직기자가 총괄했던 YTN의 ‘돌발영상’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던 ‘뒷이야기’를 풍자 코드를 통해 보도했다. 2008년 5월7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이 “어린학생들까지 이용해 괴담을 조장하고 정치적 선동거리로 접근한다”고 밝혔는데, YTN은 그가 참여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에게 “대한민국 농림부 장관인지 미국을 대변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우리가 먹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질이 있는 광우병소”라고 발언한 대목을 내보내며 ‘이중성’을 고발했다.

돌발영상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차명진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국산 소고기 시식회’를 연 자리에서 한 의원이 “한우보다 맛잇네”라는 발언을 한 대목을 카메라에 담아 시민들의 공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돌발영상은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식당 소고기 원산제 표시제를 식당 주인의 ‘양심에 맡기는’ 방식으로 주먹구구로 밀어붙이는 과정을 내보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PD수첩 vs 정부·조중동

촛불집회 초기 정부와 조중동은 연합전선을 형성해 PD수첩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정부여당은 연일 MBC 보도를 ‘왜곡’ ‘허위’로 규정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의 형사고발을 통해 ‘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정부의 ‘부실협상’과 ‘불통’ 문제를 덮기 위해서도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중동은 동시에 PD수첩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TV 광우병 부풀리기 도를 넘었다”(2008년 5월2일 조선일보) “광우병 부풀리는 무책임한 방송들”(2008년 5월2일 중앙일보) “광우병 부풀리기 방송, 진짜 의도 뭔가”(2008년 5월9일 동아일보) 등으로 대동소이한 입장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부와 조중동이 ‘부풀리기’라고 지적한 대목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첫째, PD수첩이 ‘악마의 편집’을 했다는 주장이다. 다우너소가 모두 광우병에 걸린 소는 아닌데도 PD수첩이 광우병소로 단정했다는 것인데 이는 자료화면을 본 후 스튜디오에서 사회자가 순간적으로 잘못 표현한 것으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 PD수첩을 비판하고 나선 조중동 보도.
▲ PD수첩을 비판하고 나선 조중동 보도.

미국에서 인터뷰한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이 아닌데 ‘인간광우병’으로 왜곡했다는 것도 이들 신문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왜곡이긴 하지만 유가족도 취재 당시까지는 ‘인간 광우병’으로 추정했고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4월10일 폭스뉴스 기사 제목 역시 “버지니아주 22세 여성 인간광우병으로 사망가능성”이었다.

오히려 ‘조중동의 적은 조중동’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한국인 유전형질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PD수첩이 소개한 연구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했다는 논란을 보도했다. 관련 연구가 논쟁적인 건 사실이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동아일보는 2007년 3월23일자에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기사에서 “프리온 유전자 분석결과 미-영국인보다 더 취약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TV 속 ‘미국 소고기 괴담’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내용이 많다”던 조선일보는 2004년 1월3일 보도에서는 “슈퍼파워 미국이 세계인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까지 자국 이익을 앞세워 힘의 논리를 관철하려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밝혔다. 2003년 12월30일 조선일보는 “미국에서 광우병 발발 소식이 알려진 이후 한국정부가 취한 수입금지 관련 조치들은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08년 조선일보와는 판이하게 다른 관점이다.

▲ '중앙일보' 7월8일 2면에 실린 사과문. 7월 5일 9면에 보도된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제목의 사진기사가 연출이라는 점을 밝혔다.
▲ '중앙일보' 7월8일 2면에 실린 사과문. 7월 5일 9면에 보도된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제목의 사진기사가 연출이라는 점을 밝혔다.

‘괴담론’ 프레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안전성’까지 강조하려다보니 무리수가 나오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7월5일 “미국산 소고기 1인분에 1700원” 기사에서 젊은 손님들이 미국산 소고기 판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았으나 사진에 담긴 손님들은 중앙일보 기자와 인턴기자로 밝혀져 논란이 불거졌고, 중앙일보는 사과했다.

촛불시민 vs 정부·조중동

MBC PD수첩 공격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조중동은 오랜 기간 반복해오던 ‘낡은 프레임’을 하나씩 꺼내들었지만 대부분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배후세력론’부터 고개를 들었다. 조중동은 5월7일 전교조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전교조 교사들은 아이들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아 줄 생각을 하기는커녕 아이들의 공포감을 최대한으로 높여 거리로 끌어내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조선일보) “학생들에게 터무니없는 불안감을 조장하고 집단행동을 부추긴다면 선생의 자격이 없다”(중앙일보) “온갖 억측과 괴담으로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이를 시위에 이용하는 배후세력을 반드시 찾아내 법정에 세워야 한다”(동아일보)는 것이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조중동은 민주노총, 참여연대가 주축이 된 광우병대책국민회의 등을 ‘좌파친북단체’로 규정하며 ‘배후세력’으로 지목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시 촛불집회는 특정 조직이 주도해 동원되는 형태가 아닌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배후세력으로 지칭되는 이들이 오히려 집회 변방에 머무는 모습이 목격됐다. 무대를 제공하고 행사를 진행한 광우병대책회의의 통제 역시 따르지 않는 시민이 많았다.

배후세력론이 ‘무리한 프레임’이라는 비판은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나왔다. 동아일보 노동조합은 2008년 7월 공정보도위원회 보고서를 내고 “촛불시위에 담긴 민심은 외면하면서 ‘좌파-친북단체 개입’ 등 ‘비순수성’을 부각시켜 이후 정당한 비판 보도까지 매도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자성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의 한 기자는 “학생들은 광우병 위험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고, 주부들은 식탁 먹을거리를 걱정하며 아이들을 업고 안은 채 촛불을 들었지만 이런 현장 분위기는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집회 참가자가 크게 늘어났을 때 조중동은 집회를 긍정적으로도 묘사하며 참가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날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집회 인원이 줄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력 집회’를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나서며 ‘강경 진압’을 부각한 진보언론·공영방송과 대척점에 섰다.

6월27일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청와대만 지키는 정권”을 통해 “한 달 이상 서울 도심이 밤마다 시위대에 의해 점거돼 무법천지가 되고 시민들의 불편과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지만, 현 정부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게 눈치만 살피며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최보식 사회부장이 직접 쓴 기사였다. 이날 중앙일보 1면 기사는 “공권력이 짓밟히고 있다”였다. 두 신문 모두 시위대에 둘러싸여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전경 모습을 담은 연합뉴스 사진을 썼다.

집회가 막바지 폭력적 양상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신문의 ‘폭력집회’ 프레임은 직사 물대포, 무분별한 방패 공격 등 전경의 폭력을 외면한 점에서 ‘반쪽짜리’였다. 또한, 왜 집회가 격렬해졌는지에 대한 분석도 빠졌다. 평화 기조를 유지하던 촛불집회는 정부가 ‘관보 게재’를 강행하며 격렬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독자들은 조중동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직접 미디어의 왜곡에 대항하기도 했다.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통해 광고주를 압박했고 경향신문 등 진보신문 구독운동을 벌였다. 촛불은 KBS와 MBC로 옮겨가 ‘공영방송 사수’를 외쳤다.

▲ 2011년 MBC PD수첩 제작진 징계에 맞선 촛불시민들. 사진=이치열 기자.
▲ 2011년 MBC PD수첩 제작진 징계에 맞선 촛불시민들. 사진=이치열 기자.

조중동 프레임이 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공영방송이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조중동 견제 역할을 했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미디어 환경도 변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 아고라 등 커뮤니티를 통해 문제제기를 확산시켰고, 조중동이 말바꾸기를 하거나 낡은 프레임을 꺼낼 때마다 뉴스수용자들이 직접 반박했다. 포털 중심의 미디어 유통환경이 구축되면서 조중동=여론 독점이라는 말은 옛날 얘기가 됐다.

그날 이후, ‘광우뻥’ 프레임과 무너진 공영방송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에는 괴리가 있다. 포털 네이버에서 ‘광우병’을 검색하면 ‘선동’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일간베스트는 당시 촛불집회를 ‘광우뻥’이라고 부른다. 거짓 선동에 사람들이 놀아났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도 세월호 집회, 사드배치 반대 집회 등에서 ‘괴담’을 강조하며 어김없이 2008년 촛불을 근거로써 끄집어낸다.

“그렇게 난리쳤는데 결국 광우병 걸린 사람 한명도 없지 않느냐” 이 말의 힘이 강력한 게 사실이다. 2008년 당시에도 3억 명의 미국인들이 모두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있는데 광우병 위험성을 강조하는 게 오히려 비과학적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2008년 박상표 국장은 언론 기고글에서 이렇게 응수한 바 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광우병이 확인된 것은 1986년이다. 대중은 미친소를 사람이 먹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영국정부에 과학적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정부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광우병이 인체에 전염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으며 광우병은 인체에 어떤 위험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4월까지 영국에서는 18만3256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렸고 163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완벽한 조치는 아니지만 촛불집회를 통한 강력한 저항 이후 ‘월령 제한 없는 소고기’에서 ‘30개월 미만 소고기’로 수입조건이 바뀌어 30개월 미만의 소고기만 수입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변화다.

무엇보다 광우병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점이 더 많은 병’이라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박상표 국장은 “유럽연합 일본 등의 국가와 소비자단체는 사전예방의원칙에 따라 GMO가 인간, 동물 및 환경에 위해성이 없다는 광범위한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는 상업화가 허용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서는 마땅히 안전성이 확실하게 입증될 때까지 허용을 막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PD수첩 제작진이 대법원에서 명예훼손 ‘무죄’ 판결을 받아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판부는 “방송은 어느 정도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 미국산 소고기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고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제작진은 징계무효소송 등 관련 재판 7건 모두 승소했다. ‘광우뻥’이었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 2012년 12월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PD수첩 제작진. 사진=이치열 기자.
▲ 2012년 12월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PD수첩 제작진.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나 공영방송은 무너졌다. 이명박 정권은 공영방송이 왜곡보도를 했다는 명분으로 공영방송 장악을 본격화했다. KBS 정연주 사장은 끌려 내려왔고 MBC 엄기영 사장은 MBC를 떠났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정부를 강력하게 변호했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조중동은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 발간된 ‘MB씨, MBC를 부탁해’에서 김보슬 당시 PD수첩 PD는 이렇게 지적했다. “민영방송이었다면 PD수첩은 황우석을 그런 식으로 보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PD수첩도 없어졌을 것이다. 이번 미국산 소고기 방송을 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제작, 편집에 대한 권한은 공영방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보호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김현진 칼럼니스트는 당시 촛불집회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MBC 카메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MBC! MBC!하며 환호하는 것부터 시작해 카메라에 담기기 무안할 정도의 MBC 찬송가까지 다양하다. KBS도 요즘 인기가 좋다. 반면에 YTN과 SBS는 조금 홀대 받고 조중동 기자는 아예 강퇴 당한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MBC 취재진은 “엠빙신”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고 MBC로고를 떼고 보도해야 했다. 공영방송의 ‘잃어버린 9년’이다.

※참고문헌
박상표,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
임은경, ‘박상표 평전’
고재열 등, ‘MBC, MB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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