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敗將)이 돌아왔다. ‘패장’은 대선 패배 후 미국에 있는 아들 부부를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가 지난 4일 귀국한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본인을 지칭한 말이다.

홍 전 지사는 귀국 후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환영하러 공항에 나온 인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만큼 마음 둘 데 없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방증)한다”며 “대선 패배에 대해 사죄드리고 앞으로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데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당권 도전을 선언한 셈이다.

다음 달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현재 자유한국당 내에서 당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홍 전 지사의 위세를 보여주듯, 지난 4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은 수백 명의 지지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홍 전 지사는 이날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지만 “지난번엔 내가 부족한 탓에 여러분의 뜻을 받들지 못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홍 전 지사의 대항마로는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수도권 5선 친박계 원유철 의원과 황교안·김황식 전 총리, 김태호 전 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핵심들과 비박, 초·재선급 의원들이 ‘홍준표 불가론’으로 결집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홍준표의 당권 의지에 긴장하는 친박계의 모습도 역력하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홍 전 지사가 그나마 몇 퍼센트도 안 되는 데서 친박이라는 사람들을 ‘바퀴벌레’라고 하면서 다 빼버리면 1~2% 갖고 하겠다는 것이냐”며 “바른정당 등 우리가 더 외연을 확대해야 할 판에 우리 당이 어떻게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잠이 안 온다”고 힐난했다.

홍 의원은 “이렇게 분파를 일으켜서 자기가 당 대표되겠다는 데만 집중하는 홍 전 지사가 된다면 한국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아주 불행한 일”이라며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처럼 3~4% 아주 극소수의 홍준표를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걱정이 태산 같다”고 우려했다.

원유철 의원도 지난 4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히딩크 같은 팀플레이에 능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에너지로 당의 외연을 확장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원 의원은 “홍 전 지사가 대선에서 고생했지만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모두 3위를 했고 20~40대 연령층에선 절망적 결과를 얻었다”면서 “젊은 층과 수도권에 다가서는 지도부가 탄생해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 홍준표 전 경남지사. 사진=민중의소리
▲ 홍준표 전 경남지사. 사진=민중의소리
대선에선 패했지만 “싸움에는 천재”라고 자신했던 홍 전 지사가 24%를 득표하면서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도 TK(대구·경북) 등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대권주자 홍준표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는 그동안 미국에 머무르면서 “이제 몇 안 되는 친박이 자유한국당의 물을 다시 흐리게 한다면 당원들이 나서서 그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친박계의 쇄신을 주문했다. 다른 한 축으로는 강경한 대여 투쟁을 예고했다.

홍 전 지사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서 “(국회)선진화법에 의하더라도 이들(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이 협치를 하면 국회를 운영할 수 있지만 국민의 심판은 그때부터 시작된다”며 “그 심판은 내년 지방선거부터”라고 말한 것도 자신을 구심점으로 야당의 위세를 보여주고 지지층을 결집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홍 전 지사는 문재인 정부의 4대강 감사 지시와 윤석열 중앙지검장 인사 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향후 이어질 문재인 정부의 내각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홍 전 지사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자유한국당 구심점이 자신에게 있다고 판단해 대여 투쟁에 고삐를 당기면서 스피커를 키우고 자연스럽게 당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이다.

아울러 그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더불어민주당 제1·2중대라고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점도 결국 민주당과 양강 구도를 형성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홍 전 지사는 지난달 29일 “대선 전에는 국민의당에 가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민의당도 민주당에 합당될 처지에 놓여 있어 이젠 갈 데도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자유한국당에서도 받아 줄 수가 없는 금수저 2세나 배신의 상징인 일부 정치인들은 결국은 정치적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성무 새미래정책연구소 소장은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야권 전체가 지리멸렬한 가운데서 유일하게 지난 한 달 그리고 이틀 전 공항에 들어오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홍 전 지사밖에 없다”며 “1년 후에 지방선거, 3년 후에 국회의원 선거, 5년 후에 대통령을 하겠다는 1·3·5 전략 스케줄을 제대로 내놓고 정국의 중심에 설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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