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 대통령 문재인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오전 10시에 TV를 켰다. 그의 ‘추념사’는 역사 인식이나 ‘애국’에 대한 개념이 이명박·박근혜와는 천양지차였다. 그는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다짐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이라는 말은 국민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민족 통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문재인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8·15 이래 70년이 넘도록 ‘득세’해온 현실을 이렇게 비판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국가의 예우를 받기까지는 해방이 되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서러움, 교육받지 못한 억울함, 그 부끄럽고 죄송한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번 현충일 추념식은 탁월한 공연 기획가가 연출한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고위 관리들보다는 ‘상이군인들’을 대통령 옆자리에 앉히는 배려가 특히 돋보였다. 가수 장사익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부른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테너 카이와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함께 노래한 ‘조국을 위하여’는 행사 참석자들은 물론이고 TV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배우 이보영이 낭송한 추모헌시 ‘넋은 별이 되고’의 한 구절을 들으며 유족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바람소리에도 행여 임일까 문지방 황급히 넘던 눈물 많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 기억하지 못할 얼굴 어린 자식 가슴에 새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희미해진 딸의 아버지였는데 / 무슨 일로 당신은 소식이 없으십니까.” 이 시에 나오는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만주나 시베리아로 떠난 청년일 수도 있고, 베트남전쟁에 ‘총알받이’로 나간 군인일 수도 있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