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역 민영 라디오방송사 경기방송(대표이사 최승대)의 ‘신입직원 전원 퇴사’는 우연히 일어난 사태가 아니었다. 경기방송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다수 전직 관계자들은 지난 2012년부터 이미 이 사태가 노정돼 있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4월 기준 경기방송 보도국엔 기자 11명 중 ‘비정규직 기자’가 5명이다. 비정규직 기자들은 1997년 개국 때 입사한 ‘개국 공신 멤버’, 15년차 기자 등 대부분이 10년이 넘은 기자 이력을 가진 직원들이다. 이들이 비정규직이 된 시점은 2012년도다.

2012년 이전 경기방송엔 비정규직 기자가 많지 않았다. 경기방송은 노조가 설립되고 난 후인 2002년, 계약직이던 보도국 및 기술부 직원 10여 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바 있다.

그러나 10년 후 경기방송엔 정리해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기방송은 2012년 7월 전체 정규직원 39명 중 25%에 달하는 9명을 정리해고했다. 애초 해고대상자는 20명이었으나 노측의 반발로 9명으로 줄었다. 내부사정을 아는 전직 관계자들은 경기방송이 이를 통해 세 가지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인건비 절감, 사내 비정규직화, ‘문제직원’ 솎아내기를 이뤘다는 것이다.

2012년 비정규직이 된 기자는 3명이다. 전체 해고자 9명 중 이직한 2명과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회사와 법적 다툼에 들어간 4명을 제외한 이들이 사측과 계약직 고용계약을 맺었다. 퇴직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기방송은 회사에 반기를 세게 들지 않는 직원 일부를 대상으로 ‘거래’를 했다. 재고용 시켜줄 테니 비정규직으로 고용계약을 맺자고 제시한 것이다.


이들은 3년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1~2년 단위 계약직에서 ‘무기’ 계약직으로만 바뀌었을 뿐, 다른 고용 조건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이같은 무기계약직 직원은 그동안 2명이 더 늘었다. 이로부터 2017년 현재부터 정규직원은 한 명도 늘지 않았다.

경기방송 퇴직자 다수는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신입 채용도 그렇게 된 것”이라 비판했다. 지난 2015년 8월, 경기방송은 정리해고 후 처음으로 신입직원을 공개채용해 수습·경력지원 7명을 뽑았다. 이들은 길게는 1년8개월 동안 아무도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했다. 회사는 6개월 수습기간을 마친 이들에게 ‘1년 기간제’ 고용계약서를 내밀었다. 1년 기간제를 끝난 뒤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것이라 통보했다. 퇴사한 신입직원 일부는 “고용불안정에 지쳐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밝혔다.

경기방송의 비정규직 직원 선발은 바로 전년도에서부터 발견됐다. 경기방송은 2014년에 2015년 공채 인원과 동일한 7명을 1년 미만 계약직 ‘프리랜서’로 뽑은 바 있다. 당시 프리랜서로 고용됐던 기자 B씨는 “기본급은 100만원 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송출되는 기사 한편 당 5~8만원씩 수당이 붙었다”며 “많이 받았을 땐 200만원 선까지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직 프리랜서 기자 C씨는 “일반적인 기사는 2~3만원, 비판기사는 5~8만원으로 수당이 책정됐는데 나중에 들어오는 돈이 훨씬 적었던 걸 보면 제대로 책정을 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들을 지켜봤던 한 퇴직자는 “프리랜서 기자의 기사는 뉴스프로그램 후반부에 배치되곤 했는데 기사가 방송에 나가야 돈이 지급되는 이들은 그걸 되게 불안해했다”면서 “뉴스에 자기 리포트가 안나오면 ‘내 기사 나가는거 맞느냐’, ‘왜 아직 안 나가느냐’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1년이 다 되갈 무렵 그대로 ‘해고’됐다. B씨는 “우리를 담당했던 팀장이 7명 기자들을 다 한 자리에 불러놓고 ‘회사가 신입·경력 공채를 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합시다’라는 식으로 통보하며 다 정리했다”고 말했다. 경기방송은 2014년부터 총 14명의 신입직원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전원퇴사한 회사가 됐다.

경기방송은 2012년 정리해고가 광고수익 감소 등 ‘경영 상황 악화’에 따른 것으로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해고자들의 해고무효소송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2월7일 “경영진은 실질적으로 고통분담을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근로기준법이 요구하는 정리해고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경기방송은 주주 배당액(주당 600원)을 전혀 줄이지 않았다. ‘설악썬밸리 콘도회원권’ 4500만원을 매각한다고 결의했으나 정리해고를 한 뒤 10개월 후에야 매각했다. 대표이사 관사 임대보증금 2억3천만원도 정리해고가 끝난 뒤 7개월 후에 반환받았고, 월 287만원이 나가는 벤츠 차량은 2014년까지 유지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경영진 자구 노력을) 시행하려는 진지한 의사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전 부회장의 2011년 연봉은 1억8700만원, 대표이사가 된 2012년 연봉은 1억4940만원이었다. 박형배 당시 사내이사(직급 사장) 2012년 연봉은 1억1700만원(11개월 분)으로 2010~2011년 수준이 그대로 유지됐다. 정리해고 전인 2011년 경기방송은 약 94억7590만원 매출을 기록해 약 5억1875만원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정리해고를 한 뒤인 2012년엔 91억1536만원의 매출, 6억1947만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2013년에도 매출액 86억7519만원에 당기순이익 8억6840만원을 기록하는 등 경기방송은 2015년까지 흑자를 달성했다.

해고 확정 대상자에는 그동안 ‘강성노조’ 활동으로 찍혀 온 직원, 회사에 불만사항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온 직원, 과거 ‘부당해고’ 문제로 회사와 소송을 진행한 직원 등이 포함돼있었다.

정리해고 당시 해고자 4명은 회사의 ‘비정규직 재고용’ 제안을 거부하고 ‘해고 무효 소송’에 돌입했다. 이들 중 3심까지 싸워서 이긴 D씨는 2014년 7월 복직하자마자 ‘사쓰마와리’를 돌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쓰마와리는 파출소·경찰서 등 관공서를 방문취재하게 해 1~2시간 마다 각종 사건사고를 선임 기자에게 보고하게 하는 수습 기자교육이다. D씨는 2005년 ‘라디오PD’로 입사한 직원이었다. 10년 차가 된 라디오PD에게 새벽까지 관공서 순회 방문을 시키고 자기보다 연차가 낮은 기자에게 1~2시간 마다 보고하게 한 것이다.

복수의 경기방송 퇴사자들은 사측이 이를 ‘길들이기’ 도구로 썼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아무개 PD는 2012년 3월 경, 반아무개 PD는 2014년 1월 경 보도국으로 전직돼 ‘사쓰마와리’를 했다.

부적법한 징계도 2012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현재 ‘해고무효 소송’을 진행중인 E씨는 ‘배임’ 명목으로 2012년 4월 해고 징계를 받았다. 기술팀 소속인 그는 라디오방송국의 핵심 기계 중 하나인 ‘오디오파일’을 교체하는데 ‘일부러 비싼 기계를 구입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기계 고장은 기술부 직원 한 명이 천장에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하고 기계에 비닐을 덮었다가 열이 발생해 생긴 사고였다. E씨는 곧장 해고 무효 소송을 진행했고 2심에서 승소했다.

E씨는 2012년 4월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기방송과 해고 소송을 다투고 있다. 그는 2심 승소 후 2014년 7월 복직했지만 다시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경기방송은 징계 사실을 알리면서 “업무상 배임·절도 등으로 형사고발해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니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E씨의 싸움이 장기화된 시점이다.

경기방송이 E씨에 대해 고소한 절도혐의는 E씨가 보관하고 있었던 회사 ‘기안문’이었다. E씨는 만일에 대비해 기계를 수리·구매할 때마다 기안문을 한장씩 추가로 복사해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원지검은 2014년 4월1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2년 정리해고 후 복직한 F씨는 ‘릴플레이어(1990년대 말까지 상용된 릴테이프 녹음기)를 마음대로 폐기했다’는 이유로 바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F씨는 해당 기계가 폐기품으로 분류된다고 여겨 제대로 된 보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폐기 조치했다. 경기방송은 이에 ‘새 것을 사려면 1억이 든다.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며 ‘대기발령’을 명했다. 당시 라디오PD들 사이에선 ‘횡령’으로 꼬투리를 잡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수 전직자에 따르면 이같은 징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해엔 한 직원이 중계차 타이어에 흠집을 낸 것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0%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 한 경기방송 직원은 “안전에 위해될 정도로 심하게 찢어졌는데 보고하지 않아서 징계위에 회부된 것”이라 해명했다.

피해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경기방송 내엔 정리해고, 징계, 비정규직 채용 등으로 제대로 된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격무’로 이어진다는 불만이 높다. 한 보도국 기자의 경우 수원·용인·성남 지역을 동시에 맡고 있다.

라디오PD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 PD는 새벽 2시부터 4시, 4시부터 5시까지 홀로 연출과 진행을 도맡으며 두 개 프로그램을 송출한다. 이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프로그램 연출을 맡는다. 대부분의 라디오PD는 작가, AD, 진행자 등 적어도 3~4명의 인원과 함께 작업을 하며 2시간 분량 프로그램 하나를 책임진다. 경기방송 라디오PD의 경우 대부분 3~4개 프로그램을 맡는 것은 기본이며 원고 작성, 프로그램 워딩, 청취자 선물 발송 작업까지 맡고 있다.

지난 5여 년의 과정을 지켜본 해고자 G씨는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방송일인데 이런 일들을 보면서 자존감이 떨어졌고 이 점이 제일 괴롭다”며 “이 방송국이 변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고자 D씨는 “이러다가 남은 직원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비정규직이 돼 모든 직원들이 비정규직이 되는 상황까지 오는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경기방송 측 입장을 듣기 위해 경기방송의 본부장 및 경영지원팀장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무기계약직·정규직 대우 같다? 거짓말”

‘비정규직 고용’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경기방송이 “사내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처우가 같다”고 해명한 것에 대해 “거짓말”이라는 반박이 제기됐다.

내부 사정을 아는 경기방송 해고자 A씨는 “사측이 말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당시 비정규직으로 재고용된 사람들은 월급부터 절반 이상이 깎였다”고 반박했다.

경기방송 퇴사자 및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기방송 보도국 내 ‘호봉제 정규직’과 ‘연봉제 무기계약직’ 간엔 급여 차이부터 상당하다.

경기방송 내 비정규직 기자들 대부분이 10년 차 이상인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계약직으로 고용되며 휴가 일수가 1년 차 신입사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들에 따르면 급여, 휴가, 상여금 체계도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하여 이아무개 경기방송 경영지원팀장은 지난달 2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회사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과 같은 말로 썼다. 경기방송은 성과급, 각종 수당, 복지혜택 등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이나 차별없이 동등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경기방송은 2015년 공개채용한 신입직원을 1년 동안 계약직으로 고용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세워 논란이 된 바 있다.

경기방송은 1997년 경기지역 유일의 민영 라디오 방송사로 설립됐다. 대표이사는 경기도 행정2부지사와 경기도시공사 사장을 역임한 최승대씨다. 2016년 기준 대주주는 호주건설로 21.1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심기필 경기방송 회장이 10% 지분, 심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식회사 경기필이 8.66%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 기사 수정 : 2019년 03월11일 오후 13시4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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