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 동안 좀 나온 것을 보면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이나 정책비전보다는 신상털기 위주로 진행되어 왔던 부분이 분명히 좀 있습니다.”

이는 현재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인 정우택 대표가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던 2013년 2월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인터뷰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2013년 1월 아들 병역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오면서 지명된 지 5일 만에 사퇴한 이후에 이뤄졌다. 총리 후보자 낙마가 4명으로 가장 많았던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은 이처럼 인사청문회가 지나친 신상검증으로 흐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이는 새누리당이 전신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최근 청문회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5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을 두고 “상한 냄새가 나는 음식이 있다면 먹어보고 버리겠느냐. 지독한 냄새가 나면 버리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사진=노컷뉴스
▲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사진=노컷뉴스
여야 ‘공수’가 바뀌면서 인사청문회에서 주로 방어를 담당하던 자유한국당 의원들 모습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인사청문회에서 주로 문제로 언급되는 탈세와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신상털이식’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되기 쉬운 제도적 허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 ‘이 정도 인사는 괜찮다’고 주장해놓고, 이제 야당이 됐다고 입장을 뒤집는 것 자체가 더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낙마 때 ‘방어’했던 새누리당

한만수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2013년 당시 김앤장과 율촌 등 대형 로펌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주로 대기업 등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변호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한 재산규모가 109억 원에 이르는 점도 지적됐다. 이러한 이력들이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3년 3월25일 한 후보자는 해외에서 수년간 수십억에 이르는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거액의 탈세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인사청문회도 열리기 전 자진 사퇴했다.

한 후보자가 아예 자격조건이 되지 않는다며 인사청문회 자체도 거부하며 공세를 폈던 민주당에 당시 새누리당은 국회 본연의 의무라며 인사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 조원진 의원은 “공정거래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담합 등을 견제하는 자리인데 대기업을 변호하며 엄청난 수익을 받은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그래도 국회가 해야 할 본연한 임무인 청문회는 열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만수 후보자에 대해 같은 당 박민식 의원도 “유영철 같은 흉악범이라고 해서 절차도 없이 사형시킨다면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이냐”고 반문하며 “많은 분들이 한 후보자가 능력도 없고 도덕성에도 큰 흠결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에 대해 반론할 수 있는 해명의 기회 역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절차를 강조했던 조원진 의원은 지난달 31일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 인준표결 절차를 진행 중이던 국회 본청 안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어디 정권 잡자마자 날치기 하고 앉아 있어”라며 “행패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그랬어? 한번 해봐. 너희들이 옛날에 했던 짓 한번 생각해봐. 뭐라 했는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상정돼 투표를 실시하자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항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상정돼 투표를 실시하자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항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정부·여당이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등 임명을 강행한다면 제1야당 입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협치와 소통은 완전히 끝났고, 인사청문회를 계속해야 할지부터 원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63일 만에 사퇴한 이완구 총리도 적극 방어한 새누리당

2015년 임명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부동산 투기 △본인과 차남의 병역회피 △삼청교육대 근무 △시급 천만 원 특강 이력 △허위교수 경력 등 수많은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청문회특위에 불참했던 민주당 등 야당을 제외하고 단독으로 표결해 임명될 수 있었다. 결국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때문에 스스로 물러났다.

이완구 총리는 후보 시절 ‘언론 탄압’ 논란도 불거졌다. 일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자신이 언론인들을 대학총장으로 만들어줬다거나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다. 안되겠다. 통과시켜야지. 내가 지금 막고 있다. 여러분들도 한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가서 당할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등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7일 예정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 인사청문특위에서 자유한국당 간사를 맡은 김도읍 의원은 당시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보기 드물게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언론의 기능을 중시하고, 언론의 자유를 아주 중요시하는 그런 정치인이라고 제가 나름대로 평가를 해보았다”고 감쌌다. 윤영석 당시 새누리당 의원도 “오랜 공직생활 중에 단 한건의 부정이나 비리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적극 방어에 나섰다.

▲ 2015년2월10일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 2015년2월10일 열린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담은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위장전입은 “큰 사회적 비난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더니

정홍원 국무총리는 2013년 인사청문회 당시 일부 부동산을 투기 목적으로 구매하고 위장전입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홍원 총리의 아들과 배우자는 정 총리가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은 이후 주소를 부산으로 이전했는데 정작 본인은 서울에 있는 누나 집으로 주소를 옮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인사청문특위에서 새누리당 간사를 맡았던 홍일표 의원은 2013년 2월14일 YTN라디오 ‘곽수종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아무래도 본인도 사과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흠은 흠”이라면서도 “이런 상황이라면 이게 그렇게 큰 사회적 비난 대상으로까지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생각도 한편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일 열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홍일표 의원은 정홍원 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민병두 의원과 △청문회에 후보자 가족 배석 △개인적인 의혹은 따로 할 것 △정책 중심의 청문회를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홍일표 의원은 청문회에서 김상조 후보자가 청담동 아파트를 구입한 배경에 누군가 특혜 분양을 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으로 도덕성 검증에 치중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찬반이 엇갈리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매번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마다 인사청문회 관계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입장도 함께 바뀌면서 지금까지 인사청문회의 제도적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6년 2월,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등 한나라당이 부적격 판정을 내렸던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 결과 특정 국무위원이 부적격으로 판정되더라도 인사 철회를 강제할 수 없도록 돼있는 현행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씨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2013년 1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의혹과 김용준 총리 지명자의 자진낙마 등 인사 난맥상이 불거지자 “인재를 뽑아서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냐”고 말했다. 또한 “일해야 할 인재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만신창이가 될 수 있어 (공직에 나서는 걸) 피할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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