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9년 간 단절된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민간교류 유연화 조치에 들어가자 조선일보가 잇달아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화와 개성공단 재개 움직임 등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불과 2~3년 전 만 해도 ‘통일이 미래다’라는 기획시리즈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국민과 독자를 상대로 통일나눔펀드 기부를 유도하는 등 통일사업에 적극 나섰다. 박근혜 정권 당시 ‘통일은 대박’ 구호에 맞춰 ‘통일이 미래’라던 조선일보가 새 정부의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에 오히려 적극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태도라는 지적이다. 

또한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은 현재까지 모집한 기금 3100억 원 가운데 대북교류협력 지원 사업 등에 쓴 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지난 5일자 사설 ‘국제사회는 대북 압박 강화, 우리는 남북 접촉 봇물’에서 통일부가 10건의 민간인 북한 주민 접촉 신고를 수리한 것(5일까지는 15건 수리)을 두고 “북의 영·유아 의약품이나 영양 지원, 자연재해 구호 등은 북핵·미사일 사태에도 진행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김정은 손에 달러가 흘러들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가동 재개 약속을 한 것에 대해 “재개하면 김정은 손에 바로 달러 다발을 쥐여준다. 있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선은 남북 당국자간 대화에 대해서도 “당국 간 대화도 북의 핵과 미사일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우리에게도 현실적이고 냉철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 살얼음판 위에서 순진한 대북 선의나 동화 같은 환상은 자해 행위가 될 뿐”이라고 비난했다.

▲ 6월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서울본부 회원들이 남북관계 개선과 민간교류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6월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서울본부 회원들이 남북관계 개선과 민간교류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선은 앞서 5·24 대북제재 7주년을 앞둔 지난달 23일자 사설에서도 “북핵 최대 피해국인 우리가 김정은 주머니에 달러가 흘러들어가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고 한다”며 “북은 교류를 위해 방북한 우리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 같은 논조는 2~3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1월1일 ‘[2014 조선일보의 길] 남북 7500만 ‘통일의 꿈’을 찾아 나섭니다’라는 사고를 내어 남북통일의 길을 찾아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한반도 통합, 남북통일의 새 길을 찾아 나섭니다. 분단 69년, 이제 우리 민족이 한반도 반쪽 사고(思考)의 틀을 깨지 못하면 남한은 선진화의 문턱을 넘을 수 없고 북한은 최빈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통일이야말로 일제(日帝)의 완전한 청산이며, 통일이 다가올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들은 잦아들 것입니다. 남북이 하나 될 때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길도 열립니다.”

심지어 조선은 당시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해 “지금 한반도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다”며 “그러나 꿈을 공유한 국민은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 없는 민족이 내일을 준비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10여 개 연구기관과 ‘통일이 미래다’ 공동 기획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 날부터 시작한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에서 조선은 △‘통일한국, 20년간 경제 혜택(GDP 증가 누적분)만 6300조’, ‘“통일, 2030세대에 ‘기회의 窓’… 통독때 공무원 일자리만 1만개 생겨”’, ‘“통일 비용은 순간, 통일 이익은 영원”’(각각 그해 1월6일자 기사) △‘통일은 東北亞 모두 윈윈…세계 금융중심지로도 각광받을 것’, ‘남북 통합, 한중일 FTA 가속화하고 16개국 ‘아태 경제통합’ 촉매될 듯’(1월24일자) 등의 기사를 썼다.

▲ 조선일보 2017년 6월5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7년 6월5일자 사설
조선은 그해 6월13일자엔 자신들이 후원한 통일한반도 국토비전 세미나 내용을 담은 ‘“두만강 하구에 ‘동북아 베네치아’ 만들자”’라는 기사도 실었다. 당시 주제 발표에 나선 김석철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두만강 하구의 접경 지역 300만평(북·중·러 각 100만평)에 시장·공항·항만·공단·관광 도시 등이 합쳐진 다국적 복합 도시를 만들면 북한 경제는 물론이고 동북 3성과 극동 지역이 퀀텀 점프(Quantum Jump·대약진)를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소개한 기사다. 이에 따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위원장 김석철)는 그해 12월25일 두만강 하구 북·중·러 접경 지역에 다국적 자유경제도시를 만드는 국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조선은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정부의 북한 개발 방안 마련을 이끈 것이다.

이밖에도 대기업이 북한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도 실렸다. 김정은에 달러가 흘러들어가게 해선 안된다는 최근의 사설과는 정반대이다. 조선은 2015년 1월9일자엔 대북 사업가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인터뷰를 통해 ‘“대기업들이 평양 들어가 변화 물꼬 터야”’라는 기사를 실었다. 박 사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교류의 핵심은 역시 경제 교류”라며 “기업이 평양에 들어가야 남북통일도 빨라지고 경제 통합도 빨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집중 취재한 배성규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차장은 2015년 2월27일 칼럼 동서남북 ‘장밋빛 비전만 넘쳐난 ‘통일 대박’ 1년’에서 교착된 남북관계가 박근혜 정부에서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배 차장은 “고위급 회담은 중단됐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꼬여있다”며 “통일 대박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전략이나 액션 플랜도 제시된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방침은 뚜렷하지 않다”며 “말만 있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없는 당국간 대화가 자해행위”라는 최근 사설과는 배치되는 기자 칼럼이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도 그해 2015년 5월19일 자사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개회사에서 “통일이 훨씬 나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남북한 주민들이 공유할 때 서로 믿고 협력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며 “한반도 통일은 세계의 안전과 평화와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머리기사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머리기사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사고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사고
불과 2년 만에 조선일보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원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북핵문제의 국제공조와 제재국면이라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대화와, 인도적 지원문제는 국제사회 누구도 동의하는 것”이라며 “남북관계 경색과 핵 미사일 군비확충과 무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원 의원은 “적어도 인도적 지원 비정치적 문화체육 교류까지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닌데도 (이마저도) 그때그때 다르다”며 “우리 모두가 남북문제에 대해 일관되고 통일되고 지속적 원칙을 갖고 대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6·15 남측위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일용 연합뉴스 대기자는 5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벌여온 통일이 미래다 기획과 통일과 나눔 재단의 활동과 남북문제에 대한 지금의 조선일보 주장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이런 조선일보의 주장을 어떤 사람들이 맞는다고 납득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관계자는 5일 “통일의 중요성이나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회사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다만 사설은 논설의 영역이기 때문에 경영기획실 차원에서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실 관계자는 6일 오후 “(논조 변화와 관련해) 미디어오늘이 보낸 질의서를 어제 양상훈 주필에 전달했는데 오늘(6일) 양 주필이 ‘아무 말씀을 안드리겠다’는 답변을 줬다”고 전했다.

한편, 조선일보가 적극 보도해온 통일나눔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사장 안병훈)이 거액을 모금했으나 아직 직접적인 대북사업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구체적인 대북사업 계획조차 수립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병길 통일과 나눔 사무국장은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모금한 기부금이 31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이준용 대림 명예회장이 기부한 주식 2800억 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순수하게 개별적으로 모금한 금액은 300억 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명예회장의 주식은 지난해 10월14일 재단에 넘어왔으며, 올해 주주총회 때 이 주식에 대한 배당금 60억 원이 재단 주식으로 잡혔다고 전 국장은 전했다.

▲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홍보 동영상. 영상 갈무리
▲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홍보 동영상. 영상 갈무리
통일과 나눔의 모금액 집행에 대해 전 국장은 지난해 21개 단체에 모두 13억 원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해 한 단체당 평균 6500만 원 정도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민간 재단법인에서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 사업이나 인도적 지원, 경제 사회교류를 위한 대북사업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전 국장은 ‘통일부에 대북사업 신고 및 신청해놓은 것이 있느냐는 질의에 “아직은 없다”며 “지난해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다보니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정부가 하는 것에 대해 보조를 맞춰서 할 생각”이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와 같이 오래된 단체는 북한과 접촉 라인도 있는데 반해 우리는 아직 그런 루트가 없다”며 “중장기 과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일과 나눔의 정관을 보면, 사업목적에 해당하는 제4조 2항은 “대북 교류 협력 지원”으로, 3항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인권 증진 등 삶의 질 향상 사업”으로 규정돼 있다. 사업목적상 대북사업을 하게 돼 있는 것이다.

이 재단과 조선일보와 관계에 대해 전 사무국장은 “(법적인) 출자관계는 전혀 없다”며 “다만 설립할 때 MOU(양해각서)를 맺어 우리는 통일운동 하고 조선일보는 보도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일의 미래다 기획처럼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게 조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민간재단이어서 신문사가 보도를 통해 후원해주는 것일 뿐”이라며 “(우리 활동과) 조선일보의 보도는 무관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기사 일부보강 2017년 6월6일 14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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