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되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는 구치소에 있는데, 하필 같은 구치소로 들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내로 강제송환된 정유라씨는 인천공항 항공기 탑승구 앞 포토라인에서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중에 주목된 것은 대학관련 내용이었다.

“저는 학교에 안갔기 때문에 입학취소를 인정한다”면서 “사실 전공이 뭔지도 모르고 대학에 가고 싶어 한 적이 없다”고 정씨는 말했다. 대학에 가고 싶어 한 적도 없고, 대학에 합격하고도 가지 않아 전공조차 모른다는 고백을 보면서 어머니가 자식을 망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차관은 물론 교수들도 종부리듯 위세를 떨친 최순실씨에게 딸의 이화여대 입학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총장, 처장, 교수들을 어떻게 회유·협박했는지 부정입학, 부정학사관리, 부정시험, 부정리포트 등 부정이 소위 일류대로 알려진 이화여대에 강물처럼 흐르게 했다.

▲ 덴마크 경찰에 구금됐던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5월3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덴마크 경찰에 구금됐던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5월3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부모의 정치권력이나 재력이 넘쳐나서 주체할 수 없는 재벌2,3세에서 보게 되는 전형적인 ‘전지전능 부모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부모는 자식을 확실하게 망치는 줄도 모르고 부모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정의와 부정의,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라는 부모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자식이 술주정을 부리다 맞고 오면 조폭을 동원하여 아버지가 보복 폭행을 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들이나 딸이 별로 능력도 없어 보이는데 어린 나이에 대한항공 전무, 부사장 자리에 앉히고 기내폭행 해서 논란이 되면 아버지가 대신 나서서 사과하는 부모. 그런 부모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쯤이면 자녀들끼리는 엄청난 재산이나 자리다툼 때문에 소송으로 간다. 화불단행.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부르는 법이다. 정씨의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구속, 불구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빗나간 사랑과 과욕 때문에 자식의 인성교육을 망쳐놨다. 평생의 업보로 고단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공부만 강조하는 ‘1등지향 부모들’이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만큼 공부에 미쳐 돌아가는 나라는 드물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공부 1등이 지금처럼 과대평가 받으리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반1등이 부족하여 전교1등 전국1등을 노래하던 어머니가 아이가 반항하며 집에 불을 질러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전국민을 충격으로 빠지게 하는 나라다. 

생각해보라. 2017년 수능 시험대상이 59만명이라고 한다. 이중 상위 몇 %가 자기가 원하는 대학교,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느냐고 학부모에게 물어보면 1% 혹은 3%라고 말한다. 너무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1-3%에 들어가는 학생이라면 매우 우수한 학생은 맞다. 59만명중 1%라면 5천9백등이라는 의미다. 서울대 의대 법대는 물론 연대 고대 인기학과에 가는 것도 쉽지않은 등수가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수능날은 난이도가 어떻게 나오든 상위 0.5 정도 외에는 모두 곡소리를 내는 초상집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과외, 학원 가리지않고 사교육에 투자, 학생들을 지치게 만들고 돈은 돈대로 탕진하게 된다.

세 번째는 자기감정 조절조차 못하는 아이 같은 부모유형. 어른이 된다는 것, 특히 학부형이 된다는 것은 가정에서 선생님 역할을 겸하는 것이다. 아이와 다투고 짜증내고 소리치는 것은 최악이다. 어른 공부를 해야 한다.

미국 코네티컷 주 법원이 최근 아기 엄마와 휴대전화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홧김에 생후 7개월 된 자신의 아들을 다리 위에서 내던져 사망에 이르게 한 '비정한' 아버지에게 징역 70년 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어린 자식이 감정조절도 제대로 안되는 못난 아버지 만나 너무 빨리 세상을 등졌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국내에도 많다.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다고 아버지가 직접 학교에 찾아가 주먹질을 하거나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못난 부모들도 도처에 있다. 학교를 비난하고 교사를 욕하는 학부모가 공교육을 더 몰골로 만드는 셈이다. 감정조절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학부모가 되는 순간부터는 적어도 이런 경각심을 갖고 인생공부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내 아이가 먼저 망가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비교하는 학부모 유형.

어릴 때는 옆집 공부 잘하는 아이와 비교하고 고등학생쯤 되면 동네 누가 서울대, 카이스트 갔다더라고 비교, 협박하고… 대학 가면 누구는 삼성에 현대에 들어가면 연봉이 얼마더라며 친인척에 친구 자식 선후배와 비교하는 학부형들. 지방대학 다니거나 서울 유명대에 다니는 것을 비교하다가 나중에 결혼식때는 혼수품이나 사위 며느리 학벌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무서운 학부모유형은 만족과 행복을 모른다. 눈은 높아 항상 위와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진다. 삶이 고단하고 자식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 ⓒ gettyimage
▲ ⓒ gettyimage
이런 4 가지 유형에 속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부속품이나 장식품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식의 실패와 좌절을 받아들이며 젊은 시절의 고생을 독려하는 사람들이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 판단을 믿어주고 실패의 기회를 지켜보며 스스로 일어나도록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다. 대충 키우는 자식이 더 잘 된다. 대학 꿈도 꾸지않는 아이를 이화여대 같은 곳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총장과 교수, 처장, 장차관들을 종부리듯 해야 한다. 법과 정의를 훼손하고 학교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결국 자신과 딸까지 망치게 한다.

궁핍이나 고생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피할 수 있으면 굳이 그런 경험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언컨대 인간은 말이나 교과서보다 체험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가진 자가 조금만 겸손해지면 그런 체험의 가치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