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검사로 임관, 대검찰청 공안1·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를 지내며 ‘꽃길’을 걸었던 임수빈 검사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사건의 주임검사 시절 제작진을 기소하라는 검찰 지휘부 지시를 거부하고 무혐의를 주장하다 이듬해 1월 옷을 벗었다. 올해 서울대에서 검찰권 남용 통제 방안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학위논문을 쉽게 풀어 쓴 책을 내고 검찰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 임수빈 전 검사.
▲ 임수빈 전 검사.
그는 이 책의 저자 인터뷰에서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2008년 당시) 그때 그런 고민을 했었다. ‘PD수첩’ 사건 당시 아들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래서 아들한테 떳떳한 아빠로 남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검찰 권력은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건데 검찰이 국민한테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어느 날 검찰이라는 조직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사는 문관이다>란 이 책에선 그의 오랜 검사경력만큼 개혁방안도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우선 피의사실공표문제. 그는 “검찰에서 피의 사실을 언론에 공개할 때 정말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채워주는 차원에서 얘기하는 것인지, 그걸 빌미로 일종의 낙인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는 언론에서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의사실공표의 허용 범위와 한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수빈 전 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검찰은 공소를 제기하기 전 약 40회에 걸쳐 피의 사실을 언론에 브리핑했다”며 “피의 사실 공표의 가장 큰 문제는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9년 3월20일부터 5월22일까지 두 달여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신문은 1304건, 방송은 567건 보도했다. 당시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와 같았다.

▲ 검찰 로고.
▲ 검찰 로고.
그는 또한 “타건 압박 수사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살인적 수사방법으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A범죄 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를 내세워 B범죄 수사의 증거나 진술을 얻는 타건 압박수사의 목적은 ‘본건의 증거 확보’인데 이 과정에서 심한 정신적 고통과 인권유린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그는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심신이 위축된 피의자에게 자백을 얻어내려는 목적”의 심야조사·철야조사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수빈 전 검사는 “양형기준제와 마찬가지로 기소기준제를 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수사절차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소기준제는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막기 위해 범죄별로 기본점수를 부여해 가중되거나 감경되는 사유에 따라 점수를 산출, 기준점수와 비교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이 경우 기소가 당연한데도 불기소 처분을 했던 사건도 바로잡을 수 있다.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세상이 변했다. 그런데 검찰만 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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