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씨 승마 지원 뇌물 혐의와 관련해 핵심 증인으로 꼽힌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삼성그룹 측 증인들의 진술을 반박하고 나섰다. 삼성그룹 임직원이 ‘말 맞추기’에 나섰다는 특검 측 주장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는 3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21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전 전무는 2015년 6월부터 12월 초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씨 승마훈련을 지원한 최씨의 측근으로 삼성전자의 ‘정유라 1인 승마 지원’과 관련된 핵심 증인으로 지목됐다.

박 전 전무에 따르면 ‘정유라 지원’을 먼저 언급한 것은 삼성 측이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당시 승마협회 회장)은 2015년 7월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박 전 전무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승마종목을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지원할거니 정유연을 포함한 지원계획을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증인이 먼저 박상진에게 정유라 지원을 요구했느냐’는 특검 측 질문에 그는 “한 적 없다”고 일축했다. 29일은 2015년 7월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대통령 간 ‘두번째 독대’가 열린지 4일 후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박상진 사장의 말은 이와 반대다. 박 사장은 지난 특검 조사에서 박 전 전무로부터 “최순실씨가 딸을 생명처럼 소중히 생각하는데 정유라 자체가 정신상태가 불안해 엄마가 정유라를 이기기 어렵다”면서 “정유라가 마음먹고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있는 건 승마밖에 없다. 정유라 승마훈련을 지원해달라. 최순실의 생명과 같은 정유라가 독일에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박 전 전무는 최씨와 대통령 간의 오랜 친분관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박 전 전무가 알려줘 최씨와 대통령 간의 관계, 최씨의 영향력 등을 알게 됐다’는 박 사장의 진술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박 전 전무는 “최씨가 대통령 옷을 사주고 한 거 자체를 몰랐다”며 “최순실이가 대통령이랑 직접 만나고 한 건 근래 언론 통해서 알았다. 그 때 말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지난 특검 조사에서 박 전 전무가 7월29일 프랑크푸르트 만남에서 '최순실은 최태민 목사의 딸인데 박 대통령이 어려울 때 옆에 있으며 친자매처럼 돌봐줬다. 대통령이 된 후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며 여성용품, 귀걸이 등 수발을 들며 현재까지 절친한 관계'라며 '최순실은 대통령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최순실의 말 한마디가 바로 VIP에 전달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전무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2015년 7월29일 경이 돼서야 정유라를 파악했다’는 삼성 측 피고인들의 주장은 위증이 된다.

박 전 전무는 이날 법정에서 삼성 측의 ‘2015년 7월 말에야 최순실씨의 딸 정씨를 알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당시 승마협회 회장)이 2015년 3월25일 회장 취임 후 “정유연 선수가 임신했단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본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특검 측 김영철 검사는 “3월25일에 취임했고 정씨는 5월8일 아이를 출산했으니 3월25일과 5월8일 사이라 보면 되겠네요”라고 물었고, 박 전 전무는 이에 “출산 전에 했는지 후에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 무렵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종전 전 승마협회 전무도 박 전 전무와 마찬가지 진술을 했다. 김 전 전무는 지난 29일 제20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협회 부회장이었던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가 2015년 5월 경 ‘정유라가 임신을 했는지 물어봤다’고 증언했다. 이 상무는 “그런 적 없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바 있다.

‘정유라 인지 시점’은 삼성 측의 뇌물 공여 혐의 입증을 위한 근거다. 삼성이 최씨와 정씨의 존재를 인지한 가운데 78억 원 가량의 자금을 정씨 승마 훈련에 지원했고 삼성 측의 부정청탁 사실이 입증되면 양측 간에 대가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첫 번째 독대인 2014년 9월 대통령이 승마협회 인수를 요구한 게 정유라 때문임을 알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삼성전자가 2015년 최씨 소유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와 맺은 213억 원 대 계약 및 1여 년 간 실제로 지급한 77억9735만 원은 정씨가 최씨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지급한 뇌물이라는 것이다.

삼성 측 피고인들은 2016년 2월 '세 번째 독대' 이전엔 대통령에게서 정유라씨 승마 지원 언급을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은 2016년 8월이 돼서야 최지성 전 미전실장의 보고로 두 사람을 알게 됐고 나머지 피고인 4명은 2015년 7월 말 경에서야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삼성 관계자, 거짓 진술 했나?

박 전 전무는 정씨의 승마지원 계획의 초안격인 ’한국 승마 지원 중장기 로드맵’ 을 그가 먼저 제안했다는 삼성 측 주장도 반박했다.

박 전 전무는 2015년 6월5일 이영국 상무를 만나 아시아승마협회 회장 출마 및 승마협회 통합 문제를 논의하던 도중 이 상무가 ‘승마 종목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삼성이 회장사가 된 것이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무슨 지원을 해야 하느냐’고 먼저 물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영국 상무가 구체적 계획을 세워달라고 했고 계획을 김종찬 당시 전무를 통해 보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상무는 이와 관련해 ‘박 전 전무가 먼저 올림픽 승마 지원 계획 수립을 제안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다.

삼성, ‘협회 임원’ 아닌 박원오 왜 수차례 접촉했나

박상진 사장은 회장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4~5월 경 박원오 전 전무에게 만남을 제의했다. 당시 박 전 전무는 협회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었음에도 삼성전자 및 대한승마협회의 고위 관계자가인 박 사장과 이 상무 측이 먼저 면담을 제안한 것이다.

“협회 임원이 아닌데 왜 박상진 사장과 이영국 상무가 증인을 만난 것이냐”는 특검 측 질문에 박 전 전무는 “만나자고 한 자체는 나에 대해 만나야 될 이유 있으니 만났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이 상무가 2015년 6월5일 다시 협회 임원이 아닌 박 전 전무의 면담 요청에 응한 이유에 대해 “증인이 협회 관계자가 아닌데 만난 건, 최순실씨의 대리인임을 알아서가 아니냐”고 물었다. 박 전 전무는 “그게 아닌데 만날 이유는 없을 거 같다”면서 “내 생각으론 정황상 그런 내용 알고 있지 않았겠나 생각한다”고 수긍했다.

‘승마 뇌물의 발단’ 정유라 독일행 이유는

정유라씨의 독일행은 삼성 측의 정유라 승마지원 뇌물 혐의의 발단이 됐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전무는 최씨가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한 딸을 창피해 한 것이 원인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박 전 전무는 딸의 출산을 창피해하는 최씨에게 “애 낳은 것이 무슨 창피냐. 좋은 뜻으로 결혼시키면 된다”고 말했고, 최씨는 “(남편이) 결혼할 상대가 아니다. 딸이 아이를 낳은 게 창피하다. 아이를 낳고 여기서 무엇을 하냐. 독일같은 데 가서 말이나 타고 아이를 키우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에 박 전 전무는 최씨와 2015년 4월 정씨의 출산 전 독일을 방문해 거주할 지역을 둘러봤다.

박 전 전무는 6월22일 먼저 독일에 가 정씨의 정착 준비를 도왔다. 정씨는 6월 말 독일에서 살 주택이 마련된 후 6월30일 남편 신아무개씨와 아들, 남편의 친구 김아무개씨, 반려견 등과 함께 독일로 떠났다.

박 전 전무는 최씨의 ‘나쁜 사람’ 발언이 전 대통령 박근혜씨 입에서 똑같이 나온 것을 알고 “최씨와 박 대통령이 정말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3년 대한승마협회 비리를 감사하던 진재수 문화체육관광부 과장이 박 전 전무의 인적 사항, 과거 전력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박 전 전무로부터 전해 듣고 '참 나쁜 사람들이군요'라고 말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등에 따르면 박씨는 2013년 8월 유진룡 전 장관 등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승마협회 비리를 감사한 노태강 전 국장, 진재수 전 과장 이름을 직접 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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