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최근 ‘인권경찰’이 되겠다고 경찰이 살수차 운용 지침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재판부는 경찰이 민중총궐기 당시 차벽을 설치하고 물대포를 발사한 것 등에 대해 정당하다고 본 2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민중총궐기 등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상균 위원장의 상고심에서 한 위원장에 대해 징역 3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을 31일 확정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2심 판결에서 한 위원장 측이 △집회·시위 중 교통방해를 유발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 집시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 △경찰이 집회·시위 신고에 대해 금지 통고를 한 것은 위법이라는 점 △차벽 앞에서 경찰에 유형력 행사한 것이 다중의 위력을 행사한 공무집행 방해가 아니라는 점 △사전 신고없는 국회 앞 집회 해산명령이 적법하지 않다는 점 △차벽설치와 살수차 운용의 위법 등을 주장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지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특히 살수차 운용의 위법 여부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인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인정했다. 원심에서는 살수차 운용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며 “경찰은 같은 날(2015년11월14일) 18:50경 종로구청 입구에서 시위참가자인 백남기의 머리 부분에 직사 살수하여 그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뇌진탕을 입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쓰러진 이후에도 그에게 계속하여 직사 살수를 한 사실, 같은 날 밤 시간불상경 부상을 입고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시위 참가자와 그 응급차량에 직사 살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러한 시위진압행위는 위법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일부에서 사실상의 ‘위법행위’가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살수차 운용에 대한 공무집행 전체가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를 대법원도 인정했다. 지금까지 적용된 살수차 운용 지침이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지침 개정안을 만들고 있는 경찰의 최근 움직임과는 다소 배치되는 결정이다.

서울고법은 판결문에서 “이 사건 당일 개별적인 살수 행위 중 일부에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고 하여 이를 제외한 나머지 살수차 운용에 관한 공무집행 전체가 위법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차벽을 설치한 경찰의 공무집행이 위법하다는 주장에 대해 서울고법은 “경찰의 금지 통고에도 불구하고 당초에 예정한 대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는데, 청와대는 집시법 제11조 제1호에 따라 절대적으로 집회가 금지되는 장소”라는 점과 “그 당시 시위대의 숫자(6만8000명 가량)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경찰은 차벽을 이용하여 그 진행을 제지하는 것 외에는 임박한 손해발생의 위험을 제지할 다른 수단이 없었다”는 점에서 차벽 설치가 불가피했다고 인정했다.

한 위원장 측은 경찰의 차벽이 집시법상의 질서유지선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위법하다고 주장했으나 서울고법은 “긴급한 상황 하에서 참가자들의 행진을 제지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며 “당시 설치된 차벽은 사전적 질서유지선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2015년11월14일 민중총궐기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 2015년11월14일 민중총궐기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또한 서울고법은 해산명령 불응과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 국회의사당 등 집회가 금지된 장소에서 발생한 집회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즉각 해산돼야 하는 것이 아니며, 경찰의 자진해산 요청 절차가 없었다는 한 위원장 측의 반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국회의사당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제11조 제1호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정당한 사유에 의한 제한”이라며 “국회 정입에서의 차량출입을 불가능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집시법이 집회금지장소를 정한 취지에 반하여 국회의사당과 국회시설의 안전, 국회의원과 일반시민들의 자유로운 출입과 업무수행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집회를 직접 제지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상황임을 강조한 것이다. 절차적 요건 역시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2015년 4월16일과 18일에 진행된 집회와 시위 중 한상균 위원장이 교통방해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집시법 위반으로 판단했다는 한 위원장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서울고법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은 “참석자들은 질서유지선을 넘어 대한문 앞 세종대로를 점거한 채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했을 당시 차벽이 설치되고 수차례에 걸친 해산명령이 있었던 사실과 함께 한 위원장도 해당 행진에 참석했으므로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를 인정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의 판단은 1심 재판부가 내린 판결에 비해 그나마 가벼워진 것이다. 당시 서울고법은 판결문에서 “집회·시위를 평화적으로 진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찰과의 충돌을 직·간접적으로 선동하고 사전에 경찰의 차벽을 뚫는 데 사용할 밧줄과 사다리를 준비하기까지 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당시 피해를 입은 경찰관의 숫자나 경찰차량의 손괴 정도가 상당하고 극심한 교통혼란”이 발생했다는 점도 인정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검찰 측 주장을 모두 인정해 징역 5년,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다만 서울고법은 “경찰의 전체적 대응이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다소 과도했던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찰의 대응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백남기 농민을 향한 물대포 직사가 있었던 날인 2015년 11월14일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의 대응 중 “일부 조치는 시위대를 자극했던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경찰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하더라도 재판부가 경찰보다 집회 및 시위 참가자에게 ‘평화’적인 집회를 강조하면서, 허가받지 못한 집회와 시위는 불법으로 판단하는 관점을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역시 한 위원장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러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민주노총은 31일 논평을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는 허가받아야만 하고, 불법권력에 맞선 저항과 집회시위를 억압하기 위한 차벽설치와 물대포 사용에 대해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한 치욕적 판결”이라며 “박근혜 정권의 집회시위에 대한 억압과 탄압이 불법적 공권력 행사였음은 박근혜 탄핵으로 이미 충분히 확인되고도 남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정당한 저항권 행사에 대한 유죄선고는 헌법이 보장한 민주적인 권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판결”이라며 사법 정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새로 써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 위원장 구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엔의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은 지난달 25일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 의견을 채택했다.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도 30일 “(새 정부는)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석방해야 한다”며 “일본과 미국 등 대부분 나라에서는 노동계 지도자가 시민사회의 곁에서 영웅이 돼 많은 일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 사람을 구속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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