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중 우선하겠다고 발표한 5개당 공통공약에는 검경 수사권 분리가 포함돼있다. 경찰에게 독립적인 수사권을 부여하겠다는 조치이지만, 그 이전에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경찰 등 관계기관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의지’를 밝히는 것이 첫 걸음이다. 이에 대해 여러 국제 인권 기준이나 국제 사회의 권고,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 의견 등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유엔 국제인권규약 중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1조에 따르면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가 인정”되며 “법률에 따라 부과되고 또한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도덕의 보호 또는 타인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과하여져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외에도 백남기 농민 사건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제대로 해결하라는 국제사회의 지적도 따가웠다. 스위스 제네바 현지시각으로 지난해 9월26일 오후에는 국제인권연맹과 유럽노총, 국제노총, OECD노동조합 자문위원회가 경찰폭력으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을 애도하며 국가 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당국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평화로운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해 책임지기를 회피하고 정의 실현을 지체하려는 정부당국의 시도를 규탄한다”며 “우리는 2015년 11월14일 발생한 사건에 대해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며 군중 통제 및 집회의 자유에 관한 경찰 지침, 특히 물대포 사용에 대한 지침을 철저하게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 니콜라스 베클란 동아시아 사무소장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직후인 지난해 9월25일 긴급 논평을 통해 “백 농민의 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발생 10개월이 지나도록 수사에 진전이 없었던 것에 우려한다. 지금까지 관계 경찰관 단 한 명도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며 “과도한 무력 사용 혐의를 받는 경찰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 보고관 역시 현지시간 지난해 9월28일 성명을 발표하고 “유가족과 백씨의 동료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며 “진상조사를 통해 가해자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하고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해9월29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정치,종교,시민사회단체,학생 등 각계 각층의 3000여명이 참여해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이 열렸다. 백남기 씨의 차녀 백민주화씨가 참가자들의 발언을 들으며 울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해9월29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정치,종교,시민사회단체,학생 등 각계 각층의 3000여명이 참여해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이 열렸다. 백남기 씨의 차녀 백민주화씨가 참가자들의 발언을 들으며 울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국외 뿐만아니라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살수차에 대한 사용 기준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살수차를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할 경우 인체에 대한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살수차의 최고 압력이나 최소 거리 등의 구체적 사용 기준을 부령 이상의 법령에 명시하도록 경찰청장에 권고했으나 경찰청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집회 현장에서 물대포를 발사하는 행위가 기본권 침해가 아니냐는 헌법 소원도 2014년 각하됐다. 2011년 한미FTA 집회에서 물대포를 발사한 것이 기본권 침해라는 헌법 소원에 헌재는 “물대포 발사 행위가 이미 종료돼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 상황도 마무리된 만큼 헌법소원을 제기할 실익이 없다”며 “앞으로 집회 현장에서 당시처럼 근거리에서 물대포를 발사하는 행위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1년 뒤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 백남기 농민 사례와 관련된 유사한 사례가 재차 발생할 수 있고 수사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청장에게 살수차의 운용실태를 점검하여 안전성을 강화하고, 그 사용을 자제하는 등 근본적 대책 수립을 권고하고 △검찰총장에게 백남기씨 관련 고발 사건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이후에도 경찰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국제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의 노르마 강 무이코 동아시아 담당조사관은 2009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당시 경찰이 과잉진압했다는 증거가 많이 있는데도 이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아직까지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무이코 조사관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국민은 더 많은 정치적, 시민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향유하고 있지만 요즘도 인권침해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이전에는 ‘또 다른 백남기 농민’들이 존재해왔다. 식량주권을 사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전용철 열사는 2006년 WTO 쌀 협상 비준안 국회처리에 반대하기 위해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전투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맞아 결국 숨을 거뒀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과 책임을 밝혀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면, 물대포 발사 등 경찰의 시민에 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백남기 농민과 같은 제2, 제3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자 적폐 청산을 실현할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30일 “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라도 인권감수성을 먼저 키워야 한다”며 “그 시작은 백남기 농민 사건 등 경찰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재수사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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