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정유라씨의 승마훈련 지원으로 지급한 78여 억 원은 최순실씨가 삼성물산 합병을 도와준 대가라는 전언이 법정 증언으로 나왔다.

김종찬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는 2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20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씨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도움을 줘서 삼성이 정유라에게 많은 돈을 지원했다고 말한 것을 전해 들었다"고 증언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김 전 전무는 이 말을 2015년 6월부터 12월 초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씨를 돌보며 승마훈련을 지원한 최씨의 측근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로부터 '12월7일 대책회의' 이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12월7일은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당시 승마협회 부회장), 박 전 전무, 김 전 전무가 모여 언론이 삼성의 정씨 승마 지원 의혹 보도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날이다.

이 진술은 최씨가 삼성 측의 현안 해결에 대한 대가로 뇌물을 지급받은 정황으로 뇌물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되는 간접 증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측 피의자 5인, 최씨, 전 대통령 박근혜씨 등 피의자 전원은 부정청탁 및 그에 따른 대가관계 인식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전무는 법정에서 "당시 '대통령'이라는 말은 안했던 것 같고, 최순실에게 이 얘기를 들었다고 박원오 전 전무가 말했다"면서 "보통 얘기가 아니라서 깜짝 놀랐다. 더 물어봐도 (박 전 전무가) 대답을 안해 그 정도 선에서 그만 물었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증거법칙상 증거능력이 부족한 재전문진술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해당 진술의 신빙성은 박원오 전 전무의 증인신문이 예정된 오는 5월31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전무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1월 경까지 승마협회에서 근무했다. 그는 2015~2016년 동안 승마협회 내부 관계자로서 삼성그룹의 '정유라 승마지원' 과정에 연루됐다. 그는 박원오 전 전무와 가까운 사이이자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전 승마협회 회장) 및 황성수 전무(전 승마협회 부회장)의 부하 직원으로서 양자의 가교 역할을 부분적으로 맡았다.

모순되는 진술, 삼성 임직원들 위증 했나?

김 전 전무는 지난 특검조사에서 삼성그룹 임직원들과 배치되는 진술을 해 삼성 측 '말 맞추기' 의혹을 밝혀 줄 증인으로 지목됐다.

삼성 측 피고인들은 2016년 2월 '세 번째 독대' 이전엔 대통령에게서 정유라씨 승마 지원 언급을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은 2016년 8월이 돼서야 최지성 전 미전실장의 보고로 최씨와 정씨를 알게됐고 나머지 피고인 4인은 2015년 7월 말 경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이 첫 번째 독대인 2014년 9월 대통령이 승마협회 인수를 요구한 게 정유라 때문임을 알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삼성전자가 2015년 최씨 소유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와 맺은 213억 원 대 계약 및 1여 년 간 실제로 지급한 77억9735만 원은 정씨가 최씨의 자식임을 알고 지급한 뇌물이라는 지적이다.

김 전 전무는 이날 법정에서 "2015년 5월 이영국 협회 부회장(현 제일기획 상무) 이 정유라가 임신을 했는지 물어봤다"면서 "정확히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다.

정씨가 승마협회에 독일 전지 훈련 계획서를 낸 것을 기억한 김 전 전무는 '정유라는 독일에서 훈련 중이다. 출산한 적 없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특검에서 '이영국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 진술한 것에 대해 그는 "'나는 아는데 넌 모르냐'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라 말했다.

이영국 상무는 지난 17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물어본 적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전무는 2014년 '승마인의 밤' 행사 당시 정씨에 대해 '불참 조치'를 주도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영국 상무는 김 전 전무가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취지로 특검에 밝힌 적이 있다. 이 상무는 2014년 12월17일 행사 종료 후 "(언론이) 정윤회씨 딸 수상 참석을 취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으나 사전 불참으로 조치됐다"는 내용의 문자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 보냈다. 이 문자는 장충기 전 차장 및 이영국 상무가 2014년 말 정씨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다.

김 전 전무는 박상진 사장이 박원오 전 전무가 독일에 있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내놨다.

그는 2015년 7월23일 오전 10시41분 경 박상진 사장의 요구로 박 전 전무의 독일 연락처를 문자로 전송했다. 박 사장은 23일 오전 10시 최 전 실장, 이 부회장과 함께 '25일 대통령 독대'를 대비한 대책회의에 참석했다. 특검은 이때 혹은 이전부터 삼성이 정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논의했고 박 전 전무가 독일에서 정씨를 돌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두 시간 전인 같은 날 오전 8시 박 사장을 만나 '올림픽 지원 계획' 관련 보고를 했던 김 전 전무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만약 그때 물어봤으면 내 휴대전화에 번호가 있으니 바로 알려줬을 것"이라면서 "독일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하니 박상진 사장이 박원오가 독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전무는 '박 전 전무의 근황을 알려 줄 사람이 증인말고 또 있느냐'는 특검 측 질문에 "7월이면 (승마협회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때"라면서 "협회 직원들이 알았고 권오택 협회 총무(삼성전자 부장)가 있으니 보고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전무는 박 사장이 7월 중순 '컨설팅업체'를 직접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박 사장 측 진술을 반박했다. 박 사장은 2015년 7월26일 "(박 전 전무에게) 독일 체류하는 곳 찾아간다하고 마장시설, 정유연 훈련도 보고 컨설팅 업체 만나는 일정 만들어달라고 하세요"라고 지시 문자를 이영국 상무에게 보냈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25일 저녁 김종찬 전무, 이영국 상무와 만난 자리에서 김종찬 전무가 '박원오가 정윤회의 딸 정유라를 돌봐주며 컨설팅 회사를 통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전 전무는 그날 박원오 전 전무에 대한 언급이나 컨설팅 업체를 통한 승마지원 계획 등을 말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구체적인 컨설팅 회사는 8월26일 이후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8월26일은 삼성과 코어스포츠가 계약을 체결한 날이다.

'삼성 뇌물 사건' 20회 공판은 지난 29일 오후 2시에 시작해 다음날 30일 새벽 2시 경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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