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라 문빠야” “아니꼽다고 좌표 찍은 뒤 개떼처럼 몰려가 일점사해서 굴복시키는 시대면, 언론이 왜 필요한가. 그게 파시즘인데.” 각각 안수찬 한겨레21 전 편집장과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했던 발언이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한겨레와 미디어오늘은 사과문을 올리고 공통적으로 ‘소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혁신 전문가로 꼽히는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안수찬 기자와 김도연 기자 등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과 대립한 기자 개인의 일탈로 사안을 바라보고 ‘일탈’을 통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건 대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26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한국경제 사옥에서 최 기자를 만났다.

최진순 기자는 “이번 사안을 일부 기자의 일탈이라고 보는 시각에 반대한다”며 운을 뗐다. “‘문빠’라고 하는 사람들의 불만, 과도한 분풀이로 한정짓는 것도 난센스다. 근본적으로는 진보언론이 독자층에 대해 어필을 하지 못했던 문제”라며 ‘혁신의 부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독자에게 어필을 하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재인 지지자들이 진보언론의 보도에 대해 문제를 삼는 내용에는 ‘밥을 퍼 먹었다’(경향신문)거나 ‘김정숙 여사 호칭 논란’(오마이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 논란’(한겨레21) 등 진보언론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사안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오해가 불거진 데 대한 책임은 언론에 있다.” 최진순 기자는 “대처의 미숙함 때문에 오해가 증폭됐고, 주변부적인 논란이 매체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장됐다. 기사를 쓴 개별 기자의 사적인 메시지들이 첨언되면서 합리적인 대응 포인트를 놓친 것”이라고 진단했다.

‘호칭 논란’의 경우 오마이뉴스 기자가 “‘씨’로 쓰는 게 원칙”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으나 오마이뉴스가 이명박 정부 때 ‘여사’ 호칭으로도 몇 차례 기사를 송고한 사실이 확인 돼 ‘거짓해명’ 논란으로 번졌다. 이후 오마이뉴스는 안내문을 통해 “혼용이 원칙”이라는 점을 밝혔지만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서 독자 입장에선 ‘의도적인 비하’라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최진순 기자는 “이 과정에서 위태롭게 기자가 독자를 상대하고 언론사가 뒤로 빠져 있는 게 문제”라며 “편집국 조직 자체가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에 보도로써 바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의 항의가 있다면 기자 개인의 SNS가 아닌 보도를 통해 ‘언론사 호칭 편집원칙’ ‘과거 사례’ ‘관련 기사’ 등을 설명하고 오해의 책임이 언론에도 있다면 경영진, 편집국이 사과할 수 있도록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을 그렇게까지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까. 최진순 기자는 “그들이 적이라면, 고객이 아니라면 간단하겠지만 진보언론을 아끼고 구독하고 돈을 지불해온 고정 독자인 단골손님이자 잠재독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언론의 ‘혁신’에서 ‘독자’가 빠진 점을 문제로 지목했다. 언론은 혁신을 강조해왔다. 카드뉴스를 만들고, 페이스북에 기사를 내보내고, ‘드립’을 치면서 ‘혁신’이라는 말을 썼다. 트래픽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와 관련 최 기자는 “형식의 진화는 했지만, 그러면서 돈을 달라고 읍소는 했지만 과연 이들 신문의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의 혁신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저널리즘 원칙과 독자와 관계개선 없이 형식과 속도에만 치우쳤다” 평가했다.

“달리 디지털 혁신이 아니다. 독자, 특히 소셜 공간에서 열망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언제든 질문하고, 비판하고, 매체에 성실한 답을 기대하고 있고 보도가 나오게 된 과정을 늘 궁금해 한다. 언론은 이들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든 문제제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감안했어야 한다.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의 경쟁력이 신속한 보도, 독자관점 서비스라는 점에서 이번 대응은 너무 ‘조중동 느낌’이 날 정도로 보수적이었지 않았나.”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최진순 기자는 “특히 진보매체에 아쉬움이 있다”면서 “소셜 독자층인 젊은 세대, 정치적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접점이 다른 언론보다 더 컸다. 그렇다면 대비할 수 있었다. 충분히 대화하고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 알릴 수 있는 노력이 수반됐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통을 복원할 것’을 주문하며 언론이 구체적인 소통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보도가 나오게 된 과정을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는 ‘투명성’, 독자의 의문에 매체가 직접 보도로써 책임을 지고 언제든 사과할 준비가 돼 있는 ‘책임성’,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는 ‘다양성’ 원칙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이 같은 원칙을 통해 독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독자에게도 말을 할 기회를 제공해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는 “우리만 말하는 게 저널리즘이 아니다. 독자에게 발언권을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독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인터뷰하거나 오프라인 행사를 열면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논설위원이 독자의 댓글을 읽고 피드백을 하는 서비스를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최진순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댓글 사랑이 유독 주목받는 것은 그들의 독자들을 존중해주는 접근을 유지한다는 점”이라며 “소셜미디어 전략은 뉴스형식 변화, 속도대응, 캐릭터화와 같은 성급한 브랜딩이 아니라 독자에 대한 존중, 배려, 우대”라고 강조했다. ‘시카고 트리뷴’이 독자와 유대 강화를 위해 공공정책 토론, 저자대화, 기자 세미나 등 100개 이상의 뉴스 이벤트를 개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진보언론은 광고주에 의존하거나 종합편성채널을 만드는 등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힘들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경제적 후원을 마다하지 않는 구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느냐 여부는 경영상황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 기자의 이 말은, ‘독자 퍼스트’는 곧 진보언론의 ‘생존’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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