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9명 모두가 남성이다. 실제로 여성 심의위원이 있었던 1기나 2기에 비해 성평등 관련 심의 제재 건수가 줄었다. 1기나 2기에는 여성위원이 성평등 관련 심의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 다른 심의위원들이 다시 고민을 하면서 건설적인 토론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3기에는 여성위원이 없다는 요인도 일부 작용한 것 같다.”

김형성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 방송심의기획팀장의 얘기다. 김 팀장은 이 같은 점을 거론하며 “올해 새로 출범할 4기 방통심의위원회에는 양성평등 관점이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방통심의위 출범 이후 성평등 관련 심의 규정 위반 건수는 총 74건. 위원회별 심의 제재 건수를 살펴보면 1기(2008년~2011년)는 성평등 관련 법정제재 결정 13건, 2기(2011년~2014년)는 21건, 3기(2014년~현재)는 5건이었다. 행정지도의 경우는 1기 20건, 2기 27건, 3기 27건이었다. 최근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커지고 방송내용에 대한 지적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방통심의위의 관련 법정제재는 1기나 2기의 수보다 적다.

▲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시한 tvN 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 위원, 김형성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기획팀장, 김민정 KBS PD. 사진=정민경 기자.
▲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시한 tvN 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 위원, 김형성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기획팀장, 김민정 KBS PD. 사진=정민경 기자.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에서는 미디어 관련 종사자들의 성별불균형이 콘텐츠의 성평등 관점을 누락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6년 방송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방송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남성은 총 2만3937명이고 여성은 1만1159명으로 남성이 68%를 차지한다. 특히 방송 산업 간부의 경우는 남성이 93.9%였다.

김민정 KBS PD는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우선 현장에서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적다보니 현장에서 성평등에 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PD는 “문제의식이 있는 PD가 있더라도 적은 수여서 팀에서 그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도 있다”며 “성평등적이지 못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환경에 제작자들의 성별불균형이 연관이 깊다”고 말했다.

드라마 현장을 2년 경험한 시한 tvN 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은 “tvN 조연출 고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드라마 현장에 관한 제보센터를 운영했는데 드라마 현장에서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제보가 굉장히 많았다”며 “제작자 대부분이 남성이며 그 분위기 역시 남성 중심적”이라고 말했다. 시한 위원은 “성평등하지 않은 현장에서 성평등한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방송 산업의 여성 종사자를 늘리는 방안 외 미디어 내 성평등 인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각 매체가 스스로 성평등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별 변호사(법률사무소 동일)는 “영국 BBC의 경우 ‘프로듀서를 위한 지침서’에서 제작 전 단계인 자문 단계부터 여성과 남성이 모두 참여할 것을 명시하는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며 “캐나다 방송협회의 성역할 묘사가이드라인은 자국 방송뿐 아니라 타국의 방송프로그램을 구입할 때도 성역할 관련 문제에 민감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곽현화 개그우먼(배우), 오기현 PD연합회장, 전별 변호사. 사진=정민경 기자.
▲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곽현화 개그우먼(배우), 오기현 PD연합회장, 전별 변호사. 사진=정민경 기자.
호주의 경우도 1998년 국무총리실에서 방송국, 출판사, 광고인, 미디어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성평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미디어에서 불필요하게 여성임을 밝히지 않을 것(예: 여의사, 여기자) △공공문제에 대해 여성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구할 것 △삽화나 그림묘사에서도 성평등한 관점을 가지고 임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전별 변호사는 “해외사례처럼 한국 방송 산업에도 매체별 성평등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방송 산업 종사자들에게 성인지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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