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방침에 “대통령의 공약은 이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정보 수집 업무 폐지와 대공수사권 경찰 이전 문제 등과 관련해선 다소 견해차도 보였다.

서훈 후보자는 29일 청문회 모두발언에서부터 “국정원이 그동안 국내 정치 개입 논란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국정원의 기능과 존재가 의심받는 상황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며 “국정원은 정권 비호 조직이 아니다. 국정원장으로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가정보기관으로 완전히 거듭나 앞으로 국내 정치와 완전히 단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서 후보자는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 댓글 개입이 탄로 나 ‘부정선거’ 논란을 빚은 것에 대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 근절이 의지만 가지곤 안 되고 의지가 선행된 후 제도가 뒷받침돼야 정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상당히 관행적인 요소도 있지만 이 정부 5년 안에 반드시 국정원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단절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겠다”고 말했다.

▲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서 후보자는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국가 차원에서 물의를 빚었던 사안은 진상을 알아봐야 한다고 본다”며 “‘댓글 사건’도 현재 재판 진행 중이어서 조심스러우나 사실관계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 후보자는 2011년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원순 제압 문건'과 지금도 작성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반값등록금 공작 문건', 보수단체 자금 지원 의혹 등에 대해서도 “한번 다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원을 대북·해외·안보·테러·국제범죄를 전담하는 ‘해외안보정보원’으로 전환하고 대공수사권을 국가경찰 안보수사국이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관련해선 약간의 온도 차이를 보였다.

서 후보자는 국내와 해외 정보를 물리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물리적, 정서적으로 국내와 해외 정보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경찰은 경찰대로 국내 정보활동을 할 영역이 있고 국정원은 장소적으로도 산업스파이·사이버테러 등 국내 정보활동을 할 영역이 많아 국내 정보 수집이 모두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반드시 없애겠다는 건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치 관련, 정부의 선거 개입과 민간인·기관 사찰 등 국내 정보 수집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해선 안 될 일을 하면 인원과 조직이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게 맞지만, 국정원 직원이 충분히 다듬고 키워온 신 안보 영역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 후보자는 또 방첩과 국가보안법 수사 등 대공수사권 이전에 대해선 “국정원이 언제까지나 수사권을 가지고 있을 수 없고 기본적으로 대통령 공약이 이행될 것”이라면서도 “대공수사는 국정원이 가장 훌륭한 역량을 갖고 있고 가장 잘할 수 있으나 국가 전체 차원에서 수사권 조정, 재편 관계 속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후보자는 또 지난해 국회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에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통과된 ‘테러방지법’뿐만 아니라 입법 추진 중인 ‘사이버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필요성에 동의했다.

다만 그는 “(야당의 필리버스터) 당시 테러방지법을 통해 민간인 사찰과 기본권 침해 우려가 근본적으로 제기됐는데 국정원이 앞으로 정치와 완전히 단절된다는 확신을 인정받으면 그런 우려는 많이 해소될 것”이라며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부작용과 확대 해석, 남용은 이행 과정에서 철저히 통제하고 감시·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사이버테러방지법과 관련해선 “사이버 공간은 실제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과 방송사, 최근엔 군사 기밀도 유출되는 등 사이버 해킹 피해는 국가 차원에서 대응할 가장 역점 부문”이라며 “다만 목적 수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어, 그런 사항들 모두 최종적으론 국회 논의를 거쳐 법을 개·제정해야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테러방지법은 권력기관이 국민을 검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 때문에 민주당과 정의당이 필리버스터까지 불사하며 반대했던 법이다. 반민주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법에 국정원장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국정원의 국내·해외 업무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의지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