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공무원이 “공정위가 퇴직 직원에게 대기업 고문 자리를 알선해준다”고 진술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기업을 감시·견제해야 할 공정위의 근본을 뒤흔드는 관행으로 이는 20년 넘게 지속돼 온 것으로 파악됐다.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현 단국대 초빙교수)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19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 조사실에서의 진술을 확인했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특검 수사에서 “대기업 측의 요청이 있으면 공정위 운영지원과가 희망하는 직원을 알선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공정위 직원의 고문직 취업은 약 20년 정도 됐다”고 진술했다.

▲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2015년 7월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2015년 7월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전 부위원장의 진술에 따르면 ‘대기업 고문 취직 관행’은 통상적으로 과장급 이하 직원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과장급보다 높은 직급일 경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당시 ‘공정위에는 직원 퇴직 시 대기업 티오(정원)가 확정돼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예. 과장급 이하가 퇴직할 경우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어 ‘누가 최종 결정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선 본인의 희망을 받아 인사과장(운영지원과장)이 해당 기업에 알아보고 부위원장과 위원장에게 보고한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티오’가 유지되는 사례로 삼성물산 고문직을 들었다. 김 전 위원장 진술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삼성물산 고문으로 고용된 서아무개 전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9년 간 삼성물산 고문으로 일한 공정위 출신 전적자가 그만둠에 따라 후임으로 지명된 경우였다.

서 전 과장은 2016년 6월10일 ‘부위원장님, 원만히 조정이 잘 됐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따로 보고드리겠다.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김 전 부위원장에게 보냈다. 서 전 과장은 6월24일엔 “오늘 취업 심사 통과됐다. 감사드린다”라고, 27일엔 “삼성물산과 계약했다. 7월1일부터 출근한다.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 등의 감사인사 메시지를 김 전 부위원장에게 보냈다.

공정위가 ‘인사 추천’ 요청을 받는 대기업은 20여 개에 달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특검에 삼성전자,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기아차, SK하이닉스, 롯데, LG, 한화, CJ, 신세계, 현대백화점, 두산, 농협 등 약 20개 대기업이 해당된다고 밝혔다. 특검팀 조상원 검사는 법정에서 퇴직자 24명의 명단이 적힌 2017년 2월자 공정위 퇴직공무원 심사현황을 증거로 공개했다.

조상원 검사는 “공정위는 국내 대기업 활동을 감시하고 불공정 행위 규제를 담당하면서 20여 개 대기업의 고문직 알선을 담당해 퇴직 공무원들을 취직시켜 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감시가 가능한것이냐”고 물었다. 김 전 부위원장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대기업이 공정위 퇴직 직원을 고용해 기업현안 정보를 입수하고 로비 창구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조 검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법 위반 예방 업무나 법 위반 시 시정조치 등을 도와주는 업무를 담당한다”고 답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법정에서 모호한 진술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특검에서 ‘고문직 취업은 약 20년 정도 됐다’고 진술했음에도 법정에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특검 측 ‘고문직 티오’ 표현에 “그게 어떻게 티오가 되겠냐”고 말했으나 과거 특검 조사에서는 “네. 많이 있다. 약 20개 업체 정도된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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