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측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결정을 부정청탁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공정위 수장들의 전문성까지 흔들고 나섰다. 삼성은 그룹 임원이 공정위 임원을 만나 현안해결을 요청한 것도 ‘부당한 로비’가 아닌 ‘정당한 민원 제기’였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 측 변호인단은 지난 25일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18회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곽세붕 전 공정위 경쟁정책국장(현 공정위 상임위원)에게 ‘공정위 결정이 경솔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지적을 수차례 제기했다.

지난 2015년 12월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함에 따라 그룹 내 신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된 문제에 대해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 500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불과 두 달 전인 10월14일 “삼성SDI와 삼성전기가 삼성물산 지분을 각 500만 주씩, 1000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1000만 주 처분안’은 담당 과·국장,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거쳐 위원장 최종 결재까지 거친 내부 결정이었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 연합뉴스
삼성 측은 최초 안인 1000만 주 처분안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곽 전 국장에게 “보고서를 작성한 사무관이 혼자 작성한 것이냐” “사무관의 보고서 작성 소요기간, 담당 과장의 보고서 검토 기간을 아느냐” “증인은 결국 국정감사 준비로 바쁜 와중에 보고만 받은 형식이 아니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변호인단은 결재 라인의 임원들이 “심도 깊은 검토를 했는지”를 의심했다. 변호인은 “보고서가 12페이지인데 이해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내용이다. 김학현 부위원장이 일주일 만에 이를 이해했다는 것이냐” “부위원장이 이 사안을 잘 몰라 실무자 결정을 믿고 결재했다는 진술이 있는데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변호인은 “도대체 10월14일 보고서의 공정위원장 결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법적 효력이 있느냐”라며 공정위 내부 결정 의미를 축소하는 인식도 비쳤다. 변호인은 “‘검토해봤다’는 건 공정위 내부에서 공유하는 해석 이상, 이하도 아닌 것 아니냐”고 밝혔다.

곽 전 국장은 “행정 처분은 아니지만 유권해석 의견이다. 삼성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6개월 내에 지분을 팔지 않으면 법 위반으로 해석돼 사건으로 처리될 수 있다”면서 “이 결재안을 토대로 법 위반 여부를 보게 된다. 내부 참고자료를 넘어선다”고 답했다.

처분 주식 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처분 주식이 많을수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에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의결권이 줄어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1000만 주에서 500만 주로 결정을 번복하는 동안 김종중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삼성 관계자들은 공정위·청와대 고위직을 만나 ‘500만 주’로 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삼성 “공정위 결재안, 오류” vs 공정위 “결재 번복, 있어선 안 될 일“

삼성 측은 신규 순환출자고리 개념에 대한 인식차를 강조했다. 해당 순환출자고리를 ‘신규 형성’으로 볼 것인지, ‘출자 관계 강화’로 볼 것인지 혹은 해당 고리가 ‘금지 조항 적용 제외’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처분 주식수가 달라지는 점에 착안, 공정위의 결정 번복은 다양한 견해가 충돌하면서 나온 ‘정상적인’ 논의 과정이었다는 논리다.

곽 국장은 위원장 결재가 이뤄지고 대상기업에 사실 통보가 이뤄진 사안이 번복된 적은 “내 기억으론 한 번도 없다”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곽 국장은 ‘500만 주’ 최종 결정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어색한 부분이 있다”며 ‘그래서 반대 목소리를 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담당 실무자였던 석아무개 공정위 서기관의 답과 일치한다. 석 서기관은 지난 24일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500만 주 결정에 대해 “‘8번 (순환출자) 고리’에 대해선 형식 논리로, ‘10번 고리’에 대해선 경제적 실질성 기준으로 봤는데, 논리적으로 어색하다”면서 “결재 이후에 결정을 바꾼 것은 내부적으로 있어선 안 될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 지난 2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치소로 이동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2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치소로 이동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특검은 “비상식적인” 결정 번복 과정이 ‘묵시적 부정청탁’에 기인한다고 파악한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 도움을 청탁했고 뇌물을 받은 박근혜씨가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관련 현안을 지원했다는 취지다.

김영철 검사는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이 사안을 계속 검토, 체크하고 있었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의 비서실로서 잘 챙길 수밖에 없었다”며 “보고, 증거를 통해 (혐의 성립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2015년 7월25일 독대 시 대통령 말씀자료에 복잡한 지분구조 단순화, 순환출자고리문제 해소 등이 삼성그룹 현안으로 적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검사는 이어 “제3자 뇌물수수는 현안에 대한 인식이 있고 양해가 이뤄지면 명시적 청탁이 없다 하더라도 묵시적 청탁이 성립한다”면서 “이 사안의 정보 교류 과정을 보면 뇌물수수자와 공여자 사이에서 현안인식과 양해가 이뤄졌다. 증인의 법정 증언을 통해 묵시적 청탁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2015년 11월18일에 주목하고 있다. 김학현 부위원장이 실무자들에게 기존 결정을 번복하고 재검토할 것을 지시한 날이다. 김 부위원장은 전날 저녁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을 만났다. 김 전 사장은 이날 김 부위원장에게 ‘공정위가 결정한 처분 주식 1000만주가 너무 많다. 삼성 SDI 500만 주 만 재검토해 달라’고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 사무관을 포함해 김 과장, 곽세붕 경쟁정책국장은 11월20일과 27일 두 번에 걸쳐 ‘더 이상 통보 연기가 불가능하다’ ‘기존 결정 내용을 공식 통보하고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요청했다. 김 부위원장은 ‘삼성에 통보하면 절대 안된다’며 삼성 측이 제공한 자료를 공정위 검토보고서에 반영하도록 지시했다.

공정위 실무자들에 따르면 삼성은 11월 중순 경까지 ‘공정위 유권해석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었다. 삼성전자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장영인 상무와 이근수 부장은 10월20일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에서 석 서기관 등 실무자를 만나 공정위의 ‘1000만 주 처분’ 결정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약 2주 뒤인 11월5일에도 공정위를 찾아와 ‘공정위 검토 의견에 따라 신규 순환출자 고리 문제 해소할 것이니 통보 시점을 2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 대외협력팀은 11월9일에도 공정위에 메일을 보내 “(통보) 유예기간 내 관련 의무 이행할 계획”이라고 적었다.

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또한 11월17일 김 부위원장에게 전화해 ‘삼성 측이 불만이 있으니 잘 검토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12월16일 공정위 전원회의 결과 처분 주식 수는 1000만 주에서 ‘900만 주’로 변경됐다. 12월22일 이는 다시 조정됐다. 김 부위원장은 과장, 국장 결재를 거친 ‘합병관련 순환출자 금지 규정 법집행 가이드라인’ 문건에 ‘500만 주 처분안’을 2안으로 추가하라고 지시하면서 반려했다.

특검은 전날인 12월21일 최 전 비서관이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으로부터 ‘500만 주 만 처분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최 전 비서관은 김 부위원장에게, 김 부위원장은 석 사무관에게 이 지시를 순차적으로 하달했다.

▲ 2016년 12월27일 최순실 씨와 공모해 대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종범(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016년 12월27일 최순실 씨와 공모해 대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종범(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최 전 비서관은 12월22일 안 전 수석으로부터 ‘위원장에게 빨리 500만 주 결정하게 해라’는 지시를 받고 김 부위원장에게 “안 전 수석이 아주 역정을 낸다. 상황이 좋지 않다. 형님이 위원장님께 2안(500만 주 처분)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고 압박했다.

정재찬 위원장은 결국 12월23일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 500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결정에 사인했다.

삼성 “로비? 정당한 민원제기일 뿐”

특검은 이미 위원장 결재가 끝난 사안을 번복 요청 하는 것은 ‘부적절한 로비’라고 주장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1000만 주 처분 결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시정명령, 과징금, 형사처벌 등을 받을 여지가 있다. 저 결정이 명백히 잘못됐다 생각하는데 그 전까지 아무런 의사 표시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김종중 전 사장의 ‘로비’ 의혹에 대해 “석 서기관 등 실무자들이 삼성 측의 의견 개진을 봉쇄하고 고압적으로 나왔다. 공정위 실무자보다 높은 급에 의견을 제시하는 기회를 얻고자, 상급자에 제대로 보고됐는지 확인하고자 부탁드린 것”이라면서 “김종중 사장은 이를 계기로 보고서 오류를 발견했고 시정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18회 공판은 지난 25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 경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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