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끝났다. 하지만 반성은 필요하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19대 대선보도 모니터링 좌담회’를 열었다.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MBC본부, SBS본부, 연합뉴스지부 등이 참석해 자사보도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상호 MBC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 간사는 정치권 뉴스를 전하는 정치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뉴스를 전하는 사회1부, 회사 성명을 요약해 메인뉴스에서 전달하는 문화부 등 크게 세 부서가 대선국면에서 MBC보도국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전했다.

그는 “큐시트에서는 이런 아이템을 하겠다는 정도만 오갔고 왜 뉴스거리가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며 “편집부에서는 제목을 뽑는 과정에서 바로 피드백도 받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편집회의 내에서 극소수만 정보를 공유하는 식의 의사결정은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묵인 내지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는 2012년 파업이후 노동탄압과도 관련이 있다고 남 간사는 말했다. 그는 “공정방송협의회 같은 공적인 장치가 마비됐고 노조나 기자, 담당데스크 등 파편화된 개인이 싸우는 방식밖에 없는데 회사는 무시하면 되는 상황”이라며 “(뉴스제작) 수행자들은 파업이후에 들어온 경력기자들인데 기능적으로 충실히 따르는 기술자에 가까운 분들”이라고 말한 뒤 “아침회의를 한 후 큐시트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 상암동 MBC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상암동 MBC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MBC본부 민실위, MBC기자협회, MBC영상기자회 등으로 구성된 MBC 대선보도감시단(감시단)은 MBC의 편파왜곡보도 5가지 유형을 발표했다.

먼저, ‘사이비 검증’을 꼽았는데 감시단은 “뉴스데스크는 문재인 후보의 아들 취업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반복해 보도했는데 대부분 상대 후보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라며 “주장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시도는 거의 없고 반론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표적 편파 보도’였다. 감시단은 “문재인 후보와 달리 뉴스데스크는 홍준표, 안철수 후보에게 불리한 사실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며 “‘돼지 흥분제’ 성범죄 모의 논란이나, ‘단설 유치원’ 발언 등이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 공방’이라는 현상 뒤에 비겁하게 숨은 채, 편파적 이슈 선택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을 확산시키려 했다”며 “명백한 선거보도 준칙 위반이자 편파 보도”라고 비판했다.

세 번째는 ‘뉴스 사유화’였다. 감시단은 “문재인 후보가 100분 토론에서 MBC 정상화 문제를 언급하자, 사측은 뉴스데스크를 동원해 문 후보에 대한 보복 보도를 퍼부었다”며 “특히 MBC 사측의 성명을 그대로 요약한 방송이 나가는 낯부끄러운 일까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로 ‘인터뷰 왜곡, 악의적 영상편집’을 꼽았다. 감시단은 “문재인 후보의 MBC 정상화 발언에 대한 보복 보도를 하면서, 기자의 질문을 잘라내고 문 후보의 발언을 다른 맥락에 갖다 붙여 왜곡했고 영상 편집도 악의적이었다”며 “문재인 후보 유세 화면에서는 유독 흔들리거나 어두운 화면을 자주 사용했다”고 지적한 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방송사들이 자주 써먹던 수법이 30여 년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끝으로 ‘여론조사 왜곡’을 들었다. 감시단은 “단일화 효과를 분석하겠다며 후보들의 지지율을 단순 덧셈하는 유례없는 여론조사 분석이 등장했다”며 “또한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2,3위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 12개 가운데 특정 후보가 수치상 앞서거나 동률인 여론조사 3개만을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KBS, 북한보도로 탄핵·특검보도 덮기

KBS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 정수영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 간사는 “편집회의가 형식적으로 부장과 간부들이 들어가서 뉴스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시와 받아쓰기, 마치 박근혜 수석비서관회의 같다”며 “김정남 피살이 발생하고 1주일 정도 지나면 보도량을 줄이고 대선 관련 보도를 해야하는 게 상식인데 그렇게 안 했다”고 지적했다.

정 간사는 “국장이 김정남 보도를 키우고 싶어하는 걸 아니까 바른소리를 못하는 것”이라며 “사실 간부 상당수도 (김정남 보도가 많은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정 간사는 “하청업자의 마인드로 원청인 국장의 욕구를 잘채울까, 팀장들은 부장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며 “평기자가 편집 됐다고 말할 수 없는 비민주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 2월15일부터 22일까지 방송3사 김정남 피살 관련 보도. 자료=KBS본부
▲ 2월15일부터 22일까지 방송3사 김정남 피살 관련 보도. 자료=KBS본부
▲ 2월 15일부터 22일까지 방송3사 탄핵특검대선 관련 보도. 자료=KBS본부
▲ 2월 15일부터 22일까지 방송3사 탄핵특검대선 관련 보도. 자료=KBS본부

김정남 피살사건이 발생한 2월 중순 KBS·MBC·SBS 세 방송사의 관련 보도량을 비교했다. 사건 당일인 15일 KBS와 SBS가 14꼭지, MBC가 12꼭지를 보도했다. 정 간사는 “이튿날인 16일부터 22일까지 8일 간 KBS는 단 이틀을 빼고 매일 10꼭지 이상을 관련 아이템으로 채웠다”며 “타사의 2~3배 분량”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탄핵·특검·대선 관련 보도량은 타사에 비해 적었다. 정 간사는 “21일과 22일 KBS 북한보도는 19꼭지인데 탄핵·특검·대선 보도는 6꼭지로 3분의 1도 안 된다”며 “탄핵정국 속 북풍몰이로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 쏠린 시청자들의 눈을 가린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보도량이 많기 때문에 문제인 건 아니”라며 “김정남 최근 행적을 두 꼭지로 벌려 내보내고, ‘엉망인 상태로 북한 문제를 물려받았다’는 트럼프 발언까지 엮어 억지로 꼭지수를 늘리는 등 내용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SBS 기사 한 개로 최악의 보도

SBS는 5월2일 문재인-해수부 거래설 보도로 인해 그간의 노력을 날렸다. 심영구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정책 검증 보도 비중을 늘리는 등 노력해 대선미디어감시연대 선정 최악의 대선보도를 피해갔는데 5월2일 1분 33초짜리 기사 한 건이 최악의 보도로 선정됐고 대선 막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을 다뤘다가 삭제된 지난 2일 SBS ‘8뉴스’ 리포트
▲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을 다뤘다가 삭제된 지난 2일 SBS ‘8뉴스’ 리포트

심 위원장은 “관련자 징계, 보직해임이 이뤄졌고 SBS 신뢰도도 크게 추락하면서 조직원들에게 큰 상처가 됐고 국민들에게도 실망을 안겼다”며 “국정농단 사태 후 6~7개월 동안 노력했던 게 한 번에 무너지는 걸 경험하며 기본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되돌아보았다”고 반성하며 “다른 언론사에도 반면교사할 수 있는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KBS와 공동으로 발표한 여론조사가 지적됐다. 지난달 9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표본추출과정에서 문제가 돼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 기준을 위반했다. 여론조사를 실시한 코리아리서치는 15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관련기사 : KBS·연합뉴스 여론조사 업체, 1500만 원 과태료]

임화섭 연합뉴스지부 민실위원은 “빨리 조사결과를 내야 하는 환경에서는 할당량 채우기에만 집중했고 빠른 조사를 위해 올바르지 않은 샘플링 절차를 거치려고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며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각별히 유념해서 이런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에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촛불집회를 통해 마련된 보궐 대선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었는데 여기에 언론사가 좀 더 주목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권에서의 이슈를 따를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이슈를 충분히 다룰 것, 여론조사를 공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할 것, 정책 평가의 기준을 보다 세밀하게 구성할 것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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