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내부에서는 ‘적폐청산’의 목소리가 높고 언론개혁을 부르짖지만 국민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것만 보고 그 이면에 어떤 노력이나 고충이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대중을 탓할 수는 없다. 언론자유의 1차적 책임은 언론인 스스로에게 주어져 있다. 대법원 판례도 “방송인의 공정방송 투쟁 노력을 정당한 업무의 일부”로 인정하는 판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오는 31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공동주최하는 지상파 UHD(초고선명텔레비전방송) 개국 축하쇼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한겨레 보도가 있었다. 이 신문은 “유에이치디 개국 행사는 지상파 방송국 사장단이 총출동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방송계는 문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그동안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내왔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MBC가 주최한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해직기자 복직과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고, KBS와는 캠프 참여 방송인의 출연 정지 조처를 두고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공영방송 사장들은 대통령과의 대면을 고대해왔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후보시절의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이다.
MBC는 최근에도 ‘적폐청산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구성원들에 대해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MBC는 총 8명의 기자와 PD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보도를 은폐·축소하는 내부 분위기를 고발하다 ‘출근정지·근신’ 처분을 받은 기자들(곽동건·이덕영·전예지)과 회사의 허가 없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감봉 1개월 조치를 받은 송일준PD에 대한 인사위 재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관련기사 : MBC에 또 징계 칼바람, 기자·PD들 대거 인사위 회부]
징계사유를 보라. 언론인에게 타매체와의 인터뷰를 문제삼아 징계하는 식이다. 언론인에게 회사의 허락없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문제삼는 식이라면 MBC는 언론기관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언론인 개인에게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문제삼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MBC가 인터뷰 하려는 대상이 모두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인터뷰에 응하는 방식이라면 MBC는 당장 취재의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징계를 멈추고 회사에서 아예 쫒아낸 언론인들을 다시 정중하게 초청, 복직시켜야 할 것이다.
KBS도 중견기자 71명이 기명성명을 내고 “고대영 사장은 본인이 심은 적폐들과 함께 당장 KBS를 떠나라”며 공식으로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준희 YTN 사장의 자진 사임을 기점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관련기사 : KBS 20년차 기자 71명 “고대영 사장 적폐들과 함께 떠나라”]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 사장단이 문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공식, 비공식 초청행사를 이용하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미 후보시절부터 공영방송이 보도내용과 형식 등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험까지 한 사람이다.
청와대가 자칫 방송개혁에 앞장 서게 되면 정치권력의 방송사유화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학계와 시민단체, 언론단체, 언론인에 의해 진행될 공산이 높다. 이사진과 이사장, 사장 선임을 어떤 인물들로, 어떤 과정을 거쳐 구성하느냐가 방송개혁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제에 공영이란 이름에 걸맞게 EBS, YTN, 연합뉴스TV 등을 포함, 모든 공영적 형태를 갖춘 방송사에 대해 정치색을 빼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윤리와 법을 준수하며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있는 인사 선발은 적폐청산의 근본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