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근혜씨의 23일 첫 공판을 전한 24일자 주요 일간지 보도(지면기준)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살펴본 결과 조선일보가 박씨의 발언을 가장 많이 제목으로 뽑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측은 박씨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이념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고, 박씨는 검찰이 적용한 18가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공판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은 신문사는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총 13건, 경향신문은 12건,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각 11건,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는 각 7건의 기사를 내놨다. 이 중 박씨 측 입장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를 살펴보면 조선일보는 6건으로 46%를 차지했고, 중앙일보는 2건(29%), 한국(14%)·한겨레(9%)·동아(9%)·경향(8%)는 각 1건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부정하는 박씨의 진술을 별도의 기사로 나열한 반면 다른 신문사들은 경향신문 “박측 사실관계조차 부인… 검찰은 ‘유죄 입증할 증거 충분’”, 한겨레 “검찰 ‘권력 남용해 사익 추구’ 박근혜쪽 ‘추론․상상’ 기싸움”, 한국일보 “최대 쟁점은 뇌물 수수… ‘법리 전쟁’ 예고” 등 양측의 공방을 보여주는 제목을 구성했다.

▲ 24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 24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이런 논조 차이는 사설에서 두드러졌다.

조선일보는 박씨의 혐의 부인에 대해 지적하기보다 박씨 처지에 더 주목했다. 사설 “수갑 찬 전직 대통령을 봐야 하는 국민의 고통”에서 “(박씨가) 범죄 혐의 전체를 부인했다”며 “법리 논쟁이 이어지면서 재판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곧바로 “앞으로 재판에서는 유·무죄 기준이 오로지 법리 한 가지여야 한다”며 “재판관들은 정치적 고려 일절 없이 증거주의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뒤 “정치권은 어떤 영향도 미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박근혜 정권 몰락, 시스템의 문제인가

조선일보는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선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라며 “이 세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이 큰 불행을 겪었다. 해외 망명, 불의의 피살, 자살까지 있었다”고 한 뒤 “헌정 70년밖에 안 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박씨의 사례가 특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권력 휘두르는 데엔 제왕적이지만 정책은 국회에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대통령제는 수명이 끝났다”며 “대통령 자리 하나 놓고 전쟁하듯 싸우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이어 “한 표만 더 얻어도 100% 권력을 쥐고, 이후에는 저주와 보복이 되풀이되는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동아, 반복되는 역사의 문제?

▲ 24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 24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동아일보 역시 박 정권 실책을 다른 전직 대통령 사례와 함께 나열했다. 24일자 사설 “네 대통령 운명 엇갈린 5월23일”에서 “전직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한결같이 어느 정파의 수장이나 지지자들의 지도자가 아닌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 하지만 “자신만이 옳다는 판단 아래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독선’ 때문”에 “이들이 불행한 대통령, 논란의 대통령이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상에서 극하로 엇갈리는 역사”라며 “영광과 치욕의 이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라고도 했다. 민언련은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개별 사례를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로’라는 표현으로 포장해 박근혜 개인과 정권의 잘못을 슬쩍 지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법리에 따른 처벌을 강조했다. 사설 “재판정에 선 박 전 대통령…더 이상 이런 비극 끝내야”에서 “현직 국가원수의 탄핵·구속까지 가져온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재판부는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국가적 비극이 더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법원은 오로지 증거와 양심에 따라 진실을 가려내고, 법리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정 농단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법정공방이 치열할 것임을 예고했다” 정도의 표현만 사용했다.

▲ 마지막 박근혜퇴진촛불집회인 3월11일, 청와대로 행진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구속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마지막 박근혜퇴진촛불집회인 3월11일, 청와대로 행진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구속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혐의 부인하는 박근혜 비판 사설들

반면 경향신문은 사설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 이젠 역사 앞에 참회할 때”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박 전 대통령의 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 라며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고 사과 한마디 없으니 도대체 무슨 속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역시 사설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여전히 남은 의혹들”에서 “여전히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발뺌하는 태도에서 동정의 여지는 찾기 어렵다”며 “온 국민을 충격과 혼란에 몰아넣은 데 대해 반성과 사죄를 해도 모자랄 텐데 여전히 주변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소사실에 대한 단죄는 물론 남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필요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도 사설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 국민에게 사과부터 해야”에서 “혐의의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일체의 혐의를 부인하고만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명백히 사실로 드러난 것만이라도 우선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터인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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