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첫 재판에서 언론은 재판 내용 못지않게 ‘올림머리’에 주목하며 하루 종일 가십성 이슈를 만들어냈다.

23일 오전 박근혜씨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현장을 생중계하던 언론이 조명한 건 ‘올림머리’를 했는지 여부였다. 연합뉴스는 “박근혜 전 대통령, 올림머리처럼 머리 묶은 듯(속보)”을 포털에 내보냈다. 방송 역시 “구치소에서 구입한 집게핀으로 올림머리”(YTN) “구치소서 구입한 핀으로 기존 올림머리 만들어” 자막을 ‘속보’로 띄웠다.

▲ 지난 23일 YTN과 MBN 생중계 화면.
▲ 지난 23일 YTN과 MBN 생중계 화면.

이날 박근혜씨의 올림머리는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단골 소재가 됐다. 헤어스타일 이슈를 지나치게 부각하고,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며 가십거리를 만든 것이다.

YTN ‘신율의 시사탕탕’에서 최진 세한대학교 대외부총장은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할까요. 애써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흔적이 아닌가”라고 말했고 YTN은 온라인 기사에서 “자신은 무너지지 않았음을 지지자와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심리일 것”이라는 이택광 평론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언론은 재판과는 무관한 ‘올림머리’를 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착했다. 핀을 어떻게 구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등 시시콜콜한 이슈까지 구체적으로 다뤘다. 이날 채널A 종합뉴스에서 배혜림 법조팀장은 “옆머리는 삼각형 플라스틱핀 3개로 고정했다. 구치소에서 사용하는 핀은 두가지 종류”라며 유사한 핀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한겨레는 “박근혜’셀프 올림머리‘ 비용은 2830원”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연합뉴스 역시 “머리핀 390원·집게핀은 1천660원”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박씨가 ‘올림머리’를 직접 했는지 묻는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채널A 종합뉴스는 올림머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법무부와 구치소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올림머리 혼자 손질? 혼자 안 해본 사람 하기 어려워 vs 충분히 가능”이란 리포트를 통해 이 사안을 ‘논쟁’처럼 다루기도 했다.

▲ 지난 23일 방영된 TV조선, 채널A, MBN, YTN의 시사토크 프로그램.
▲ 지난 23일 방영된 TV조선, 채널A, MBN, YTN의 시사토크 프로그램.

일부 언론은 박씨가 이날 입은 밤색 옷과 구두의 의미까지 ‘분석’했다. 23일 YTN ‘정찬배의 뉴스톡’에서 추은호 YTN해설위원은 “강한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종의 전투복 패션을 고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널A 뉴스특급은 “수의 대신 삼색 전투복 차림 도착”이란 자막을 내보내며 대동소이한 추측을 했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는 점까지 토크 소재로 삼았다.

이날 YTN의 “올림머리 집착하는 이유?”란 제목의 기사를 두고 한 누리꾼은 “언론의 박근혜 올림머리에 대한 집착 은근히 소름끼치는걸”이라고 꼬집었다. 중요한 건 ‘올림머리’를 어떻게 했는지, 핀이 얼마인지가 아니라 재판 내용이다. 돌이켜보면 언론은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할 때도 옷차림과 외모에 유독 관심이 높았던 것 같다. 정작 중요한 질문과 보도를 놓쳤던 결과가 국정파탄이었다는 점에서 언론의 최근 보도행태는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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