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드세요. 아이스크림 드시고 하세요.”

지난 22일 오후 2시50분, 춘추관(청와대 기자실) 2층 식당에 기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오후 3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박 대변인은 기자들이 앉아있는 식탁을 돌면서 인사를 나눴고 임 실장은 식당 앞쪽에 위치한 둥근 식탁에 기자들과 나란히 앉았다. 

“난 그냥 아이스크림 먹으러 왔는데?” 임 실장이 자리에 앉으며 농담을 던지자 식당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기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질문을 던졌고 임 실장은 즉석에서 편하게 대답했다. 다만 발언 내용은 ‘비보도’를 전제했다. 해당 간담회는 현안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배경설명을 위해 마련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주말인 13일 오전 대선 당시 '마크맨'을 담당했던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주말인 13일 오전 대선 당시 '마크맨'을 담당했던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출입기자들 “이전과 분위기 확연히 달라”

문재인정부 출범 보름을 넘기며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이전 정부와 비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를 출입했던 인터넷신문 A기자는 최근 춘추관을 두고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면서 “이전 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얼굴 자체를 보기 어려웠다. 기자들 중에서도 실장을 못 봤다는 사람이 많았다. 김기춘 실장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종합편성채널 B기자는 “김기춘 전 실장은 공식 행사 때만 기자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기자회견과 연말 모임, 딱 두 번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2014년 9월 김 전 실장이 사진공모전에 시상자로 참석하기 위해 춘추관을 방문하자 언론은 “이례적인 행보”, “깜짝 방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의 ‘단독방문’은 당시 1년 1개월 만이었다. 

A기자는 “반면 임종석 비서실장은 춘추관에 몇 번이나 왔는지 카운트가 안 된다. 대통령 실장보다는 대변인 같은 느낌도 든다. 대통령 실장이 너무 자주 내려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물론 지금 상황이 인수위원회와 청와대가 섞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 기자들에게 임시로 개방된 춘추관 2층 브리핑룸. 사진=이치열 기자
▲ 기자들에게 임시로 개방된 춘추관 2층 브리핑룸. 사진=이치열 기자
‘벨’ 없애고 카카오톡으로 소통

청와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아이스크림 미팅’외에 또 있다. 먼저 2층 브리핑룸 개방이다. 2층 브리핑룸은 대통령 브리핑 때만 개방되던 곳이다. 권혁기 춘추관장은 “정권 출범 초기라 취재진이 몰려서 기자실이 부족했다. 심지어 기자들이 1층 바닥에 앉아있기에 국민소통수석과 이야기해 2층을 개방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브리핑룸이 ‘임시 기자실’이 된 것이다. 

브리핑실 개방을 두고 기자들 반응은 흥미롭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대통령이 사용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신원조회가 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2층 브리핑룸”이라며 “노무현 정부 때는 개방했다고 들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 소통 역시 달라진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생긴 ‘청와대 춘추관 출입기자 단톡방’에는 300명 가까운 기자들이 있다. 여기에는 ‘풀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언론사와 외신기자도 포함돼있다. 민영방송사 D기자는 “공지사항이 매체 차별 없이 동시에 이뤄진다”며 “예전에 비해 개방적이고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신 브리핑을 알리던 ‘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기자들에 따르면 이전에는 대변인 등의 브리핑이 있을 경우, 벨을 울려 기자들에게 알렸다. A기자는 “요즘은 브리핑이나 간담회 등을 알리는 카카오톡 공지가 하루 10건 정도 있을 때도 있다”면서 “계속 벨을 울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벨을 없앤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풀기자단 어떻게 운영할지가 핵심”

기자들의 관심사는 향후 청와대 출입기자단 운영이다. 먼저 출입사를 늘리는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특정 시점 이후 신규사의 출입신청을 받지 않았다. 기존에 출입하던 매체가 아닌 경우 취재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출입 기준을 대폭 완화해 김대중 정부의 4배 가까운 기자들이 청와대를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출입을 한다 해도 ‘풀기자단’이 남는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취재기자만 310여명 가량인데 이 중 모두가 풀단에 속하는 게 아니다. 청와대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대통령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해 대통령 근접취재나 해외 순방 등은 풀단 기자들에게만 허용된다. 풀단 기자들이 참모진들과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기자실을 개방하고 브리핑을 확대했다. 언론사간 차별, 취재원과 언론의 유착 등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참모진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고 소통창구를 일원화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추가 취재를 통한 ‘특화된 기사’를 쓸 수 없다는 불만 역시 나와 논란이 일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당시 방식을 이어갈지가 기자들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 일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 일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춘추관장 “매체 규모나 성향 따지지 않겠다”

문재인 정부의 기자단 운영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기조로 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수석비서관들의 개별 전화 취재 응대를 제한하며 ‘메시지 통일’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화를 못 받아서 미안하다”며 “다 안 받는 ‘소극적 의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권혁기 춘추관장은 “전화가 수십 통씩 걸려오기 때문에 통화되는 기자에게만 알려주고 통화가 안 되는 기자에게는 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그럴 바에야 차라리 춘추관에 와서 전체에게 말하거나, 춘추관장인 저를 활용하시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제가 전체 기자들에게 공지를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권 춘추관장은 “언론과의 소통에 원칙이 있다면 언론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별 기자는 물론이고 매체의 규모나 매체 성향에 따라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에 대해 A기자는 “특정 언론사에 단독을 주겠다는 관행을 깨겠다는 것으로 들려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조만간 춘추관에서 신규 출입 신청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권 춘추관장은 “대통령의 언론 철학이 소통”이라면서 “기존에 출입했던 언론사와만 소통하겠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출입 기준을 논의한 다음, 현실적인 안을 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 기자실이 현재도 꽉 찬 상황이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 기자들이 춘추관 2층 브리핑룸을 임시 기자실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기자들이 춘추관 2층 브리핑룸을 임시 기자실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기자들 “지금은 허니문, 앞으로가 관건”

기자들은 청와대의 소통 행보에 대해 “일이 많아서 힘들다. 일 좀 적어졌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이런 소통 행보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기자는 “지금이야 허니문 기간이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좋은 기사가, 정권 입장에서는 언론과의 소통 행보를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얼마나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B기자는 “박근혜 정부도 출범 당시에는 언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했다. 정권 초기에는 국민적 관심이 높기 때문에 언론과 소통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며 “그리고 이전 정부가 워낙 불통이었기 때문에 이번 정부는 ‘정상적인 행보’만 해도 칭찬을 받는다. 그 점을 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D기자도 “앞으로 많은 갈등 요인이 생길 텐데 그때 청와대의 태도가 중요하다”면서 “박근혜 정부처럼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언론의 비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그 정부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간다. 이번 정부는 언론의 건전한 비판은 잘 듣고 이를 변화의 계기로 만들어나갔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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