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촛불 항쟁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가 5월10일 공식 출범했다. 그리곤 촛불 항쟁의 열망에 부합하는 잇따른 인사와 업무지시로 문재인 대통령에 투표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환호와 찬사를 보낼 만큼 매우 순조로운 출항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문제 하나가 발생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5월15일 국민 촛불 항쟁 주역의 하나인 전봉준투쟁단을 이끌었던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 다음날에는 농수산물유통공사(aT) 앞에서 농민들이 ‘아스팔트 모내기’를 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5월16일에 예정되었던 밥쌀 수입 입찰 철회를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농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밥쌀 수입 입찰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입찰 결과 미국산 밥쌀 2만5천 톤을 수입하기로 결정되었다.

농식품부의 무모한 알박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고 백남기 농민의 정신을 거부한 것 아니냐는 과잉 해석도 제기되었다. 백남기 농민이 밥쌀 수입 중단을 요구하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졌고, 고인의 장례식을 계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와 같은 과잉해석은 대통령에게 상당한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 2016년 11월5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열린 노제의 맨 앞자리에 백남기 농민의 대형 초상화가 놓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6년 11월5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열린 노제의 맨 앞자리에 백남기 농민의 대형 초상화가 놓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나 이번 밥쌀 수입 입찰을 둘러싼 논란은 농식품부의 무리한 밥쌀 수입 입찰 공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식품부가 입찰 공고를 강행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이런 갈등이나 과잉해석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대선 투표 하루 전날인 5월8일에 밥쌀 수입을 위한 입찰을 5월16일에 실시하겠다고 공고를 냈다. 이에 대해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전혀 긴급한 사안도 아닌 밥쌀 수입 입찰 공고를 무슨 작전을 펴듯이 이토록 기습적으로 처리하는 행태를 두고 모두가 ‘알박기’라고 비판했다. 이 ‘알박기’ 때문에 새 정부와 농민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이 초래되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알박기’ 사례도 있다.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5월 초순에 농식품부가 우선지급금 환수 날짜를 지정하여 농민들에게 통지서를 보낸 것이다. 이 통지서에 농식품부는 우선지급금 환수 마감일을 8월31일로 정하고 납부마감일을 지키기 않을 땐 5% 가산금을 붙인다는 내용을 담아 농가에 발송했다. 우선지급금 환수란 쌀값이 정부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폭락하여 정부가 농가에 우선 지급했던 돈의 일부를 다시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쌀값 정책 실패 때문에 천문학적인 소득손실 피해를 당한 농민들은 우선지급금 환수를 거부하며 고지서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여야 모두 우선지급금 환수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때문에 농식품부가 대선 직전에 우선지급금 환수 통지서를 보낸 것을 두고 ‘알박기’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언론 관심에서 멀어진 ‘우리’의 ‘밥쌀 문제’

이런 상황에서 밥쌀 수입 입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보도는 그리 많지 않다. 이미 나온 보도 역시 사안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소위 주류 언론이라고 할만한 매체 보도는 지난 17일 KBS 보도(밥쌀용 수입쌀 입찰…“쌀값 폭락” 반발) 1건과 16일 한겨레 보도(농민단체 “새 정부의 밥쌀 수입은 백남기 농민의 뜻을 거부하는 것”) 1건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마저도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15일 낸 성명과 16일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앞에서 벌인 ‘아스팔트 모내기 시위’ 소식을 기계적으로 전하는 것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명된 농식품부 김재수 장관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여인홍 사장이 새 정부 출범 직전 무리하게 입찰을 강행한 과정이나 그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보도는 없다시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무보도와 단편적 보도는 자칫 새정부-농민단체 간의 갈등 양상만을 부각시키고, 밥쌀 수입 문제와 우선지급금 환수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언론은 이번 기회를 빌어 밥쌀 수입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보도하고, 이를 계기로 사회적 관심에서 늘 한발 떨어져 있던 농업 관련 문제도 사회적 관심사로 올려놓아야 한다.

고위 관료들의 농정적폐를 과감히 도려내야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전북지역의 농촌을 방문했을 당시에 쌀의 과잉재고가 심각한 상황에서 밥쌀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그리고 국회의 다수 의원들이 정부가 잘못하여 발생한 우선지급금 환수 문제를 농민에게 그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재논의를 강력하게 촉구한 바 있다. 선거기간 중에도 주요 관심의 대상이었던 이 두 가지 사안은 새 대통령과 정부의 출범으로 기존의 정부 정책을 조정하거나 방침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사안이었다.

▲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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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새 정부 출범 직전에 농식품부가 밥쌀 수입 입찰 공고를 내고, 우선지급금 환수 통지서를 발송한 것을 두고 ‘알박기’ 행태라는 비판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설령 밥쌀을 수입한다 하더라도 올해 말까지만 처리하면 되는 것을 대선투표 직전에 입찰 공고를 내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선지급금 환수 문제도 새 정부가 들어서서 농민 및 국회와 협의하여 원만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을 이런 식으로 재 뿌리는 행태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국민으로부터 탄핵당하고 헌법에 따라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임명한 농식품부 장관 그리고 농식품부 차관 출신인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이 벌인 이번 알박기 행태는 그 진상과 책임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알박기 때문에 임기가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 대통령이 고 백남기 농민의 정신을 거부한다는 오해를 받도록 만들었고, 새 정부와 농민이 겪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갈등을 겪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농정의 적폐청산은 고위 농정관료들의 적폐를 과감히 도려내는 것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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