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내각 인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교수 출신 인사들의 면면이 화제다. 김상조·장하성·김광두·김동연 등의 이력을 보면 학교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현실 정치와 경제에 여러 조언을 서슴치않았던 실천형 전문가라는 특징이 있다.

김상조, 재벌 전문가에서 플레이어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대선주자들의 경제 교사를 자임해왔다. 김 교수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개혁보수 성향으로 평가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까지 거의 대부분의 대권 잠룡들의 경제 정책 자문을 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전에도 김 내정자는 시민사회와 학계에 머무르며 정치권에 기업의 지배구조와 재벌개혁과 관련된 조언과 분석을 내놓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박영수 특검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재차 신청해 결국 영장을 이끌어낸 것도 김 내정자가 특검팀에 재벌의 편법경영을 비롯해 다양한 조언을 한 결과라는 후문이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민중의소리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민중의소리
김상조 내정자는 박근혜 정권에서 정부에 대한 뼈아픈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김 내정자의 지난 칼럼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내각 관리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띈다.

지난 2013년 3월19일 경향신문 ‘김상조의 경제시평’ 칼럼에서 김 내정자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과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을 비판하며 “수첩에 적힌 제한된 정보로 인사를 하면 잘못된 선택을 피할 길이 없고, 나중에 그 사람이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질책해봐야 소용이 없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다. 정보의 질을 높이고, 인재풀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 주변에 질 낮은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역선택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내정자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13년 2월13일 가톨릭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경제구조 개혁과제에 있어 재벌의 저항이나 관료들의 정보왜곡 등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분야 전문가이자 삼성 저격수로서 시민사회운동에 매진했던 김 내정자가 지난 3월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김 내정자는 “새로운 정부는 인수위 기간도 없이 출범해야 한다. 지금 모든 후보들이 제대로 된 정책 공약집도 못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너무 어렵다. 절박한 위기감이 드는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제3자적 입장에서 전문가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건 비겁한 일”이라고 밝혔다.

삼고초려 끝에 문재인 정책실장으로, 장하성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고려대 교수로, 지난 2012년 안철수 후보 캠프에 참여한 이력이 눈에 띈다. 당시 장 교수는 안철수 캠프에서 외교·안보를 제외한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도 장 실장에게 경제 정책 설계를 부탁했지만 장 실장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노컷뉴스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노컷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장하성 당시 교수에게 당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제안했으나 재차 거절당했다. 결과적으로 이번까지 포함해 삼고초려 끝에 장하성 교수가 문 대통령의 정책 총괄직을 수락한 셈이다.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장 실장에게 전화해 영입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장 실장의 집안 내력도 화제가 되고 있다. 장 실장의 집안은 전남의 명문가로, 장 실장 집안의 인물 중에는 독립군 활동에 뛰어들거나(장홍염씨),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해 어린 나이에 사망한 경우(장홍재씨),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측근인 임시정부 외부무장으로 활약한 인물(장병준씨) 등 독립운동에 나선 조상들이 많다. 

장 실장 역시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참여적인 지식인으로 꼽힌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은 이후 소액주주운동을 도입,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해 재벌 대기업 경영진에게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참여연대에서 분리해 만들어진 경제개혁연대를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와 함께 이끌었던 주역이다.

19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장하성 당시 고려대 교수가 13시간 넘게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많은 화제가 됐다. 당시 김상조 위원장과 함께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2006년도에 만들어진 ‘장하성펀드’ 역시 장 실장이 소액주주운동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다만 소액주주운동은 소액주주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많아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고, 금융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장하성펀드는 특별한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

이후 장하성 실장은 재벌 대기업 개혁과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로 이어졌다. 다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장 실장이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 실장은 2012년 10월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벌 해체를 주장한 사람이 누구인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기득권 세력이 그렇게 몰고가는 것이다. 이거(재벌) 없어지면 니들(국민) 다 죽는 거다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재벌의 영향력에 대해 “지금 정치·사회·법조·문화·교육 어느 한 곳 안 들어간 데가 없다”며 “(재벌이)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게 안철수 후보나 나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에서 ‘팽 당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었던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3인방(김종인·김광두·이상돈)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에는 박근혜 정부와 인연을 끊고 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왔다.

▲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사진=노컷뉴스
▲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사진=노컷뉴스
지난 3월16일 김광두 부의장은 문재인 당시 후보의 대선캠프인 ‘더문캠’에 영입됐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돕게 된 계기로 “제 은사인 남덕우 전 총리께서 도와달라고 해서”였다며 말했다. 그는 “제 성향이 시장경제론자고 박근혜 당시 후보가 주장하는 성향하고 비슷했다. 조금 멀게는 서강대 동문으로 과거 동창회에서 가끔 얼굴 본 적도 있었으며 초선 시절 저에게 보좌관해달라고 했던 인연이 있었다”고 밝혔다.

남덕우 전 총리는 ‘서강학파’의 대부로 꼽히는 한국 사회 주류 경제학자로 ‘한강의 기적’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박정희·박근혜 부녀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초기 싱크탱크 역시 경제분야는 서강학파가 중심이 됐다.

3인방이 박근혜 캠프에서 했던 역할은 각기 달랐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박근혜 캠프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경제 정책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두 부의장은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정책을 마련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냈다.

김광두 부의장은 3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정부와 멀어지게 된 계기로 ‘소통문제’로 꼽았다. 이날 자리를 함께했던 김상조 전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김광두 교수는 소통문제에 대해 두 차례의 솔직담백한 조언을 했는데 그때 박 전 대통령이 굉장히 강하게 반발했다”며 “내가 왜 소통못하냐는 등 지금 이미 알고 있는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 제 표현에 따르면 2012년 말에 이미 (김광두 부의장은) 팽 당했다”고 말했다.

‘팽 당한’ 김광두 부의장은 언론 인터뷰와 칼럼 기고 등을 통해 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정부 비판을 이어갔다. 2014년 12월26일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 부의장은 “최근 금융감독 당국의 한 고위인사가 청와대의 권력 핵심 실세와 친하다는 것을 내세워 금융회사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인사개입을 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금융감독당국 고위인사 배경이라는 점을 폭로하기도 했다.

다만 김광두 부의장의 경우 정치권 싱크탱크에 오랜동안 속해왔던 이력 때문에 폴리페서 논란이 제기됐다. 김 부의장은 2002년 당시 이인제 민주당 경선후보의 싱크탱크였던 21세기국가경쟁력연구회 회장을 맡았다. 2010년 12월에 김 부의장이 설립을 주도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 대선후보의 싱크탱크였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김 부의장과 함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씨의 ‘줄푸세’ 공약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개천에서 난 마지막 용’ 김동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현 아주대 총장으로 어려운 집안 환경과 고졸학력을 딛고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해 화제가 됐다. 오랜 기간동안 경제 관료로서 정무적 감각과 정책기획력을 발휘해온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사진=노컷뉴스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사진=노컷뉴스
김동연 후보자의 경우 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조정실장을 맡으면서 박근혜정부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2014년 7월까지 국무조정실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작업을 총괄지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기획예산처에서 전략기획관과 재정정책기획관을 맡았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인수위에 참여한 이후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실장과 2차관을 역임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만들어진 경제정책인 ‘국가비전 2030’도 김 후보자가 주도적으로 만든 알려졌다. 때문에 김 후보자를 두고 특정 정부 사람이라기보다는 재정 관료로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분야 관료로서 일했던 경력 이외에는 뚜렷하게 특정 진영과의 개인적 인연이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김 후보자의 경우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던 시절 큰아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발인 당일 오후에도 출근하는 모습을 보이며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했던 에피소드가 전해지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아주대 총장 재임 시절에도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아주대 학생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 학생까지 문호를 개방해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을 해외 연수를 무료로 보내주는 제도를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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