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이 촛불개혁 10대 과제로 제시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재수사와 관련해 경찰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에서 10대 촛불과제 중 하나로 백남기 농민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다며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국회나 정치권에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나와 재수사를 해야 할 명백한 요건이 성숙되면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단서 조항을 달긴 했지만 경찰이 재수사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사건이 발생되고 난 후 처음이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발생한지 500일이 지났지만 검찰은 '수사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며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30쪽짜리 보고서에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재수사 지시 내용이 담겨 있어 주목을 받았다.

민주연구원은 "즉시 시행 가능한 개혁과제의 선제적 실행"이라는 제목 아래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개혁 과제 중 즉시 시행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개혁 과제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실행 발표함으로써 시민사회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강화"할 수 있다며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재수사를 과제로 제시했다.

청와대가 민주연구원의 보고서 내용을 건의로 수용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망 사건 재수사를 지시하면 수사 당국이 답변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경찰 공권력이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지시를 하더라도 난항이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 수사를 주요하게 다룬다면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와도 연동될 수밖에 없다.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를 논의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발 여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청장은 “기본적으로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우리 사법체계의 대변혁이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이 준비할 게 많다”며 “국민이 우려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경찰 수사역량을 강화하고 외부적으로 수사신뢰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계속 깊이 있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 2016년 11월5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열린 노제의 맨 앞자리에 백남기 농민의 대형 초상화가 놓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6년 11월5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열린 노제의 맨 앞자리에 백남기 농민의 대형 초상화가 놓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청장의 발언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는 국민 신뢰가 높았을 때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 재수사를 지시했는데도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에 대한 여론은 차갑게 식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백남기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이즈음에 더욱 철저하게 백남기 농민 폭력살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사건 당일 물대포를 쏜 경찰에 대한 청문감사보고서를 국회와 법원의 요구에도 제출하지 않는 경찰,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을 살인하고도 징계나 책임은 물론 사과조차 없는 경찰, 국회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경찰에게 수사권을 준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경찰 스스로 철저한 반성도 책임 없이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정치권력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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