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당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호남 지역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큰 폭으로 오르며 정국 주도권과 지역 기반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대선 이후 여론조사를 통해 나온 각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갤럽이 발표한 5월 셋째주(16~18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5%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호남지역에서만 71%를 기록한 것을 고려해볼 때 당의 지역기반이 호남인 국민의당으로선 뼈아픈 결과다.

호남지역은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전체 응답자 중 87%가 문 대통령이 향후 5년 간 직무 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응답했는데, 광주전라 지역에서만 96%가 문재인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는 5.18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광주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는 모습을 보이며 호평을 받았던 것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문재인 정부는 호남 출신 인사를 대폭 기용하며 호남 지역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전남 영광 출신의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총리 후보로 지명됐고, 임종석 비서실장 역시 전남 장흥 출신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겸 정책특보로 임명된 이용섭 전 장관은 전남 함평 출신이며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도 전북 전주 출신이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전북 고창 출신이며,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전남 광주 출신의 박균택 대검 형사부장이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남 지역의 지지가 높아지고 있지만 국민의당 입장에선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국민의당 안팎에선 향후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이후 전개될 정국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해 ‘비판할 것은 한다’는 기조를 보이는 것외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 국회 내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책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면서 적절히 협상 테이블을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예방해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예방해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현재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 재적의원 5분의3에 해당하는 180석 이상이 동의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처리가 불가능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121석, 국민의당 39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이기 때문에 모두 합쳐야 186석이 돼 안건신속처리(패스트트랙)가 가능해진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연대 및 통합론이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몸집을 불려 민주당과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호남 지역을 버리고 갈 수도 없다. 국민의당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 지나치게 제동을 걸 경우 발목잡기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2018년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고려해볼 때 견제와 균형을 최대한 발휘해 현재 5%에 불과한 호남지역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이는 대선 직후 불거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 논의가 쏙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호남 지역 민심 회복을 고려하자면 보수 성향의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당 통합은 국민의 시각에서는 ‘담합’이라는 시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여론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호남 지역을 지역구로 둔 한 국민의당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정책 연대는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당대당 통합은 안된다”며 “상황이 바뀌면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국민들이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고, 바른정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이러한 상황들이 정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 지역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크게 (국민의당 입장에서)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호남 지역을 지역구로 둔 또 다른 국민의당 의원은 “호남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선의의 경쟁체제가 구축된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 정치가 그동안 진보와 보수 양대 구도 속에서 펼쳐져왔기 때문에 이 속에서 (이념을 탈피한 다당제를 만든) 국민의당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자리를 잡기 위해 바른정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가 고민이다. 민주당과는 차별성을 확실히 가지되 여당으로서 추구하는 정책에 협조하고 오히려 국민의당이 개혁입법과제를 주도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호남 지지율과 정국 주도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국민의당에게 남겨진 숙제이지만, 국민의당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정국 주도 방향에 국민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다른 야당이 어떻게 해나가겠다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정국의 주된 변수는 청와대와 여당이 어떻게 하는 지에 달려 있다. 야당은 종속변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RDD)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22%,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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