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겁지 않아도 좋으니 너무 빨리 식지는 말아주십시오.”

안희정 충남지사가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모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국민에게 부탁한 말이다. 이날 오후 6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노무현재단이 개최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모행사인 ‘사람사는세상 시민문화제’에는 안 지사와 함께 유시민 작가, 이재명 성남시장이 참석했다.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가 미리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건 처음이다. 이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잘하고 계시지만 국민들께서 ‘대통령이 잘하겠지’ 하고 맡겨놓으면 사실 대통령 권력 가지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며 “기득권자들과 부딪히는 국면이 되면 상처를 입을 수 있는데 그 지점에서 국민여러분이 애정을 갖고 동참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시장은 “진짜 승부는 곧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 2009년 5월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모습. 사진=노무현 재단
▲ 2009년 5월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모습. 사진=노무현 재단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였지만 문재인 대통령 집권과 맞물려 당선 축제 분위기도 나타났다.

이 시장은 “윤석열 서울지검장 임명하는 것 보면서 ‘진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좋은 거 하나는 이제 압수수색 안 당하겠구나”라며 “우리 (성남시) 공무원들이 수백건 입건 돼있는데 앞으로 이런 거 없겠죠”라고 말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시장은 “요새 내가 청와대에 앉아있는 것 같다”며 “내가 더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문 대통령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을 함께 뛰었던 인사들인 만큼 경선 당시 이야기도 나눴다. 안 지사는 당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던 ‘선의’ 발언에 대해 “지나고 보면 사실 두들겨 맞을 말이 아니”라며 “‘선의’ 발언으로 한 달 두드려 맞았는데 나중엔 거의 잠도 못 잤다”고 털어놨다.

이어 안 지사는 “이번 경선을 거치면서 많이 배웠고, 어떻게 아버지 어머니의 회초리를 피해서 제 얘기를 잘 전달해야 할지 조금은 배웠다”며 “다음엔 정말 말씀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8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재단
▲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8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재단

이 시장은 “지나고 나니까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았다”며 “자주했던 얘기인데 ‘전쟁이 아니라 경쟁이다’, ‘하나의 팀이다’ 그랬지만 격렬해지고 맞으면 성질이 났는데 그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가 잘못한다고 내가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며 경선 과정에서 상처받은 시민들을 향해 “용서하십시오”라며 사과했다.

이에 유시민 작가는 “감히 조언을 드린다면, 안 지사는 단문으로 메시지를 내면 지지율이 더블로 뛸 것”이라고 조언했고, 이 시장을 향해서는 “최대 약점이 감정조절”이라고 했다. 유 작가는 “(국민들이) ‘아 저 사람 예전 대선 경선 때는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훌륭하게 극복했구나’ 이것만 확인하면, (이 시장) 지지율이 두 배 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겨울 촛불로 가득했던 광화문광장이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사진=임순혜 제공
▲ 지난 겨울 촛불로 가득했던 광화문광장이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사진=임순혜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안 지사는 “노무현은 한 동안 저의 모든 것”이었다며 “정치를 하면서 노무현을 만나 그분을 모시고 일하는 동안 행복했고,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저한테 스승이었고, 아버지 같았고, 다양한 역할을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안 지사는 “우리가 어렸을 때 정의감과 도덕감을 가지고 세상을 봤을 때처럼 (노 전 대통령은) 깨끗한 정의감, 깨끗한 분노 그런 느낌을 주는데 ‘먹물쟁이’들이 쉽게 못 배우는 것”이라며 “세상을 날 것 그대로의 정의로운 감정으로 보는 게 아니라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보면 노무현 맛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사법연수원 다닐 때 마음으로는 ‘군사정권에 임명받아 판검사 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막상 자신이 없었는데 용기를 준 분이 노무현이었다”며 “강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중 배운 게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인권을 다루는 변호사 개업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원래 정치를 하려면 재산 다 털어서 당선되면 도둑이 되고, 안 되면 거지가 되는 거였는데 돈 못쓰게 만들었고, 비용 합법적인 건 돌려줘서 정치인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며 “노무현의 정치개혁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 정신과 가치를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유 작가는 “누구를 좋아할 때 완벽해서 좋아하느냐, 훌륭하기 때문에만 좋아하느냐”고 시민들에게 물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결함이 없는 분이 아니라 결함이 많았지만 결함을 다 채우고도 남을 장점, 미덕을 가진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생각하면 좋은 것만 떠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굉장히 많이 떠오른다”며 “내 삶의 의미가 뭔가, 이걸 젊을때부터 고민하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가 열린 광화문광장은 촛불집회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촛불집회는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해서 세상의 큰 흐름을 바꾼 것”이라며 “처음에 촛불들고 나올 때 박근혜를 탄핵할 수 있다고 확신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지만 무시당하고 살 순 없으니 치열하게 싸운 결과 헌정사에, 어쩌면 세계 정치사에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늘 국가는 크고, 관과 정부는 높고 위대하고 지엄한 분들인 반면 백성은 무지렁이고 기껏해야 민란 한번했다 진압당하는 역사였는데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으로 우리의 주권행사를 최초로 했던 것”이라며 “직업정치인인 제 입장에서는 두려운 순간이기도 하다, ‘까불면 저렇게 당한다’”라고도 말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노무현 재단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노무현 재단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엔 가수 김장훈, 안치환, 조PD, 크라잉넛, 조관우, 장필순, 416합창단 등이 공연을 선보였다.

앞서 20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맞춤형 참여마당에는 가족단위로 참가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아이들은 각종 체험부스와 에어바운스 놀이터 공간에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풍선·바람개비, 솜사탕 등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어른들은 ‘노무현과 촛불’ 특별전시관, 봉하장터 등 노 전 대통령과 관련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추도식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 정세균 국회의장, 이해찬 재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권선택 대전시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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