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일차인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정규직화’를 언급하자 노동자들은 기쁜 낯을 숨기지 못했다. 일부는 눈물을 글썽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파격적인 행보였다. 올해 2월 공공운수노동조합 인천공항공사지부가 조합원 2360명 가운데 17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권이 교체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7.2%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의 인천공항 방문은 취임 후 첫 행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컸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인천공항공사에 아주 기쁜 소식이 있다고 해서 그 기쁜 소식 함께 나누려고 왔다”며 분위기를 띄웠고 정일영 사장은 “정부가 관련된 규제를 풀 것을 보고 올해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말했다.

1. “노동자는 논의에 ‘들러리’ 되는 거 아니냐”

언론에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가 곧 해결 될 것처럼 보도되지만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다. 먼저 논의 방식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혹시나 인천공항이 내용을 준비하고 노동조합은 형식적 들러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방문한 지 이틀만인 14일 ‘좋은 일자리 창출 TF팀’이 꾸려졌지만 노동조합은 배제됐다.

지부는 당사자가 참여하는 정규직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부는 15일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정규직화여야 한다”면서 “지금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정규직화 추측에는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정규직화 방안’이라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다”고 밝혔다. 현재 지부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는 TF팀을 준비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직원들과 사진을 찍고있다. 사진=인천공항공사지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직원들과 사진을 찍고있다. 사진=인천공항공사지부 제공
2. 화장실 청소 노동자는 안전 업무일까?

현재 거론되는 정규직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인천공항이 별도 직제를 만들어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5월 서울지하철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가 안전문 정비·차량 경정비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기존 정규직과 같은 호봉을 받을 것인지 등 처우 문제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하다.

두 번째는 인천공항이 출자한 자회사에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서울시가 ‘120다산콜재단’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노동조합 등과의 논의를 통해 자회사를 만든 다음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콜센터 상담 노동자를 고용했다. 그러나 이 경우 인천공항 직접 고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의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고용방식을 달리 하는 방법이다. 가령 안전과 관련된 ‘소방대’나 ‘특수경비’ 등은 인천공항 직접고용으로 하고 환경미화 등의 업무는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철 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안전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신 정책기획국장은 “인천공항 이용객이 하루 수십만명이다. 이들이 모두 화장실을 이용한다. 만약 이용객이 화장실에서 의심되는 물건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고의무가 없다”면서 “이때 이를 가장 잘 발견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환경미화 노동자다. 이 경우를 볼 때 안전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3. ‘수하물 대란’과 ‘밀입국 사건’은 왜 발생했을까

노동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정규직화 논의도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항 안전으로 이어지는 정규직화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1월 ‘수하물 대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공항수하물종합관리시스템’ 부품이 고장나면서 항공기 수십대의 출발· 도착이 줄줄이 지연됐다.

이후 인천공항은 관리센터 인력을 증원하고 현장 지휘를 위한 팀장급 인력이 현장 관리센터에 상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부는 ‘인천공항-하청업체-노동자’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수하물 대란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밀입국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20일 30대 중국인 남녀 2명은 경비가 허술한 새벽, 상주직원들이 이용하는 자동 유리문을 아무런 제재 없이 통과했다. 이후 이들은 탑승객과 일반인의 경계 역할을 하는 유리문의 잠금 장치를 푼 다음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당시 지부는 “밀입국 사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보안검색지회는 본래 순찰해야 할 구역이 있음에도, 승객과 항공편 증가에 따라 새로 생긴 지역에 지원업무를 가야 해서 업무 공백이 생겼다”며 “이런 업무공백이 생기는 사례가 무려 28%에 이른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인재’라는 것이다.

지부는 “현재 구조에서는 결정 권한이 있는 인천공항과 실제 현장을 잘 아는 노동자가 직접 소통하기 어렵다”면서 “인천공항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만을 위한 정규직화를 원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만을 위한 정규직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국민적 명분도 없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4. 이번 논의에서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 10월말 기준 6831명이다. 전체 직원의 84.2%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항공사, 각종 식당, 물류업체 등 사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대략 4~5만명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부는 “대부분 노동조합이 없고 원청과 하청업체 계약기간도 1년이 많다 보니 고용불안도 더 심각하다”면서 “그런데 이번 논의에서 수만명에 달하는 민간기업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소외돼 있다. 단기간에 정규직화 되는 것이 어렵다면 노동자로서 권리에서 소외된 것이라도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5. 향후 정규직화의 ‘모델’ 될 것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현재 2360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지부도 2008년 출범했다. 개항 당시부터 지난해 말까지를 기준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하는 승객은 3배가량 증가했고 비행편수는 3.5배 증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인천공항 기자실 ‘복도’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료에 따르면 2008년 2900만명이었던 승객 수는 2014년 4500만명까지 증가했지만 환경미화 노동자 인원은 변함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등 승강설비는 150대가 늘었으나 노동자는 단 4명이 증가했고 비행편수가 증가에도 탑승교를 설비하는 인원 역시 7년째 그대로였다.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화와 관련해 인천공항을 처음으로 방문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는 다른 공공부문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민간기업에까지 확대 될 가능성이 있다. 일종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빠르게 진행되기보다 ‘잘 되어야’ 하는 이유다.

신철 정책기획국장은 “결과만 제대로 된 모델이 아니라 과정이 제대로 된 모델이 돼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논의에 들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 말로 공항의 안전은 물론이고 공항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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