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시작과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 출신인 조국 신임 민정수석의 인선은 그 시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검찰 인사’를 임명하며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관여치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공수처 신설론자’ 임명은 새 정부의 구체적 대책까지 함께 드러냈다.

여론의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과 권력층 간의 유착관계가 드러남에 따라 검찰에 대한 사회 불신이 극에 달해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 정부가 법무부 장관까지 비검찰 인사로 앉히려는 모습은 노무현 정부와 유사한데 개혁 가능성은 그때보다 무르익었다는 전망이다.

“옥상옥? 뭐라도 안 만들면 안 될 상황”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검찰 개혁은 내부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옥외옥(屋外屋)’, 즉 검찰이라는 집 바깥에 새로운 집을 지어야 비로소 견제력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선 ‘외부 통제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검찰 내부적 변화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를 도입하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깨진다. 공수처 신설에 동의하는 측은 검찰 만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검찰을 장악한 행정부가 이를 이용하는 폐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고위공직자, 정권 실세, 집권 세력 관련해서 수사를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발생해왔다. 그런 경우 검찰을 통제할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면서 “그러면 수사·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기관, 검찰과 태생이 다른 기관이 존재하면 기관 간 상호 견제가 될 것이다. 반드시 수사해야하고 진실 규명해 법적 처벌을 요구해야 하는 그런 사건은 더 줄어들 것”이라 말했다.

현행 특별검사 제도, 특별감찰관법 등이 보완책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박 처장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이 문제를 정확하게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박 사무처장은 “우병우나 진경준의 경우 검찰은 수개월 간 이들을 수사하지 않았다. 고위직 검사들, 인사권을 쥔 권력층 눈치를 봐서 정말 수사해야 할 일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경우는 허다했다”면서 “검사 인사위원회, 검찰총장추천위원회 등으로 인사 독립성을 강화한다고 해도 검찰은 원천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인사권을 쥔 조직이다. 그 조직 하나만 믿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3월1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3월1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박범계 의원은 지난해 11월15일 법사위 소위원회 회의에서 “세월호 사건이라든지 또는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이라든지 이런 사건에 대해서 상설특검은 작용되지 않았다. 제도만 만들어 놓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사무처장은 특검제도와의 차이에 대해 “특검의 경우 여야 협상을 거치는 등 특검이 구성되기까지 많은 노력, 시간, 비용이 든다”면서 “사건은 이미 터졌는데, 피의자들은 증거자료를 은폐할 텐데, 수사를 맡기네, 마네 정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특별검사를 임명하고 수사팀을 새로 모으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팀워크를 형성하는 데도 (수사 기일) 앞에 10여 일 정도는 시간을 날려버린다”고 말했다.

계류 중인 법안, 법무부 장관 인선 후 수면 위로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가 본격화되면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8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소위원회 논의 후 법제사법위원회 주관 공청회를 거쳐 다시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검사,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선출직 공무원, 고위공직자 및 가족 등의 비리·부패 혐의에 대한 인지수사, 고발·고소·수사의뢰 등에 따른 수사를 할 수 있다. 공수처장은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 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국회의원 4인 등 7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단수로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론의 압박과 법안에 우호적인 의석수 등을 고려하면 법안 통과 가능성이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박 처장은 “노무현 정부 때 아쉬웠던 점은 공수처를 국민권익위원회 하의 부패방지기구에 두겠다고 해 당시 한나라당이 독립성 문제를 거론하며 끝까지 반대했다”면서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위상을 보장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이 상임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 인원의 과반수로 통과될 수 있다. 정의당 6석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119석)이 국민의당(40석), 바른정당(20석) 등 야당을 설득한다면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 측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자 법사위 간사는 지난해 11월과 지난 1월 등 두 차례에 걸친 소위원회 회의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고수했다.

공수처 도입을 반대하는 측 의견은 ‘옥상옥’과 ‘권력 비대화’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진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공수처는 검찰을 견제하는 기구가 될 수 없다는 요지로 공수처 설치안 당론 채택을 반대했다. 그에 따르면 검찰 조직 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사권·수사지휘권·공소제기 및 유지권·형집행권 등 막대한 권한을 가진 것으로, 공수처는 이 권한 축소와 관련이 없다.

금 의원은 특검과 특별감찰관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것처럼 공수처도 ‘옥상옥’이 될 여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실패 사례를 가지고 있다. 19대 국회 때 만들어진 특별검사법과 특별감찰관 제도”라며 “실제로 현행법에 의해서 특검을 실시한 일은 없다. 특별감찰관도 지난 2년간 아무 일도 안 한 것은 마찬가지다. 법사위에서 특별감찰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 서로 무안해진다. 보고할 사항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법학 전문가들은 “또 하나의 무소불위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경식 원주대 교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데 공수처장 또한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과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면서 “수사대상이 제한적인 것만 차이가 날 뿐,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축, 검·경 수사권 조정

금 의원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축소하는 대안을 내놨다. 금 의원은 지난 3월27일 경찰에 1차적 수사기관 권한을 명시하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대폭 축소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형소법 196조의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지휘권 규정을 삭제하고 “검사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을 수사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를 개시하고 진행하는 직접 수사권한을 갖게 되고 검찰은 수사과정 중 경찰의 권한 남용 방지를 견제하는 수사지휘권을 갖게 된다. 검찰은 예외적으로 경찰이 수사하기 곤란하거나 검찰 스스로 수사할 필요가 있는 사안에 한해 수사를 개시·진행할 수 있고, 이 경우에도 고등검찰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 2017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 연합뉴스
▲ 2017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일각에서 경찰의 수사역량 등의 이유로 ‘조정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제기하는 데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이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는데, 같은 논리라면 검찰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은 수십년이 논의된 문제인데, ‘아직 안된다’는 말은 언제든 그냥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약속한 정책이다. 조 수석이 펴낸 논문, 저서 등을 종합하면 조 수석 또한 수사 개시권 및 진행권에 한 해 경찰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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