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70여억 원을 들여 정유라씨의 독일 전지 훈련을 챙기는 동안 자사 승마단 소속 선수는 단 한 명도 그와 같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삼성 측이 “다른 선수들의 해외 훈련 지원을 추진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지원 제의를 받은 당사자로부터 ‘내용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제안’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40여 년 간 승마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승마단’ 소속 선수인 아들이 독일 훈련 지원 제의를 받을 당시 ‘정유라만 지원하면 노골적이어서 문제가 되니 아들을 지원선수로 끼워넣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인식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15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씨와 그의 아들은 2016년 10월4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대한승마협회 회장 겸직)과 황성수 전무(협회 부회장)와의 오찬자리에서 최씨 아들의 올림픽 출전 준비를 위해 독일로 전지훈련을 가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최씨는 당시 ‘삼성 승마단은 2008년 이후 올림픽 출전을 위한 말 구입이나 투자를 중단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최 선수(아들)에게 독일 전지훈련을 가라고 했다’는 생각에 “이상한 제안”이라고 여겼다.

▲ 박근혜씨와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등 15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씨와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등 15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1986년부터 2009년 경까지 삼성 승마단 선수로 활동한 최씨는 삼성 승마단이 2008년부터 선수들에게 말을 사주지 않는 등 투자를 중단해 ‘사실상 해체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난해 4월10일 작성한 ‘모나미 승마단 창단’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 승마단은 “현재는 VIP(이건희 회장 일가) 지원을 위해 마장마술 및 장애물 마필을 운동시키는 목적으로 일부 선수 3명을 운영”하고 있다.

최씨는 제안을 받은 후 최 선수에게 “정유라만 지원하면 문제가 되니 너를 프로그램에 끼워넣는 것 같다”고 말했고, 최 선수는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최씨는 당시 제안을 받은 상황에 대해 “정상적 출장이면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인데, 너무 모르는게 많아 나도 답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박 사장과 황 전무에게 ‘말 몇 마리를 사주는지’, ‘코치는 누구인지’, ‘숙소·차량은 제공되는지’ 등을 물었으나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정상적인 훈련 지원이라면 선수가 정확한 훈련 기간, 훈련 장소, 숙소, 훈련 코치 등에 대한 계획을 미리 전달받아야 한다.

특검 측은 이를 삼성의 정씨 승마 훈련 지원 보도가 논란이 된 후 단독 지원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급하게 진행된 계획으로 보고 있다.

박주성 검사는 “삼성 승마단 독일 해외 전지훈련 지원이 진정성이 없는,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이란 점을 최씨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2016년 9월29일 코펜하겐 회의, 9월28일 켐펜스키 호텔에서의 비밀 모임 이후 10월4일 최 선수에게 독일 함부르크를 훈련 장소로 언급하며 지원을 제의했다. ‘함부르크 프로그램’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황 전무가 최 선수에게 2016년 3·6·8·10월 등 총 4회에 걸쳐 훈련 제의를 한 사실에 비춰 “증인 진술을 종합해 보면 삼성이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이전부터 승마단 해외 전지 훈련을 추진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다”며 “비록 최씨가 ‘정유라가 훈련 지원의 중심이고 다른 선수들은 부수적 지원을 받는 것이지 않겠느냐’는 것도 그의 생각일 뿐 삼성이 어떤 계획을 해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숙소로 쓸 가구가 구비된 아파트가 제대로 구해지지 않아” 전지훈련 일정이 미뤄져 왔다고 강조하면서 “구체적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았단 점으로 전지훈련 계획의 실체성까지 부정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 2014년 9월20일 인천시 드림파크 승마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한 정유라씨(당시 이름 정유연)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4년 9월20일 인천시 드림파크 승마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한 정유라씨(당시 이름 정유연)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최씨는 최순실씨에 대해 “정유라가 말을 탔기 때문에 그 선수의 어머니가 최순실씨란 건 (승마선수들이) 다 알고 있었다”면서 “이름을 알게 된 시점은 2013년 상주 승마대회 문제 이후로 ‘최태민 딸’로 알았다”고 밝혔다.

삼성 측 변호인은 지난 17일 특검 측이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를 재판 증인으로 요청한 것에 대해 “피고인 측에서도 특검과 의견이 같다. 반드시 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 선수가 관여된 ‘함부르크 프로그램’은 삼성전자가 정씨에게 지원한 명마의 소유관계를 ‘세탁’하기 위한 허위 용역계약으로 지목돼 왔다.

최 선수가 독일 훈련 지원을 받기 6일 전인 9월28일 박상진 사장은 최순실씨와 독일 켐펜스키 호텔에서 만나 말 교체와 관련된 논의를 했다. 당시 박 사장이 쓴 메모지에는 ‘말 비타나 살시도 안됨’, ‘비타나 대체말 함부르크’, ‘비타나 성적 잘 안나와’, ‘대체 말’, ‘말에 대한 욕심 그대로’, ‘야당공세. 이건 오케이 그러나 내년 정권 교체시 검찰 수사 가능성’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다음 날인 9월29일 최순실씨,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정씨 승마코치이자 말 중개상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트는 코펜하겐 공항 환승 구역 비밀 회동을 가졌다.

특검은 이들이 9월23일 삼성이 정씨의 150만 유로 상당의 명마 ‘비타나V’를 구입해줬다는 보도가 난 데 따라 대책회의를 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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