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에 대해 돈과 기업, 공무원의 자리까지 약탈한 ‘약탈 정권’이었다고 규정했다. 또 새 정부는 승자독식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 교수는 조언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와 김환표 대중문화저술가는 지난달 말 집필한 ‘약탈정치’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실제로는 9년)에 대해 주요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강 교수 등은 이명박·박근혜가 어떻게 권력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그 권력 밑의 비선과 측근들은 어떻게 ‘약탈 전쟁’을 적나라하게 벌였는지 이 책에 담았다.

약탈이라는 근거에 대해 강 교수 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들었다. 박근혜 탄핵과 파면을 주문한 헌재 결정문 내용을 두고 강 교수 등은 ‘약탈의 대향연’이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한국을 상징하던 ‘발전 국가’를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공물을 빼앗는 ‘약탈 국가’로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소개하면서 “약탈 정치는 좌우나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누적되어온 우리의 경제발전 방식과 그것에 의해 형성된 삶의 방식에 녹아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사회의 약탈정치에 대해 강 교수 등은 “정치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며 “오죽했으면 ‘정치는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라고 했겠는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한국 정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 등은 이들의 약탈 행태에 대해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약탈하고 박근혜 일행은 대기업을 약탈했다”며 “돈만 뺏은 게 아니라 아예 기업을 통째로 뺏으려고도 했다”고 썼다. 어느 광고회사 사장에게 “회사를 넘기지 않으면 세무조사하고 당신도 묻어버린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압박한 내용이 공소장에 담겨있는 것을 두고 강 교수 등은 “이쯤되면 박근혜 정권은 최순실 권력의 조종을 받는 ‘약탈 국가’로 기능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약탈은 돈과 기업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공무원의 자리까지 약탈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 등은 이 모든 유형의 약탈은 결국 국민의 신임을 약탈한 것과 다름없다며 헌재는 약탈의 먹이사슬 관계에서 최종 포식자로 군림한 박근혜를 탄핵했다고 썼다.

이 같은 박근혜의 약탈은 이명박과 그 일행에도 해당됐다고 강 교수는 평가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중앙부처 장차관, 공공기관 기관장·감사 등 어림잡아도 3000~4000개에 이르며, 법원 검찰 KBS 각종 협회 등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까지 포함하면 수만 개나 된다.

이명박 정권의 ‘747’ 공약에 대해 강 교수 등은 “홍보의 성공이었을 뿐”이라며 “이명박 정부 5년간의 평균 성장률은 2.9%로, 목표는커녕 노무현 정부의 4.3%에도 한참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진=온테이블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진=온테이블
특히 이명박 정권 약탈의 정점은 인사문제였다. “빨대를 꽂은 약탈은 대선 논공행상의 일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 등은 “이명박 정권은 논공행상을 위한 고위직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공기업에 ‘막가파식 물갈이 수법’을 동원했다”며 “처음에는 사퇴를 유도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표적 감사에 돌입, 그래도 버티면 사법 처리 절차를 밟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물갈이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감사원과 검찰 등 소위 사정기관이 동원됐으며, 감사와 수사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 해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명박 정권초 정연주 KBS 사장과 신태섭 이사의 해임이었다.

자원외교는 대표적인 국고 손실 사례이다. 강 교수 등은 “외교마저 그런 ‘돈 냄새’ 바람에 휩쓸렸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이명박 정부가 2011년 3월 자원외교의 쾌거라며 홍보한 한국의 아랍에미리트(UAE) 10억 배럴 이상 유전에 대한 우선적인 지분 참여 권리가 단순한 참여 기회 보장을 과장한 것이라는 의혹에 휩싸였다”며 “당시 정부는 이명박의 UAE 방문 당시 10억 배럴의 원유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가 야당 등에서 따지고 들자 매장량 10억 배럴 이상인 생산 유전에 대한 우선적인 지분 참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시기가 ‘약탈정권’이 된 원인을 이들은 승자독식주의에서 찾았다. 박근혜가 절대적 독서량 부족으로 ‘베이비 토크’라는 말을 듣는 등 대통령으로서 무능과 무지가 큰 결격사유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강 교수 등은 “박근혜의 ‘텍스트’보다 박근혜를 둘러싼 ‘콘텍스트’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라며 “이명박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한국정치 자체가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며 이익투쟁을 벌이는’ 영국의 여야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대통령이 사실상 제공할 수 있는 수만 개의 고급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쟁탈전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그런 쟁탈전을 벌이는 이유가 바로 승자 독식주의에 있다고 강조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체제에선 민주주의는 물론 통합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니 승리를 위해 목숨 걸고 죽을 때까지 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승자독식주의의 특성에 대해 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기는 문화”를 들었다. 그런 문화의 배경에 대해 강 교수 등은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저항하면 권력의 잔인한 보복이 이뤄진다”며 “언론은 이런 보복에 별 관심이 없다. 나중에 모든 실상이 밝혀진 후에도 저항을 택한 ‘의인’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보상도 없다. 각자도생하기에 바쁜 한국 사회의 독특한 습속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습속엔 조폭의리도 포함돼 있다. 복종하지 않고 이탈하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설사 못된 윗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언론은 왜 그런 엉터리 주장의 확성기 노릇을 하면서 그 사람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공범이 되는 걸까. 강 교수 등은 “언론도 그리고 많은 국민도 그런 조폭 의리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밥그릇 쟁취를 위한 사생결단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뜻일망정, 그로 인해 승자 독식은 강화되고, 반대편은 이를 갈면서 정치의 재청산 기회를 얻는 동시에 ‘밥그릇’을 다시 찾아오는 투쟁으로 환원시킨다고 이들의 분석이다. 때문에 강 교수 등은 “‘밥그릇’은 결코 천박한 용어가 아니며 그걸 천박하게 보지 않아야 공공적이고 생산적인 갈등을 전제로 한 통합의 길도 열린다”고 제안했다. 그는 “증오할 때 반드시 해야 하며 증오가 정치의 원동력이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증오의 양과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썼다.

특히 강 교수 등은 윈스턴 처칠이 총리 취임 연설에서 한 “내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말만 하지 말고 위기 극복과 국민 화합을 위해 우리 모두가 나눠져야 할 책임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기 위해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애쓰는 게 바로 진정한 적폐 청산이요 개혁”이라며 “이명박근혜는 한국 정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걸 명심하고 그 거울을 깨는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보자”고 조언했다.

▲ 강준만 김환표 공저, 약탈정치 이미지. 사진=인물과사상사
▲ 강준만 김환표 공저, 약탈정치 이미지. 사진=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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