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운동사에서 2017년은 뜻 깊은 해다. 30년 전 한국일보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언론노동운동이 출발했다. 올해 운동진영의 목표는 적폐청산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여론을 왜곡했던 이들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나 언론적폐를 청산하더라도 언론운동진영의 과제는 남아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언론운동은 안티조선과 조중동 프레임, 이명박-박근혜정부 언론운동은 공영방송장악과 종편반대 프레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뉴스플랫폼의 급격한 변화로 조중동3사의 지면과 지상파3사의 방송화면이 갖고 있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뉴스수용 행태가 달라지며 조중동 및 공영방송 중심의 언론운동프레임 또한 성찰과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론운동진영은 새 정부의 힘을 빌려 과거의 언론자유지수를 회복한다고 언론운동이 끝날 리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변혁과제에 대해 다시 논쟁하고 싸워야한다. 미디어오늘은 창간 22주년을 맞아 20세기 언론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언론인 손석춘을 만났다.

손석춘은 1984년 언론사에 입사해 동아일보, 한겨레 기자를 거쳐 1994년 언론노조 정책기획실장과 1997년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으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을 주도하며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는 ‘신문읽기의 혁명’, ‘한국 언론운동의 논리’, ‘신문편집의 철학’을 비롯한 각종 저술활동으로 언론비평과 언론운동의 이론을 제공한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2015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악이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선이라는 식의 정파주의 틀에 갇힌 비판의식을 넓고 깊게 가져가야한다”며 민중언론학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언론운동가이자 언론학자인 그의 언어를 통해 언론운동의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전망해보고자 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미디어오늘 편집국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일문일답.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소위 조중동 프레임은 아직도 운동논리로서 유효한가. 과거에 비해 조중동의 영향력이 떨어지지 않았나.
“조중동 프레임을 논할 때 전제해야 할 점은 사주·간부와 기자를 구분하는 일이다. 젊은 기자들 중에는 한겨레를 꼭 가고 싶었던 친구가 한겨레 떨어지고 조선일보에 간 경우도 있다. 조중동의 의제설정과 보도프레임은 여전히 비판받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가 노동운동에 대한 보도태도다. 지금은 형식적 민주주의, 최장집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돼 버렸다.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게 조중동의 신문·방송 복합체다. 이명박 정권 들어 조중동이 종편을 겸영하게 되면서 여론 지배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종편 겸영으로 조중동 여론 지배력 강화됐다”
“전국언론노조, 산별로서 제 역할 못해”

-조중동 프레임을 활용하는 현재 언론운동을 평가한다면.
“언론 현업을 떠난 지 13년째이기 때문에 언론운동을 얘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단, 언론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언론학자로서,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한걸음 떨어져서 본다는 점을 전제하고 말하겠다. 언론노련이 2000년 산별노조로 출범했는데 내가 염두에 둔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산별노조라는 단일노조를 만들며 가장 중요했던 건 조중동의 변화였지만 너무 조급하게 성과중심으로 만들면서 조중동이 산별노조에 포함되지 못했고 조중동을 견인할 지렛대를 잃었다. 언론노련이 회의할 때만 해도 조중동 노조위원장이 참석해서 같이 토론했는데 그런 채널 자체가 (산별체제에선) 사라졌다. 당시 언론노동운동에 실망을 많이 했다.”

-지금 언론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나.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사 노동조합이 주도하면서 방송사란 특성 때문인지 전시성, 성과성을 중시하는 면이 있다. 지금은 나아졌겠지만 당시 느낌은 그랬다. ‘내가 위원장 시절 산별노조 출범시켰다’는 성과중심 운동방식은 앞으로 지양해야 한다.” (산별노조 출범당시 언론노조위원장은 최문순 MBC기자였으며 그는 현재 강원도지사다. 편집자주)

-운동 전략으로서 조중동 종편을 인정하고 내부에 민주노조를 세우는 투쟁이 유효하다고 보나. 아니면 종편 폐지와 조중동 폐간을 주장하는 게 유효하다고 보나.
“민주노조를 세우는 방식이 유효하다. (노조는) 종편에 있는 사람들도 바라고 있을 거다. 언론노조가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현실주의자다. 한겨레가 최근에 신입기자를 안 뽑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겠나. 조중동이라도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서 바꿔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중동의 젊은 기자들에게 여전히 기대하는 게 있다.”

-한 보수언론 차장급 기자는 사주를 ‘지지 않는 하나의 태양’이라고 지칭하더라. 공영방송은 정권교체마다 태양이 바뀌기 때문에 투쟁이 가능한데 지지 않는 태양이 있는 언론사에선 투쟁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하던데.
“사주가 있는 곳은 권력을 세습하기 때문에 노조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민단체와 언론운동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법과 제도의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성유보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와 언론노조 대표였던 내가 함께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만든 이유였다. 사주가 있는 언론은 편집권 독립이 이뤄지도록 밖에서 압박을 가해야만 한다.”

-언론운동진영에게 ‘멘붕’을 안겼던 JTBC는 어떻게 바라보나.
“문제는 JTBC다. 종편이 날치기로 만들어졌을 때 언론운동진영과 민주당은 종편을 해체시키겠다고 명확히 밝혔지만 흐지부지됐다. 초창기 시민사회와 민주당에서 조중동 종편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은 (운동의 선봉에 있던)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도 나가고 유시민 작가도 출연한다. 이제는 조중동 신방복합체 해체를 요구하고 운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주장을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홍석현 전 회장은 치밀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비판 여론이 있는 상황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그 결과 조중동 종편에 대한 반발여론을 잠재웠다. 여론독과점 신문사가 방송을 겸영하면 안 된다는 대원칙에 언론운동진영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JTBC와 중앙일보를 분리시키면 된다. JTBC를 분리시켜 살아남으라고 해야 한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하는 것은 문제가 없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신문인가. 둘째, 여론독과점 우려가 있는가. 두 가지에서 문제가 없으면 법을 개정해서 종편을 허가해도 된다고 본다.”

-손석희 사장 체제에서 사주는 JTBC 보도에 간섭하지 않았다. 이처럼 사주가 편집권을 보장하는 예외적 사례도 존재할 수 있지 않나.
“이와 관련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이다. 그는 사주와 친했고 편집권을 보장 받고 소신껏 일했다. 그런데 사주가 정한 틀을 뛰어넘을 때 대립하게 됐다. 그때 김중배 국장과 내가 동아일보를 나오게 됐고, 김 국장은 사주의 선의를 믿는 운동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JTBC 역시 편집권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JTBC를 독립시켜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있다. 손석희 사장이 JTBC를 독립시키는 데도 끝까지 남아서 기여하면 좋을 것 같다.”

“손석희, 뉴스타파 갔더라면… JTBC 독립 위해 기여해 주었으면”
“언론노조, 참여정부 견인 제대로 못했고 학습 문화도 사라져”

-손석희 사장과 JTBC에 대해 평가한다면.
“나는 오래 전에 MBC 개혁을 하려면 손석희를 9시 메인뉴스 앵커로 발탁해야 한다고 MBC측에 얘기했을 정도로 손석희 사장을 좋아한다. 손석희 사장이 JTBC에서 좋은 보도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운동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뉴스타파, 국민TV로 간 언론인들도 있었다. 손석희 사장의 명성이 이런 데에서 발휘됐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언론노조 내부에선 언론노조가 방송중심, 특히 MBC중심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 점이 정말 아쉽다. 언론노조가, MBC노조가 참여정부 시절 참여정부에 대한 견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MBC노조 집행부에 물었다. 농민들이 맞아 죽어가고 노동자가 자살할 때 MBC는 어디에 있었냐고. 2012년 장기파업 대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사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주어진 조건 속에서라도 보도의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똘똘 뭉칠 수 있도록 밑바닥을 다지는 일이 (파업보다)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

“최문순 MBC 사장이 임기를 끝낸 직후 민주당 비례대표 자리를 받았다. 그런데 언론운동진영에서 제대로 비판을 못 하더라. MBC노조위원장 출신 인사에게 이 문제를 지적하니 ‘(정치권에) 가서 잘 할 텐데’라고 하더라. 사장으로 있다가 민주당을 가면 사람들이 그간 MBC보도를 어떻게 보겠나. MBC에서 언론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모두 친 민주당은 아닐 거다. 그러나 MBC출신들이 너무 많이 특정 정당에 있다. 이들은 MBC를 통해 얼굴을 알려 정치권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MBC를 잘 지키고 있었다면 민주주의 발전에 더 기여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꼭 묻고 싶다. 공영방송을 제대로 정착시키는 일이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KBS와 MBC는 고위간부가 되면 정치권에 줄을 많이 댄다. 그런 문화부터 근절시켜야 한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언론운동이 공영방송중심의 입법투쟁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도 언론노조 내부에서 들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론노조 조합원들에게 묻고 싶다. 노동자로서 본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 본인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지. 언론노동자로서 정체성에 대한 교육, 학습, 토론이 중요하다. 그런데 학습과 토론이란 문화가 없어졌다. 학교에서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언론노동자들에게 노동문제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점을 알려주는 게 노조의 역할이다. 노조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학습에서 시작한다. 노동운동의 명제는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인데 지금 언론노조에는 학습이 빠져 있다.”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지나치게 친(親)민주당, 한경오 프레임은 말도 안 돼”
“대통령 직속기구 미디어개혁위원회 필요… 부역언론인청산 언론사 내부에 맡겨야”

-소위 ‘한경오’란 이름의 진보언론 혐오 프레임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누구는 가난한 조중동이라고 하더라.
“한경오 프레임은 말이 안 된다.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는 오히려 지나치게 친(親)민주당이어서 문제다. 이 프레임을 만든 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문제제기하면 ‘조중동과 같다’고 한다. 오래됐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랬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분들은 당시 내게 조중동과 똑같은 놈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봉하마을에 갔을 때 ‘왜 복지 예산을 과감하게 올리지 못했을까’, ‘왜 한미FTA를 서둘렀을까’, ‘왜 비정규직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을까’라며 아쉬워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한경오 프레임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최후에는 무조건 노무현에 대해서 감싸고만 돌았던 지식인들의 책임은 없는가. 비정규직 문제를 양산하지 않고 한미FTA를 서두르지 않고, 복지예산을 확충했다면 이명박으로 정권교체가 됐을까. 언론의 가장 고유한 역할은 권력 감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엇나가면 지지 세력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을 자부하는 분들이 본인이 얼마나 깨어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성찰이 없다면) 반동을 부른다.”

-새 정부에서 언론운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언론노조가 미디어개혁위원회 설립을 주장했는데 적절하다. 다만 의지가 더 강력했으면 한다. 이 위원회가 왜 필요하고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논의도 더 필요하다. 정부가 미디어개혁위원회를 수용했으면 한다. 미디어개혁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되 위원장이 정당인이나 정치인이어서는 안 된다. 동아투위 선배가 맡는 등의 방식으로 민간이 나서야 하고 정부는 지원을 해주고 권위를 부여해주는 형태가 돼야 한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방송통신위원회, KBS, MBC, 연합뉴스, 서울신문,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캠프 출신 인사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임명권자와 밀착돼있지 않는다면, KBS·MBC·연합뉴스 정도만 바뀌어도 꽤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공영방송 사장이 정치권과 선을 긋고 저널리즘 가치에 충실해야 하고, 그들이 젊은 기자·PD·아나운서와 함께 공영방송 문화를 바꿔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언론적폐청산을 위해 코드인사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적폐청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만의 요구가 아닌 시민사회의 요구다. 정치적 코드에 맞는 사람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오히려 더 풀기 어렵게 만든다. 그걸 피하는 게 슬기로운 태도다. 정말 적폐를 청산하고 싶으면 캠프 인사를 방송사 사장으로 앉히면 안 된다. 캠프 인사가 오면 새 권력을 등에 업은 낙하산 사장이 전임 정권의 언론인들을 탄압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김대중 정부 때 언론사 세무조사 등 정부주도 언론개혁에 나섰는데, 정부가 언론개혁을 주도하면 안 된다고 보나.
“당시 시민사회에서 세무조사를 주장했던 건 사주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사내 편집권을 독립시키기 위한 목표 때문이었다. 그러나 편집권 독립에 정권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세무조사로 끝났다.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갖고 있었지만 조중동에 대해 비판만 하고 정작 해야 할 개혁에는 소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쁜 정치인이지만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는 등 치열하지 않았나. 왜 참여정부는 그렇게 못했나.”

-소위 부역언론인 청산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소위 부역 언론인을 해고하거나 제작부서에서 쫓아내는 방식은 또 다른 탄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우선 권력이 주도하면 안 된다. 그래서 미디어개혁위원회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주로 논의하고 결론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것이다. 부역언론인 청산은 이 같은 작업이 되고 나서 언론사 내부에 맡겨야 되지 않을까. 공영방송 사장이 바뀌고 나서 내부에서 공론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연주 사장이 (KBS사장에) 선출됐을 때 고위직 간부들의 사표를 받았다. 그렇게 처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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