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라. 문빠들” (안수찬 한겨레 미래라이프 에디터의 페이스북 게시 글 가운데) 

문재인정부 지지자들의 ‘공세’가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방침에 반발하는 보수언론보다 이를 지지하는 진보언론으로 향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지지자들 가운데는 인신공격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어 사태가 간단치 않다.

최근 촉발된 사건의 발단은 한겨레 간부의 성급하고 감정적인 문장이었다. 안수찬 한겨레 미래라이프 에디터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는 하룻밤 사이 1만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날 안 에디터는 “우리가 살아낸 지난 시절을 온통 똥칠하겠다고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해줄게”라며 문재인 지지자들을 도발시켰다.

1만여 개라는 댓글 숫자가 갖는 충격보다 더한 충격은 댓글에 달린 진보언론에 대한 ‘혐오’적 인식이었다. 한 누리꾼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 일제라면 한경오(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는 부역자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누리꾼은 “편집장이 독자하고 싸우자고 시비 거는 한겨레 해명하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안수찬 에디터는 공식사과했다.

▲ 논란을 일으켰던 안수찬 한겨레 에디터의 페이스북 게시글. 안수찬 에디터는 논란이 일자 공식 사과했다.
▲ 논란을 일으켰던 안수찬 한겨레 에디터의 페이스북 게시글. 안수찬 에디터는 논란이 일자 공식 사과했다.
앞서 안수찬 에디터는 한겨레21 1162호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 표지사진을 두고 문재인 지지자들이 악의적인 사진이라고 비난하며 불매·절독 등을 예고하자 “저널리즘의 기본을 진지하게 논하지 않고, 감정·감상·편견 등에 기초해 욕설과 협박을 일삼는 집단에 굴복한다면, 그것 역시 언론의 기본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논란의 게시글은 이 같은 비판인식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한겨레 혐오인식은 간단치 않다. 1만여 개의 댓글 중 하나는 이랬다. “한겨레 기자 셋은 술을 마셨다. 한명은 동료를 죽이고, 한 명은 여성에게 성추행을 하고, 한 명은 싸우자며 막말을 날렸다. 술을 마시지 않은 기자는 정부 돈을 받아 4대강, 국정교과서 찬양 광고를 실었다.” 한겨레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구성하는 식으로 혐오 여론은 확장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호칭문제를 두고 곤욕을 치렀다. 오마이뉴스가 청와대 관련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라고 쓰자 독자들의 항의가 등장했고, 이에 한 기자가 “내부방침”이라고 밝히며 논란이 확산된 것. 문재인 지지자들은 ‘여사’란 표현을 쓴 오마이뉴스 기사들을 찾아내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16일 입장을 내고 “문맥에 따라 필요할 때, 시민기자들이 쓰는 기사에서 시민기자들이 원할 때 ‘여사’란 표현도 써왔다”며 “한 기자가 SNS 상에서 이러한 내부의 (혼용)표기방침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독자들에게 혼선을 안긴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의 이같은 해명이 등장하기까지 수백 명의 후원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 기자)는 “스스로 독자를 잃는 언론의 소셜미디어 소통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소셜미디어에서 기자가 독자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독자와 싸우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독자를 나무라고 가르치는 시도는 효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언론사는 소셜미디어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기자들이 독자들과 맞부딪히는 일이 벌어질 때 내부 대책을 효과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한 누리꾼이 만든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조롱 만화.
▲ 한 누리꾼이 만든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조롱 만화.
그러나 이번 사태가 온전히 기자들의 ‘감정적 대응’에서 빚어진 것은 아니다. ‘김정숙씨’로 보도했던 오마이뉴스 기자의 경우 “머리에든 게 없냐” 같은 원색적인 인신공격과 함께 “아이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안수찬 에디터 페이스북 계정에 쏟아진 1만여 개의 악성댓글과 신상털기식 모욕은 기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는 독자의 항의라기보다 겁박하기 위한 테러에 가깝다.

이와 관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한경오 프레임이라는 말 자체가 마치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가 조중동처럼 보도한다는 선입견을 준다”고 지적하며 “(한경오라는) 말 자체가 부적절하기 때문에 이 표현을 앞으로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언론개혁은 내편만 들어주는 언론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널리즘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학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진보언론은 긴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15일자 ‘편집국장이 드리는 글’에서 “편향도 반편향도 한겨레의 길이 아니다”라고 밝히면서도 “한겨레의 창간 정신이 퇴색했다. 한겨레가 꼰대처럼 보인다. 한겨레가 오만해졌다는 등의 지적이 과한 비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달라지려 애 쓰겠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는 16일 입장문에서 “누구보다도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새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진보언론은 자사에 대한 악의적 공격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자사를 둘러싼 여론을 곱씹고 지금까지의 보도행위를 돌이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사보도와 기자들 발언을 두고 뉴스수용자들이 왜 이렇게 민감해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저널리즘 측면에서는 언론과 독자와의 관계설정부터 기자 개인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어느 지점까지 사적으로 보고 허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관련 글 =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