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부부간 사이가 좋아보여서, 내가 남편이랑 사이가 좋고, 막 여행을 다녀도 이해해 줄 것 같다.”

TV조선 ‘며느리 모시기’의 세MC 중 한명인 이국주씨가 출연자 중 금슬이 좋은 부부를 두고 한 말이다. 남편과 여행을 가는 당연한 생활도 시어머니의 눈치를 봐야하는 한국사회의 고부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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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며느리 모시기'
TV조선 ‘며느리 모시기’는 종영 프로그램 SBS ‘짝’의 포맷을 ‘고부 커플’로 바꾼 프로그램이다. 남녀가 나와서 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후보들이 나와서 서로 짝을 짓는 것이다.

제목과 기획의도, 방송을 언뜻보면 ‘며느리 모시기’는 세명의 예비 시어머니들이 세명의 며느리 후보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모습도 없지는 않다. TV조선 제작진들은 “요즘에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선택하는 세상이야”라는 반전 관계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선택하는 것이라서 전복적 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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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방송 내내 보여지는 것은 결국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상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잘 챙겨줄 며느리를 찾고,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챙겨주는 여성을 원하는 것을 어필한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침으로 5첩 반상”을 바라는 시어머니도 있다.

애초에 여성의 실질적 결혼상대인 남편은 나오지 않고 시어머니가 나와 아들의 결혼 상대를 찾는 것부터가 황당하다. 이런 방송내용은 한국사회가 여성의 결혼을 남자를 챙겨줄 ‘제2의 엄마’나 ‘관리인’을 찾는 과정으로 보고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특히 전화통화나 사진으로만 나오는 아들의 존재는 마치 ‘갑’처럼 보인다. 한 며느리 후보는 한 남성과의 통화에서 "여자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묻고 아들은 "번듯한 직장이 있다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그러자 며느리 후보 중 한명은 안심을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질문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어떤 남성이 여성에게 “남성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어본 것을 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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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남성은 “아이를 넷 낳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여기에 질겁하지만 그 남성은 꿋꿋하게 “어차피 낳을 건데, 이런걸 싫어하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얼굴조차 비추지않는 남성은 이미 여성들의 선택을 받은 것 마냥 군림한다.

방송프로그램이 이렇게 ‘고부관계’를 강조해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종편의 수많은 토크쇼에서 고부갈등은 단골소재다. 채널A에서도 2014년 ‘웰컴 투 시월드’라는 방송을 통해 시어머니와 며느라는 소재를 주요하게 다루기도 했다.

‘고부관계’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남아선호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물론 TV프로그램에서 장인과 사위의 갈등을 다룬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매우 희소하고, 혹은 문제가 되지않는다. 장인과 사위의 문제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더욱 익숙하고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결국 이들의 역할에 ‘~해야한다’는 이상적 규범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장인과 사위에게는 ‘~해야한다’, 혹은 이상적 관계나 그 규범이 느슨하지만 ‘아들’을 가진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치러야하는 규범은 단단하고 많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이라는 것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부과하는 규범이 많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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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TV평론가는 “최근 고부관계를 비롯해 가족관계는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라며 “TV 프로그램이 이전의 가부장적 관계를 벗어난 고부관계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인지, 이전과 같은 양상의 고부관계를 재탕하려는 것인지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덕현 평론가는 “하지만 고부관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옛날 방식”이라며 “최근 시청자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를 콘텐츠로 만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 평론가는 “오히려 사람들은 ‘혼자 사는 이야기’나 ‘졸혼’ 등 결혼을 했어도 따로 사는 이야기 등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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