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짜 마크맨이었다. 2월1일 입사해 순환근무로 정치부에 온 지 한 달 차였다. 본격적인 대선정국에 들어서면서 수습들이 각 대선후보의 현장유세를 마크하게 됐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를 맡게 된 건 내 선택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른 후보는 경선을 통해 봤지만 홍준표는 먼발치에서 본 게 전부였다. 매일 볼 텐데 신선해야 재밌을 것 같았다.

세상이 이상했다. 5월1일. 광주송정역 유세가 시작이었다. ‘영산강 뱃노래’를 부르는 홍준표는 “영충(영남+충청)정권을 만들겠다”는 호남 배제 발언을 내뱉던 기존 모습과는 달랐다. 더 이상한 건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이었다. 홍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손을 내젓거나 “우리한테 그런 거 묻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3일 부산 유세에선 익숙한 얼굴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부산에 연고가 없는데 누구지. 순간 탄핵반대집회가 떠올랐다. 서울 대한문 인근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할머니였다. 팀장은 빨리 쫓아가라고 했다. 고개를 들었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근 상가와 골목을 뒤졌지만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한 시간을 서성였다.

그렇게 다음날인 4일 오전 경북 안동 유세를 따라갔다. 전날 새벽까지 잠을 설쳐 피곤한 데다 씻지도 못한 상태였다. 취재버스에 가방을 두고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챙겼다. 전날과 비슷한 발언을 듣다가 뒤를 돌아봤다. 지적장애인으로 보이는 3~4명이 눈에 띄었다. 태극기를 흔드는데 눈빛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날은 사전투표날이었다. 사진부 선배가 다가와 “14명 가까이 된다. 끝나고 확인해보라”고 귀띔했다. 팀장한테 쫓아가라는 전화가 왔다. 지갑이 없어 선배가 신용카드를 빌려줬다. 장애인 한 명은 선배에게 “투표하러 간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인솔자는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얼른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는 느긋한 성격이었다. 결국 중간에 트럭이 끼어들며 그들이 탄 봉고차를 놓쳤다. 어제가 떠오르며 울컥했다. “꼭 찾아야 한다”며 기사님을 채근했다. 30분 가까이 주위를 도는데 기적처럼 다시 봉고차를 발견했다.

봉고차를 따라가니 한 주택 앞에서 여성 탑승자가 내렸다. 그 다음엔 아파트에서 남성이 내렸다. 이들에게 ‘센터에서 누구를 찍으라고 했느냐’고 묻자 “2번”, “한 칸 밑에”라고 대답했고, 손가락으로 ‘2’를 표시하기도 했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지하 출입문 옆에선 버려진 투표용지 20장을 발견했다.

이들이 단체로 방문하지 않은 사전투표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센터 이용자들은 용상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했지만, 안기동 주민센터 참관인 또한 “장애인들이 단체로 왔다. 처음엔 봉고차를 타고 왔고, 승용차로도 왔다”고 비슷한 정황을 설명했다.

안동만이 아니었다. 노컷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4월27일 홍준표 부인인 이순삼씨의 제주 유세에 장애인주간보호시설 직원과 원생 50여명이 동원됐다.

그동안 부정선거 운동은 수없이 적발됐지만, 정당 하부 조직이 직접 조직적 대선 ‘불법 투표’ 동원에 나선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태다. 특히 불법 투표에 동원한 대상이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악질적인 수법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번 사전투표는 대선에서 처음 시행된 사전투표제였다. 이 과정에서 등록거주지와 상관없이 아무 데서나 투표할 수 있는 관외투표의 허점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도 엄벌이 필요한 사안이다.

▲ 배지현 오마이뉴스 기자
▲ 배지현 오마이뉴스 기자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특이한 케이스”라며 “제보와 신고가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5일 경찰조사가 끝나고 센터 직원에게 이끌린 채 차에 오르던 지적장애인 할아버지의 눈을 떠올린다. 세상은 여전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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