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대선을 앞두고 SBS에서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 논란이 있기 전 MBC에서도 시사제작국장이 세월호 인양 지연 관련 인터뷰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MBC 기자에 따르면 ‘시사매거진 2580’을 담당하는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은 지난 3월26일 방송된 ‘2580’ “세월호, 1073일만의 인양” 리포트에서 ‘세월호에 대한 의혹과 비밀은 앞으로 밝혀져야 한다’는 기자의 팽목항 현장 멘트를 교체하고, 인양 지연을 지적하는 인터뷰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조 국장은 이 같은 지시를 수용하지 않으면 방송을 불방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 국장은 세월호 인양 지연과 관련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들의 지극히 합리적인 지적과 비판을 담은 인터뷰 내용도 빼라고 지시했다. 원래 리포트에는 해수부의 인양 결정이 왜 늦춰졌고, 인양 방법을 결정하고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검증이 안 됐는데도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택한 것에 대해 정부의 고의 지연 의혹이 있었다는 인터뷰가 포함됐다.

조 국장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취재기자는 관련 인터뷰를 뺄 수 없다며 제작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조 국장은 리포트 흐름과 분량상 전체를 다 삭제하진 못하고 편집 과정에서 1분가량의 인터뷰를 들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3월26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예고편 갈무리.
▲ 지난 3월26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예고편 갈무리.
해당 리포트는 지난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민주방송실천위원회에서 검열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조 국장이 ‘2580’ “세월호, 1073일만의 인양” 리포트에서 세월호 관련 ‘진실’이라는 단어를 빼지 않으면 불방하겠다며 압박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조 국장이 검열한 리포트 문구는 다음과 같다.(▶MBC 간부가 삭제 지시한 세월호 리포트를 공개합니다)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아파하고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위안과 진실을 전해줄 수 있기를. 세월호 침몰을 보며 눈물 흘리고, 인양 모습을 보며 마음 졸였던 모든 국민들의 바람일 겁니다.”

MBC 기자들에 따르면 조 국장은 이 부분에서 ‘진실’이라는 단어를 ‘치유’로 대체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의명 기자는 국장의 집요하고 비상식적인 요구에 극심한 압박과 자괴감을 느꼈지만 방송 불방을 막기 위해 재촬영 요구에 따라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들의 기억교실을 찾았다. 그러나 조 기자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표현을 ‘이제 치유를 얘기할 때’로 바꾸라는 지시까지 수용할 수 없었다.

MBC ‘2580’ 취재·영상기자들은 14일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조 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동 입장을 내고 “조 국장은 올해 초 시사제작국장으로 보임한 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정치세력을 의식한 행보를 계속해왔다”며 “세월호 사건 만이 아니라 그들이 탐탁지 않아 할 아이템들은 여지없이 불허했고, 그나마 통과한 기사들은 끊임없이 검열하며 표현의 수정과 인터뷰 삭제를 요구해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오로지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기자의 입에서 ‘진실’이란 단어를 빼앗기 위해 조 국장은 안간힘을 썼고, ‘진실’을 빼앗길 수 없다고 했던 담당기자의 징계를 건의했다”며 “‘진실’을 두려워하면서 ‘진실’을 추구하는 시사프로그램을 책임지겠다는 것인데 웃음이 나오지 않는 희대의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MBC 사측은 조의명 기자에게만 오는 17일 인사위 개최를 통보한 상태다. 사측은 “조 기자가 담당 국장과 부장이 협의해 데스킹이 완료된 기사에 대해 본인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데스크의 정상적인 업무상 지시를 불이행하고 제작을 거부했다”며 “취업규칙과 ‘MBC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조 기자는 인사위에 출석해 자신의 인사위 회부 사유에 대해 직접 소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디어오늘은 15일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조창호 국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국제전화를 하고 문자도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MBC에 또 징계 칼바람, 기자·PD들 대거 인사위 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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