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상업화, 규모화와 그 한계
1980년대 중반부터 개장된 거대한 도매시장과 1990년대 초반부터 문을 연 대형할인점, 백화점, SSM 등 대형소매점들은 크고 화려했지만 농가가 직접 농산물을 파는 일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농산물의 거래 방식도 대규모 정기적 거래로 전환되고, 소포장, 가공품의 비중이 확대되어, 대다수 소규모 농민들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되었다. 수급의 불안정으로 인한 가격의 등락 시 모든 피해는 협상력이 부족한 농가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이들 대형유통업체의 유통시장 점유율은 정부에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고 영업제한 조치를 취할 만큼 급격히 증가, 농민들의 시장진입은 더욱 요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농촌문제의 핵심도 더 이상 농지문제가 아니라 시장을 발견하는 유통의 문제로 전이되었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전업농의 규모화를 통해 농업생산의 경쟁력을 높이려 했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영농규모 상위 농가에 대한 지원확대에도 불구하고 일부품목을 제외한 농가의 생산규모화는 극히 미진한 편이다. 이러한 한계에 직면하여 생산자들 스스로 소비지시장에서 요구되는 정기적 대량거래를 충족하기 위해 작목반, 영농법인을 조직하고, 정부에서도 생산과 식자재 구매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가공 및 유통인프라의 구축 지원에 나섰다. 그 결과, 2005년 작목반은 16950개, 2010년 영농조합법인은 8107개, 농업회사법인은 1633개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그 규모가 영세하여 시장변화에 따른 대규모 정기적 수요에 적응하기에 부족하다. 소비지에서도 대규모시장의 소비자 소외에 대처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생활협동조합을 조직, 계약생산을 통해 산지와 소비지 간의 직거래를 정착시키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시장규모가 작은 친환경농산물 시장에 머물러 있다.
도농 간의 소득격차의 확대는 농촌의 인구 감소에 중요한 요인이 되어 1995년 485만 명에 이르던 농가인구는 2014년 275만 명으로 연간 2.9%씩 감소하였다. 농가호수는 1995년 150만 호에서 2014년 112만 호로 줄어 연간 1.5%씩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농촌의 고령화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1990년 65세 고령농가의 비율이 11.5%에 머물렀으나 2013년에는 37.3%에 이르고 있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는 농촌지역의 출산 및 청소년의 감소로 이어져 학교의 과소화 및 통폐합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보육시설과 공적인 의료시설이 부족해 교육 및 보육, 의료의 불평등과 도농의 문화격차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농촌 문제의 해결은 계약과 협동의 확대로
첫째, 소비지의 대형 농식품 유통시대에 맞추어 농업인들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산지유통의 규모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농가와 소비자에게 유리한 협동조합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대규모 기업농과 다국적 유통기업 주도의 미국방식보다 유럽의 협동조합방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계약생산체제에서 농가와 수직적으로 결합된 기업형 수직결합조직은 회사의 불공정거래행위, 불평등 계약으로 인한 마찰 등에서 밝혀지듯이 그 한계성이 뚜렷하다. 유럽의 네덜란드와 덴마크, 뉴질랜드의 경우, 대규모 품목협동조합이 농식품의 가공・유통을 주도해 다국적 기업에 맞서 자국의 생산자 보호는 물론, 농식품 산업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셋째, 소규모 친환경 농가들을 위한 생협, 로컬푸드 직매장과 직거래장터, 꾸러미, 전자직거래 등 대안적 직거래 유통구조를 확대해 농가의 소득을 향상시키고 안전한 먹거리의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농가는 직거래를 통해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고 있고,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이들 신유통경로를 이용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물리적・사회적 거리인 푸드 마일, 즉 먹을거리의 이동 거리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통단계인 사회적 거리 또한 매우 짧다. 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판매하며, 지역의 환경, 토양, 사회 등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농업 생산이 이루어지고 농산물의 판매도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꾸러미(CSA)는 로컬푸드의 한 유형이자 대안적 형태의 식품네트워크로 일본과 독일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성장하다가 최근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새로운 유통형태다. 농산물을 매개로 농가와 소비자 간 직거래를 하며 농사과정의 경제적 위험을 소비자가 함께 나누고, 소비자는 작물의 선택과 농사일 등에 보다 많은 관여를 하거나 수확물을 제공받게 되는 형태이다.
넷째, 국가 식량계획을 수립하고 국민식생활 교육을 강화해 적정수준의 식량생산을 유지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하며, 국민 건강을 지켜나가야 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세계의 식량생산이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어 적정수준의 곡물생산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변화, 기후변화, 소비자 식생활의 패턴 변화, 생산변화, 지역농업구조 변화 등을 예측하고 이에 따른 대응 전략과 정책개발을 위해 국가식량계획의 수립은 더욱 절실하며. 특히 북한의 만성적 식량불안을 고려, 통일시대를 대비한 안정적 식량공급을 위한 사전준비가 절실하다. 식생활의 패턴 변화에 따라 쌀과 곡물의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육류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식량자급률의 제고를 위해 사료용 곡물의 생산을 확대하고 벼의 사료작물 대체, 직파와 이모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
다섯째, 농촌의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주거・교육・문화・보건 등을 개선하여 도농의 정주권 격차를 줄이고 환경과 국토를 보전하며 지역균형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농가소득의 침체와 농촌인구의 감소, 고령화 등으로 인해 농촌지역 공동체는 해체되어 가고 있으며 소득격차와 지역 간 불균형도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이 농촌의 복지정책보다는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정책에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농촌은 복지혜택에서 소외되어 열악한 복지, 문화, 교육, 의료 수준을 감내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주거환경 개선 및 공공서비스 등의 복지증진을 통해 생활기반 여건을 조성하고, 농어촌 학교에 대한 지원을 통해 지역문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여,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야 한다. 농어촌에 근무하는 교원의 임용과 근무조건의 개선, 작은 학교 작은 교실 등의 혁신적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창의력과 인성개발에 중점을 두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농어촌 지역의 공공시설(복지관, 면사무소, 마을회관 등)을 활용하여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지역아동센터 및 어린이집의 접근성 제고와 방과후 보육서비스 제공을 통해 아이들 키우기 좋은 농촌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어르신 주치의제 실시 및 의료생협, 마을 건강센터, 농어촌 보건소 등의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고 농촌의 문화공간을 확대하여 떠나가는 농촌이 아닌 돌아오는 농촌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 연재
1. 총론 :
촛불 시민혁명과 주권자 시민의 탄생, 그리고 민주·평등·공공성의 민주공화국
2. 정치 개혁 :
④ 민주주의의 기반 언론: 공공성 강화하고 시민의 공론장 참여 확대해야
3. 외교·안보:
4. 시민교육
②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초중등 교육 패러다임으로 교육복지를 실현해야
5. 차별철폐와 인권
6. 공공적 민주경제
7. 생태안전사회
③ 무한경쟁 시대의 농업, 계약과 협동을 통해 살만한 농촌 건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