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선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후보를 포함한 보수 세력을 비판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글은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국장이 지난 10일 자신의 블로그 등에 게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구 사장은 “예전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바뀌고, 대선 국면에서 보수 표를 빠르게 흡수하는 것을 보고 사실 경악했다”며 “국정농단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이 오히려 색깔론을 들먹이며 큰소리를 치는 현실이 참 암담했다. 한국 사회 꼴통 본색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회칼로 나라를 아작 낸’ 당사자들에게 한 가닥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구 사장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에 성원을 보내는 것을 두고 ‘계급투표 배반’이니 ‘분단이 낳은 비극’이니 하는 표현들이 등장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본다”며 “서구식 분석 잣대로 본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는 그런 식으로 쉽게 풀어헤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뿌리 깊은 유교 문화는 인간과 인간이 다층적인 차원에서 끈적끈적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이는 서구식 합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잘난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정서도 생기고 행색은 소시민이지만 정치의식은 거대 담론을 지향하는 경향도 강하고. 한마디로 복잡하다”고 말했다.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주완 블로그
▲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 사진=김주완 블로그
구 사장은 “명확한 결론은 어떤 큰 문제가 터지더라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낙동강 오리알’ 되는 일이 더 빈번하기에 이런 무책임은 당연한 문화가 되고 있다. 홍(준표 전 후보)이 대선에서 한껏 행패를 부린 것도 이같은 역사적 축적 덕분(?)이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구 사장은 대선 과정에서 보수 인사들이 보인 수구적 행태를 비판했다. 구 사장은 익명의 인물을 거론하며 “○○○은 제가 알기로 상당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한 뒤 “정당인이라는 한계를 인정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나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새누리당 분당 과정에서, 홍이 주자로 나서는 대선 국면에서 목을 놓아 ‘자유대한 수호’니 ‘좌파 척결’이니 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지르는 걸 보니 무섭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구 사장은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사천·남해·하동 선거구 조직위원장(당협위원장)에 선임돼 홍 전 후보 선거 운동을 벌인 김재철 전 MBC 사장을 겨냥해서도 “빨간 옷 입은 사람들 중엔 저를 놀라게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며 “그중에서도 백미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이었다. 추레한 몰골로 홍준표 뒤에 서서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측은한지”라고 비판했다.

지난 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에 등장한 김재철 전 MBC 사장(위 사진 동그라미).
지난 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에 등장한 김재철 전 MBC 사장(위 사진 동그라미).
구 사장은 사원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그는 “9년간 우리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무슨 선물궤짝이 통째로 굴러들어올 일은 만무하다”며 “굳이 기대를 하자면 홍준표 똘마니들이 장악하고 있는 도정이 하루 빨리 정상화돼 경남도민일보가 받고 있는 불이익과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선 과정에서 홍준표가 우리를 비롯한 많은 단체에 지원을 끊은 것을 놓고 ‘좌파 세력 배제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을 보았다”며 “한마디로 얼척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구 사장은 “새 세상에서는 또다시 ‘잘 해먹던 놈’이 더 설치는 법”이라며 “구설에 휘말리지 않고 묵묵히 우리 길을 가면 그뿐이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는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겠지만 없는 말도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진심도 오해를 피할 순 없다. 다들 조심하시기 바란다”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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