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세월호·국정농단 은폐 의혹 조사 지시

문재인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사건’부터 불거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종료 등에 대한 진상 조사를 조국 신임 민정수석에게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참모진과 오찬 자리에서 조국 수석에게 “국민은 그동안 세월호 특조위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끝났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다시 좀 조사됐으면 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가 기간이 연장되지 못한 채 검찰 수사로 넘어간 부분도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그런 부분들이 검찰에서 좀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조 수석은 “법률 개정 전이라도 할 수 있는데, 되도록 해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출발이 정윤회 (문건) 사건이었는데 진실이 은폐됐고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조사와 수사를) 잘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테니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태 파악을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세월호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을 못 했는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들여다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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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언급과 관련, 조 수석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농단 사건 당시 민정수석이던 우병우 전 수석이 국정농단 사건의 발단이 됐던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를 고의적으로 덮게 하거나 수사에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 확인해 보라는 뜻”이라며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 민정에서 충분히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칫 민정수석실의 검찰 수사 개입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조 수석은 “최순실 등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를 지시한 게 아니라 우 전 수석 문제 등 사건의 근본 원인이 규명돼야 이후 수사가 제대로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반발하는 야당과 보수언론

그러나 야당과 보수 언론들은 곧바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준길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에게 한 첫 지시가 국정농단과 세월호에 대한 엄정 수사”라며 “두렵다. 횃불로 보수를 불태우고 궤멸시키고 20년 장기집권을 하겠다는 것이 진의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도 “민정수석 ‘검찰 지휘 안한다’ 3시간 뒤… 文대통령 ‘제대로 수사’”, “‘국정농단’ 추가 수사, 우병우와 대기업 겨냥한 듯”, “盧 前대통령 수사 그리고 비극… 文대통령·검찰의 악연”, “국회·검찰·감사원·해수부·특조위 조사 끝난 ‘세월호’ 다시 꺼냈다” 등의 보도를 쏟아내며 비판적 논조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세월호 사고 조사는 특별조사위원회 조사를 마치고 선체 조사 단계까지 가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도 검찰→특검→검찰로 이어지며 수사할 만큼 했다. 관련자들도 다 기소됐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더 수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조 수석의 ‘재수사나 재조사 지시는 아니다’는 해명에도 “민정수석 임명 첫날부터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지시하고 개입한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규정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검사들 비리까지 수사하는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다”며 “대통령과 검찰의 공생 관계를 완전히 끊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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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임명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까지 하면서 수사했는데도 미진하다는 대통령과 민정수석의 반응에 사표를 내지 않을 검찰총장은 없을 듯하다”며 검찰 측 입장을 대변했다. 동아일보 역시 “문 대통령도 조 수석도 검찰 개혁은 강력히 추진하되 검찰 수사는 놓아두라.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라고 강조하며 문 대통령의 발언을 검찰 수사 개입으로 봤다.

조국 임명되자 김수남 검찰총장 사의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을 임명하면서 검찰 개혁의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는 건 언론의 공통적 평가다.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하면서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를 차단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조 수석도 “검찰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공수처 설치”라며 “이는 검찰의 기소 독점을 깨뜨리고, 국회 통제를 받는 새로운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저서 등에서 주장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와 가족의 범죄를 수사하는 독립 수사기구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범죄를 기소하지 않아도 되는 권한(기소편의)이 있고 유일한 기소 기구라는 점(기소독점)을 이용해 권력형 비리를 덮어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법조계 관계자들은 ‘검찰의 사건 은폐를 막기 위해 복수의 수사·기소 기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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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발의된 공수처 설치법안을 보면 수사 대상은 대통령,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국회의원, 국무총리,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장관급 장교 등과 가족이다. 경찰이나 검찰이 공수처의 수사와 중복된 수사를 할 경우 사건을 공수처로 이관해야 한다.

검찰의 권한인 수사권을 경찰에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독점해 온 수사·기소권을 분리해 경찰에 수사, 검찰에 기소를 맡기겠다는 구상이다. 검찰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검찰이 수사권 독점을 이용해 사건을 덮는다고 지적하면서 그 수사권을 경찰에 독점시킨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수처나 수사권 조정은 국민이 원하는 ‘검찰의 공정성’ 회복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조국 민정수석 임명 당일 사의를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 개혁에 대한 무언의 의사표시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수사도 마무리됐고 대통령 선거도 무사히 종료돼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으므로 소임을 마쳤다고 생각돼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검찰 개혁 논의가 활발한 상황이어서 검찰 조직을 위한 항의의 의사표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조국 민정수석의 임명으로 가시화된 검찰개혁을 김 총장이 정면으로 막을 수는 없어도 검찰 개혁 시 적어도 조직이 흔들릴 만큼의 선은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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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가족 고액체납 사과와 폴리페서 논란

한편 조국 수석은 어머니 박정숙씨(80)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경남 창원시 웅동학원의 세금 체납 사실이 드러나자 세금 납부 의사를 밝히며 즉각 사과했다.

웅동학원은 지난해 10월 경상남도가 공개한 ‘지방세 고액 상습체납자 명단 공고문’에 2013년 재산세 등 총 2건에 걸쳐 2100만원을 체납한 것으로 나와 있다. 웅동학원은 조 수석의 아버지인 고 조변현씨가 1985년부터 이사장을 맡았고, 2010년 이후에는 어머니 박정숙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조 수석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도 이사진에 포함돼 있다.

논란이 일자 조 수석은 “모친의 체납 사실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드리며, 지금이라도 바로 납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는 조국 교수의 과거 발언을 두고 폴리페서 논란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첫 민정수석에 임명되자, 서울대 내부에선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참여 교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며 “조 교수는 2008년 총선 당시 동료 교수가 공천을 받고 서울대에 휴직을 신청하자 ‘교수 1명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 네 교수가 1년짜리 안식년을 반납해야 한다’고 공개 비판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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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도 “안식년 중이라 학사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조 신임 수석 입장이지만, 대선 당일까지도 스스로가 전업 정치인 진출 가능성을 일축해 왔다는 점에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면서 “‘학자로 남겠다’던 그 동안의 수차례 선언을 한 순간에 뒤집었다는 비판에다 고위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말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었던 기존 폴리페서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라고 꼬집었다.

조 수석은 대선 당일인 9일 오전 자신의 SNS에서 “학인(學人)으로서 삶을 사랑하는 제가 ‘직업정치인’이 될 리는 만무하다”고 한 바 있다. 2008년 4월에는 동료교수 79명과 함께 서울대 총장에게 제출한 ‘폴리페서 윤리규정’ 건의문을 통해 현직 교수의 선출직 출마 및 정무직 임용으로 학사일정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강력 비판했다.

반면 조 수석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한국일보는 “직업 정치인으로 변신을 하는 교수들을 일관되게 비판을 해왔지만 교수의 정치적 의사표현, 정치 활동에는 긍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점, 청와대 수석이라는 자리가 선출직인 ‘직업 정치인’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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