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은 사실(Fact)에 기초하여 보도하고 칼럼을 작성한다. 소설가는 상상과 허구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지만 언론인은 사실과 그 사실을 토대로 한 분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따라서 언론인이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관적 상상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할 때 그 위험은 사회전체의 재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선거철에 특정후보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정치적 칼럼을 작성한다는 것은 특정정치세력과 연계되거나 교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부를 수 있다. 더구나 ‘경고’ 제재를 받을 정도의 문제 칼럼을 감히 내보낼 때는 그 동기의 순수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정책 탓에 전쟁위기가 닥치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을 기반으로 작성된 중앙일보 칼럼(4월13일자 이정재의 시시각각 ‘한달 후 대한민국’, 4월20일자  이정재의 시시각각 ‘3주후 대한민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와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최근 중앙일보 논설위원 칼럼 ‘이정재의 시시각각’의 ‘한달 후 대한민국’과 ‘3주후 대한민국’에 각각 경고 제재를 내렸다고 한다.

칼럼니스트에게 경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효적 제재수단이 되지 못하니 사실상 멋대로 상상을 기반으로 특정후보를 편들거나 폄하하는 식이 무한 허용되는 셈이다. 유력후보가 감히 소송까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설혹 소송하더라도 ‘언론자유’를 내세우면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언론인의 상상은 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범죄행위에 가깝다. 또한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메시지를 정리하기 때문에 제멋대로의 상상으로 정치적 글을 쓸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는 반면 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유권자의 혼란과 사회갈등을 확대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 4월13일자 중앙일보 칼럼 이정재의 시시각각 ‘한달 후 대한민국’
▲ 4월13일자 중앙일보 칼럼 이정재의 시시각각 ‘한달 후 대한민국’
이정재의 칼럼은 대통령이 된 문 후보가 안보문제나 국내 소요사태에 얼마나 형편없는 대응을 하는가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그를 뽑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4월13일 게재된 칼럼 ‘한 달 후 대한민국’은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가정하며 “전쟁 위기에 처하지만 문 후보는 허둥지둥댄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상상만으로 고약한 상황을 가정하여 문 후보의 안보능력을 문제삼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의 '상상칼럼'을 두 번에 걸쳐 반복한다는 것은 의도된 정치적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며 명백한 정치개입이다.

이 칼럼에서 그는 심지어 문 후보가 “대응사격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자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사표를 낸다“며 ”나라는 절체절명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재인의 청와대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분노를 터뜨릴 뿐이었다”고 묘사한다. 중앙일보 같은 대형 언론사에서 이런 수준 이하의 칼럼을 반복적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동아일보 최영해 논설위원은 2013년 9월17일자 “채동욱 아버지 前上書”라는 제목으로 상상과 허구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에 뛰어들었다. 당시 혼외자 여부가 논란이 됐을 때 아들로 상상하여 아버지 채동욱의 부도덕함과 거짓말을 고발했다. 물론 그는 “아이의 입장에서 쓴 창작물”이라고 칼럼 말미에 소개했지만 아동의 인권을 짓밟고 정치적 희생양이 된 채 전총장 가정에 두 번 세 번 돌팔매짓을 했다.

그가 그 칼럼으로 무슨 법적 제재를 받았던가. 형식적인 경고조차 없이 계속 위험한 칼을 휘두르고 있다. 중앙, 동아일보의 칼럼처럼 조선일보의 사설과 칼럼도 우려스럽다.

▲ 2013년 9월17일자 동아일보 칼럼 “채동욱 아버지 前上書”
▲ 2013년 9월17일자 동아일보 칼럼 “채동욱 아버지 前上書”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대선 후 정치권력이 바뀌었을 때 조중동이 어떤 형태의 보도를 할 것인가다. 잊어서는 안된다. 상상과 허구, 침소봉대의 왜곡, 본말전도식 보도로 집권 첫날부터 노무현 정권을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사실을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3년 2월25일자에 동아는 “노, 당선 기여한 매체 외엔 부정적”이란 제목으로 고춧가루를 뿌렸다. 같은날 조선일보도 “노무현식 언론개혁” “이름만 바꾼 대북정책” 등 4건의 부정적 기사로 취임식날부터 포문을 열었다. 대통령이란 직책을 붙이지도 않았고 집권 초기 100일 밀월관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중앙일보 역시 취임식날 ‘문창극 칼럼’을 통해 “취임식날 이 아침에”라는 칼럼으로 불편한 심기를 노골화했다. 비판, 비아냥류의 기사는 취임식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 확대재생산됐다.

취임 이후 50여일간 노 정권을 가장 비난하며 공격을 많이 한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관련 사설 35건중 21 건이 비판적인 논조였다. 그 다음은 37건 중 19건을 게재한 조선일보였으며 중앙일보(13/35)가 뒤를 이었다.(2003년 4월호 ‘신문과 방송’ 참조)

모바일 시대에도 조중동의 사설과 칼럼은 여전히 SNS를 타고 영향력이 막강하다. 벌써부터 상상과 허구로 특정후보를 흠집내는데 앞장서는 모습은 취임후가 더 걱정이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가 파면됐을 때 이미 승부는 끝나 있었다.

섣부른 관용과 어설픈 언론대응책은 제대로 된 언론자유도 확립하지 못하고 언론권력화한 정치집단을 제자리에 돌려놓지도 못할 것이다. 해방이후 정치권력과 결탁한 언론권력에 대한 ‘제자리 찾기’ 노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집단 내에 정치권력과 결탁하려는 기회주의자들만 양산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었다.

언론자유의 미명하에 상상과 허구로 펜과 입을 함부로 놀리며 정치권과 결탁한 인사들에 대한 분명한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 집권후 언론대응책을 미리 마련해두지 않으면 북한이 아닌 조중동의 파상공세에 허둥지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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