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납득할 수 없는 대형사고를 치고 ‘실수’라고 사과했다. 본부장의 사과에 이어 사장까지 나서서 거듭 사과했다. 그런데 사과 내용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을만큼 형편없는데 이를 믿어달라고 한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기상천외한 주장을 해서 유력후보를 곤경에 빠트리고, 선거판을 뒤흔드는 사고를 치고 해명이라고 내놓은 이유를 보면 한가롭기 짝이 없다. 하나씩 따져보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시점을 두고 거래를 한 것처럼 보도한 SBS 뉴스는, 보도의 기대효과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는 것은 뉴스 소비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부도덕한 검은 거래의 당사자로 낙인찍힌 유력후보는 경쟁캠프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SBS 보도 이후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2일 SBS 8뉴스 보도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2일 SBS 8뉴스 보도

SBS 박정훈 사장은 담화문에서 “세월호 인양과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 제목을 달고 함량 미달의 보도가 전파를 타고 말았다”고 사과했다. 또한 박 사장은 “확인 결과 기사내용의 부실함 뿐 아니라, 이를 방송 전에 확인하고 검증해야 하는 게이트키핑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채 기사 작성의 기본인 당사자들의 사실 확인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관련기사 :  SBS 사장 “함량미달 보도, 진상조사할 것”]

이 해명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이미 해수부 7급 공무원이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전했다고 했고, 그 취재원의 말을 바탕으로 뉴스를 내보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게이트 키핑이 제대로 안됐다는 해명도 보도본부장이 한 사과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 정치적 외압도 어떤 의도도 없다는 SBS의 해명을 저널리즘 차원에서 한번 살펴보자.

첫째, 기자는 취재원의 말을 무조건 기사화하지는 않는다.

SBS 취재기자가 해수부 7급 직원의 말이라고 모두 기사화 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이다. 아마 어떤 형태로든 뉴스가 된다고 판단해서 뉴스에 인용했을 것이다. 취채기자가 어떤 의도로 그런 ‘허접한 주장’을 뉴스에 인용하려 했는지 의문이다. 왜냐면 세월호 사건에서 문 후보가 그런 정치적 거래를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취재원의 말을 모두 기사화하지도, 믿지도 앉는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소위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있다. 취재기자의 뉴스를 한번 더 점검하고 반론을 보장하거나 부족한 취재를 더 하도록 해당 부서 부장이 이런 일을 한다.

둘째, '게이트 키퍼' 부장이 누구며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취재기자가 자신이 취재한 것과 실제로 보도된 뉴스가 다르다고 반발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책임자는 바로 ‘게이트 키퍼’인 해당 부장이다. 어느 부장이 어떤 의도로, 뉴스의 어느 부분을 보고 ‘거래’로 발전시켰는지를 밝혀야 한다. 막연하게 ‘게이트 키핑’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선거철에 언론의 ‘치고빠지기’식의 계산된 오보는 일부 한국 언론의 전통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때 선거패배후 “선거철만 되면 나를 빨갱이라고 하고 선거가 끝나면 미안하다고 하고...”라면서 그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2일 SBS 8뉴스 보도.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2일 SBS 8뉴스 보도.
선거를 목전에 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을 부장이나 국장선에서 마치 정치적 거래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SBS 보도형식을 빌리자면 ‘SBS 간부 일각에서 정치권과 거래를 한 의혹’으로 보인다.

저널리즘의 기본은 상식을 기반으로 한다. 매우 민감한 시기에 특정 후보를 불리하게 하고, 특정 후보를 유리하게 하는 보도를 하고 나서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풍경은 이미 낯설지 않다. 보다시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은 SBS 뉴스를 토대로 문재인 후보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SBS는 스스로 ‘보도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진상조사도 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신속과 진실이 생명인 언론기관에서 ‘게이트 키핑’ 운운하는 것은 너무 한가롭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1. 취재 기자의 원래 뉴스를 누가 어떤 식으로 마사지 했는지, SBS는 그 '주범'을 밝혀야 한다. 진상조사란 미명하에 세월을 죽이지 않기 바란다. 해당 부장이나 다른 간부가 정치권과 어떤 거래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방송사고가 일어날 수가 없다.

2. 사장의 사과가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가시적인 징계를 즉각적으로 내려야 한다.

이미 내부적으로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대신에 ‘게이트 키핑’ 시스템을 거론하며 모호하게 진상을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뉴스 대상이 된 당사자는 말할 수 없는 큰 피해로 어려움에 처했는데 그 '가해자' SBS는 사과정도만 하고 있다는 건 언어도단 아닌가.

3. 선거보도 준칙, 방송법, 언론중재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SBS 보도에 대해 사과의 강도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심층 시사보도로 신뢰받는 언론기관이었던 SBS가 이런 잘못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SBS 사장이나 본부장 등의 해명처럼 이번 보도가 정말 단순한 실수라면 즉각 관련자들에게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게이트 키핑이란 용어는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핑계거리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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