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사건은 죽어가던 박정희 신화의 관 뚜껑을 닫아버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인들, 특히 50대 이상의 많은 시니어 한국인들에게 신화적 존재, 구국의 영웅, 경제 대통령으로 골수 깊숙이 새겨져 왔던 듯하다.

오죽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이인제 전 의원도 대통령후보 지망과정에서 박정희 아바타의 모습을 재현했으랴.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북도지사는 집안에서 작명할 때 박정희 이름을 따서 희정(熙正)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봉건적 요소가 작동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그 신화는 거의 끝났다.

현재 여러 대통령 후보자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남녀 동수의 내각과 같은 여성 대표성 확대나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등을 실천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얘기하고 있다.

▲ 지난 3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씨에 대한 탄핵 인용을 선고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 3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씨에 대한 탄핵 인용을 선고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여성주의적 가치를 모르는 대통령이 성평등 사회를 이룰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주의 대통령 논쟁을 끝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여성주의적 대통령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 대통령후보 공약집에 나눔, 배려, 돌봄, 소통, 협력이라는 여성주의를 포함한 많은 진보적 가치를 담은 공약을 채웠다. 생애주기별 복지정책, 경제민주화, 백퍼센트 국민통합, 차별 없는 세상 등이 대표적이었다. 거짓공약은 2017년 3월10일 대통령 파면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다. 이미 취임 직후부터 공약 무시하기가 시작되었다. 대통령 취임사를 하자마자 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를 화려한 외관과 육영수 어머니와 같은 미소로 치장하며 과시했다. 각종 복지 공약, 나눔과 배려, 소통과 협력의 가치를 거슬러 선택과 차별, 불통과 감시 등의 정치공학적 방법을 구사하며 4년간 국민을 지배하려 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여성혐오, 남성혐오, 각종 혐오주의 담론이 생산되었다. 물론 여성혐오, 여성무시의 태도와 인식은 가부장제사회가 형성되면서 그 기저에 작동되어온 적폐이다. 그러나 여성혐오적 담론과 인식은 여성 복지 담론이 회자되면서 본격적으로 작동해왔다.

여성혐오주의 의식의 기저에는 남성 특권 발상,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타자화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다. 여성을 억압하고 배제하며 부차화 시켜온 가부장적 남성사회 구조를 당연시 여겨온, 그간의 인식을 파열시키는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주의 인식이 최근 몇 년간 트렌드가 되었다.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여성들이 약자연하며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데 반해 청년 남성들이 역차별당하며 군가산점제도도 잃어버리고 남성성을 마초로 간주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사회적 심리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성혐오 대 여혐 혐오의 갈등은 무기만 들지 않았지, 실로 언어폭력의 전쟁 수준이다.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 묻지마 살인사건 즈음하여 절정에 이르렀다. 살인사건의 원인으로서의 여성혐오냐 아니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 지난 2016년 6월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열린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여성 혐오세상을 뒤엎자' 집회에 참석한 여성단체 회원이 여성 혐오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 2016년 6월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열린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여성 혐오세상을 뒤엎자' 집회에 참석한 여성단체 회원이 여성 혐오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정부는 여성혐오 논쟁을 남녀의 문제, 개인들의 싸움으로 방치했다. 정부는 선심성 여성정책을 펴내 여성주의적 가치를 공고히 한 듯 포장했다. 예로 서울지하철이 운영하는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을 보자. 임신부 배려석을 당당하게 앉으려면 산모수첩을 내밀어야 한다. 노약자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부 배려석을 만드는 이유는 임신부와 노인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라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임신부 배려석은 노인과 임신부 간의 제도적 분리주의를 통해 일시적으로는 싸움을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정한 배려 정신은 공유하지 못한 형식적 배려만을 앞세우는 것은 ‘위선’이 될 수밖에 없고, 역차별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여성혐오를 부추기기도 한다.

나눔, 배려, 돌봄, 소통, 협력과 같은 여성주의적 가치는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가치이다. 이는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정글 속의 강자만이 생존할 수 있게 한다면 종국에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속에서 우리 사회는 북핵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흙수저·금수저의 대물림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를 혁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주의적 가치, 즉 배려와 공감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절박하다. 모든 구성원들의 인권과 행복, 안전을 제1의 가치로 두고 있다면, 그 사회의 약자의 인권과 행복, 안전을 우선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주의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과 법제도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제정되고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저건 신포도야

한국 사회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2015년 성불평등지수(GII, Gender Inequality Index, 남성 대비 여성 인적자원의 손실을 측정.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에 따르면 한국이 155개국 중 23위로 중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성불평등지수는 경제활동참여율, 중등교육 이상의 비율. 여성의원의 비율 등이 높을수록, 청소년출산율과 모성사망비가 낮을수록 성평등 수준이 높아진다. 실제로 여성의 대학진학율이나 모성사망비, 기대여명 등을 포함한 건강권은 세계적 수준이다.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 중 유독 낮은 것은 여성의원의 비율이 낮거나 기업이나 사회적 의사결정권 지위가 낮은 것 정도이다.

그런데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6년 성별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에 따르면 144개국 중 116위이다. 어찌 된 일일까? 핵심은 간단하다. 성불평등지수가 한국에 유리한 지표들을 중심으로 측정된 것이라면, 성별격차지수는 실질적인 조건의 결과를 본다. 예컨대 단순한 경제활동참여율이 아니라, 노동력 참여비율, 유사업무의 성별 임금, 소득, 국회의원 비율만이 아니라, 고위공직자, 기업의 관리직, 전문직 등을 포함하여 측정한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학교 졸업 후 사회 입직 초기 조건만 보는 게 아니라, 입직 후 승진을 포함한 노동조건, 사회적 지위를 따져본 결과이다.

헌법이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남녀고용평등법), ‘양성평등기본법’(2015년 7월1일자 시행) 어디에도 유리천장을 말하는 조항이 없다. 제대로 승진해 보기도 전에 사실상 30대 초, 중반이 되면 퇴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피해 당사자들의 무능 때문인가? 박근혜 정부는 생애주기별 복지정책을 취하겠다고 하고,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대책, 여성을 위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를 소리 높여 홍보했으나 4년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적극적 조치들은 있으나 신포도일 뿐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노동현장에서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현존하는 남녀 간의 고용차별을 없애거나 고용평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특정 성을 우대하는 조치(같은 법 제2조 3항)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 성차별 등 불평등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 제37조 ① 사업주가 제11조를 위반하여 근로자의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하거나 여성 근로자의 혼인, 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나, 2016년 3월에는 창사 60년의 금복주 기업에서 결혼퇴직을 강요한 사건이 있었다. 벌금 3천만 원보다 경력직 여성을 자르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평등감독관제도는 눈뜨고 자고 있다. 엄중한 처벌이나 성평등 가버넌스의 감시 감독이 일상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교육은 사랑과 배려, 공감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으로

성희롱·성폭력예방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실시된 지 20년이 되어 간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시작하여 2000년대 들어 초중고에서 성교육을 연간 10시간 이상으로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학생 성폭력예방교육으로 실시된 피임과 낙태교육은 성교육의 가치를 완전히 도구화하는 데서 끝났다. 그 결과는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이 성폭력 적폐의 온상이 된 듯한 양상이다.

성교육의 의무화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잘못 잡힌 번지수는 바로 잡혀야 한다. 우선 성교육하는 목표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과연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콘돔이나 피임교육, 사후 낙태 등과 같은 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성폭력이 생기겠는가? 성에 대한 인식이야 의당 필요하다. 더 시급한 것은 인간 존엄성, 사랑과 배려의 가치, 인권과 평화 실현의 방법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와 같은 서열화된 직업, 학교, 점수가 중시되는 사회,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어찌 인간의 존엄성이나 평등성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학생보다 교사의 재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현재 교사들은 대체로 과거의 경쟁과 서열 중심적 교육, 점수와 성공, 돈과 권력이 우선시되는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다. 다시 말해 인간화교육이 부재된 교육 또는 형식주의적, 교과적 중심교육을 끊어내는 교육정책이 시급하다. 또한 직장, 군대를 비롯한 사회 전반적 성희롱·성폭력예방에 있어서도 직위 불문하고 재교육이 필요하다. 입사 및 승진에 있어서도 성희롱·성폭력예방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나아가 학교와 사회에서 성교육이 제대로 되더라도 가정이 불평등과 차별, 폭력의 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배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캠페인과 함께 사회복지를 통한 가족관계의 평등이 지원되어야 한다.

▲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2016년 12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올해 마지막 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소녀상이 시민들에 의해 따뜻하게 옷을 입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2016년 12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올해 마지막 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소녀상이 시민들에 의해 따뜻하게 옷을 입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성평등의 실현을 위한 시금석: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가 합의한 일본군‘위안부’약속은 원천적 무효다. 그야말로 양 정부는 25년간의 일본군 ‘위안부’ 해결을 위한 여성과 시민사회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수많은 문제가 있다. 아베 정권은 위안부 동원에 있어서 공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위안부를 성노예로 인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진실 규명은 전혀 풀리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은 진실 규명에는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희망과 노력에는 아랑곳없이 정부 임의대로 문제를 종결지어 버렸다.

새로운 대통령은 잘못 합의된 한일 문제를 재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주권국의 원수로서 찾아나가야 한다. 제대로 풀리지 않는 문제는 한번은 억누를 수 있다고 해도, 조만간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더 이상 왜곡되고 은폐된 과거사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 연재

1. 총론 :

촛불 시민혁명과 주권자 시민의 탄생, 그리고 민주·평등·공공성의 민주공화국

2. 정치 개혁 :

촛불 광장이 요구하는 정부와 의회의 민주적 개혁

권력기구 분권화 없이 민주주의 회복은 불가능

지방자치 혁신 없이 참 민주주의 실현 없다

민주주의의 기반 언론: 공공성 강화하고 시민의 공론장 참여 확대해야

3. 외교·안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정책적 제언

4. 시민교육

① 신자유주의 지배구조에서 공공적 자치구조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초중등 교육 패러다임으로 교육복지를 실현해야

대학과 나라를 살리는 새로운 대학체제

100만 명의 학교 노동자 문제, 이렇게 해결하자

5. 차별철폐와 인권

①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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