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제19대 대통령 선거 언론보도와 관련해 연속 칼럼을 게재합니다. 이번 칼럼 연재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저널리즘학 연구회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목전이다. 현실에 지친 시민에게 대선은 고구마 현실을 표심에 담는 정치적 과정이면서 동시에 저마다 품고 있는 기대를 담아내는 희망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민심천심을 통해 사이다 미래를 디자인하고 설계해 나가는 신성하고 엄숙한 과정과 실천의 장이어야 한다. 그 과정과 실천을 숙성시키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며 도구로서 대선보도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한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무늬만 뉴스일 뿐, 보도의 기준과 원칙을 충족치 못한 함량 미달의 보도가 난무하고, 대선보도의 역할과 책임성을 도외시한 보도가 한 둘이 아니다. 창궐하는 ‘가짜뉴스(fake news)’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온라인 매개 언론과 주류 신문언론과 심지어 공영방송에 이르기까지 낭패가 적지 않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양산한 뉴스가 종이와 전파 그리고 디지털과 모바일을 날개 삼아 2017년 장미의 여론 하늘을 유린했다. 대선(大選)이 대선(大煽) 보도로 잔뜩 얼룩져 버린 때문이다.

▲ 5월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19대 대선 후보 마지막 TV토론회에 앞서 문재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5월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19대 대선 후보 마지막 TV토론회에 앞서 문재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여론조사보도는 선정(煽情) 보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여론다큐를 빙자한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여론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만들기 위한 조사가 아닌가 하는 치명적인 비판과 지적이 쏟아졌다. 무엇을 위해, 왜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 없이 자행된 여론조사보도는 그러나 어느새 대선보도의 대표 브랜드로 둔갑했다. 여론조사 경마장에 내몰린 후보들은 하루하루 뒤바뀌는 숫자판에 일희일비 했고, 그에 따라 경마 투표권을 거머쥔 유권자들의 탄식도 부화뇌동이었다. 여론 경마전은 언론이 앞 다퉈 주관했고, 시합 순위 매기기는 여론조사기관 몫이었다. 감리 없이 진행된 시행사와 시공사의 국공합작으로 만든 부실 아파트 특별 분양에 세상이 들썩이는 형국이었다. 영혼 없이 수집한 수치의 과시에 휘둘린 ‘밴드왜건(bandwagon)’과 ‘언더독(underdog)’은 알 바 아니었고, 오리고 붙이고 덧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선의 모든 쟁점과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던 것이다.

여론조사보도가 획책하는 대선의 보도판 속에서 정책과 공약 검증을 바라는 일은 일종의 사치였다. 수박 겉핥기 보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단순 동정보도는 차고도 넘쳤다. 동서남북 종횡무진 홍길동 후보들의 동선 전달에 들인 시간과 지면은 미디어 풍요 속의 뉴스 빈곤을 절감케 했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요란을 떨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라의 장래와 비전 그리고 로드맵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책과 공약의 검증과 비교는 오롯이 유권자 셀프로 떠넘겨 졌고, 따라서 정치호사가가 뿜어 대는 현란한 마사지(massage)는 정책과 공약의 진정성을 철저히 농락했다. 저마다 ‘팩트보도’나 ‘팩트검증’ 코너를 두고 대선보도의 진정성을 소구하고자 했으나, 전체 판의 크기와 비중에 견주어 충분히 왜소하고 초라했다.

편파보도도 횡행했다. 방법은 대단히 졸렬했다. 공영방송에 드리워진 암울한 실상을 꼬집는 후보에게 공격과 복수로 응수하는 작태는 보는 이를 아연실색케 했다. 교묘하기도 했다. 특정 후보 취업 특혜 아이템에 연이어 우리 사회 청년 실업의 현황과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는 공영방송에 질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헴’하면 ‘어이쿠’하고 소스라치던 과거 영광에 도취된 오만으로 읽혔기에 오히려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공적 전파를 자기 입맛대로 양념을 치고 볶아 대는 공영방송에게 언론의 공공성과 공정성은 단가에 맞지 않는 ‘너무나’ 고가의 식재료였던 셈이다. 상황이 이 정도이니, 보도 내용의 공정성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 이면에 놀라우리만큼 공정한(?) 보도가 있었다. 기계적 형평성이다. 이 후보가 5초면, 저 후보도 5초……, 이 후보의 인터뷰를 따면, 저 후보도 같은 방식으로! 기계적 형평성만으로 공정보도를 사수하려는 듯 보였다. ‘객관적이기만 한 보도’를 ‘객관보도’로 오인하는 철부지 저널리즘만큼은 철저했다.

네거티브 보도는 언론 기피증을 절정에 달하게 했다. 대선보도를 관통하는 대단히 비중 있는 뉴스거리가 다름 아닌 네거티브였음이다. 상대 당이나 후보가 뿜어내는 네거티브는 어김없이 뉴스 아이템으로 환생했다. 네거티브를 찾아 산기슭을 오르내리는 뉴스 하이에나들의 천국이었다.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스스로 싸움 거간군로 돌변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며, 남의 집 불구경 하듯 즐기고 있었다. 배고픈 뉴스 하이에나를 대하는 캠프의 전략은 네거티브라는 썩은 고깃점 하나로 충분했다. 홍보로 포장된 프로파간다는 언제나 주효했으며, 그 효과는 정책이나 공약을 오히려 추월했다. 언론이 감시의 주체가 아니라 활용의 객체로 전락해 버린 역설이 빚어낸 촌극인 것이다. 이쯤 되니, 대선판이 홍보 기획과 메시지 관리 그리고 아젠다 설정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스핀닥터(spin doctor)에 의해 손쉽게 쥐락펴락 놀아나는 야바위 게임장이나 진배없었다.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5월2일 SBS 8뉴스 보도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5월2일 SBS 8뉴스 보도

5월2일 한 지상파방송사가 저질러 버린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오보는 결과적으로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가 돼 버렸다.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매의 눈’이 아니어도 오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더 문제다. 기자와 뉴스룸의 콜라보가 뉴스이기에 기자 개인의 역량과 자질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선뜻 납득되지 않는 가운데, 관행화 된 선정주의를 용의선상에 올려 보고자 한다. 사실과 사실의 관계로 차린 정성스런 다큐보도에 대한 의미부여나 가치보다는 세상과 사람의 이목을 끄는 드라마뉴스를 향한 무의식적 선호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실관계’, ‘보도 취지’, ‘기사 작성’, ‘편집 과정’, ‘책임 통감’, ‘게이트키핑’, ‘보도준칙’, ‘기사 삭제’,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거보도’……. 사과방송에 사용된 주요 키워드이다. 장황한 고무줄 사과방송에 사과는 없고, 핑계로 보이게 만드는 형용과 미사여구가 줄을 이었다. ‘보도의 기본도 지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보도 공정성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했다. 따가운 시선으로 질책해 달라. 책임 있는 모든 조처를 다하겠다.’ 사과가 충분조건은 되지 못함에도, 이해와 수긍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수 있도록 꾸려졌었어야 했다는 얘기다.

▲ 김동윤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김동윤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퀘렌시아(querencia)! 투우사와 혈전을 벌이다 쓰러질 만큼 지친 소가 숨을 몰아쉬며 에너지는 모으는 공간을 일컫는다. 현실 반영과 구성자로서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태도를 위한 성찰의 시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취재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저널리즘다운 저널리즘으로 승화될 수 있는 뉴스룸 문화는 요원한 것인가?! 투우의 퀘렌시아로 돌아가 무엇을 위한 뉴스이고, 어떤 가치를 구현할 저널리즘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디자인 궁극을 ‘사라지고 없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았던 스티브 잡스 선생이 남긴 교훈처럼, 품격 있는 대선보도 디자인 제1의 궁극은 선정 보도를 추방시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리라. 희망의 대선을 위해서, 아니 이 땅의 저널리즘을 지켜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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