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유세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조선일보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기사와 사설, 칼럼을 통해 문 후보를 맹렬히 비난했을 것이다. 단순히 비난하는데 그치지 않고 후보 사퇴를 요구하며 맹공을 퍼부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가정이지만 나름 근거가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자 사설에서 문 후보를 강도 높게 비난했는데 “대통령이 되면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언한 것이 이유였다. 이날 조선일보는 ‘문 후보는 아직 분이 덜 풀렸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노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한(恨)을 풀겠다는 것’ ‘다음 집권이 유력한 세력이 또 한풀이 보복을 하겠다고 공언’ ‘정치 보복을 노골적으로 시사’와 같은 거친 표현들을 사설에서 마구 쏟아냈다.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는 한 마디에 이렇게 발끈할 정도니 ‘지랄’ ‘집권하면 없애버린다’ ‘종편을 절반으로 줄이겠다’와 같은 욕설과 협박을 했다면 능히 그 비판의 강도가 어떨지 짐작이 된다. 물론 가정이지만 문 후보가 정말 이 같은 저급한 욕설·막말을 했다면 언론 비판은 물론이고 지지율 하락까지 감수해야 할 사안이다. 대선후보가 입에 올리기엔, 더구나 유세현장에서 유권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기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이미 12년 전 펴낸 자전적 에세이에서 대학생 시절 성폭력 범죄를 모의했다는 내용이 최근 알려져 대선후보 자격논란까지 제기된 인물이다. 성범죄를 집단으로 모의했던 자가 공당의 대선 후보 자격으로 국민 앞에 나선 것도 황당하지만 그런 자격미달 후보가 색깔론, 여성비하에 이어 ‘지랄’ ‘없애버린다’와 같은 막말까지 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자격미달’ 홍준표 후보가 입만 열면 막말·욕설·허위주장을 남발하고 있지만 언론의 검증과 비판은 제한적이면서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막말과 욕설·가짜뉴스의 진원지가 홍준표가 아니라 문재인 후보였다면 주류 언론이 지금과 같은 방관자적 자세를 보였을까.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발언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 후보를 향해 온갖 거친 언어를 쏟아냈던 조선일보는 왜 홍준표 후보를 향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인가. 홍준표 후보와 관련한 보도를 보고 있으면 한국 언론이 “앞으로 가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일부 언론이 ‘홍준표 막말’을 비판하면서 문재인 후보 발언을 동일선상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문 후보가 충남 공주 유세에서 “선거철이 되니 색깔론이 시끄럽다. 이제 국민들도 속지 않는다, 이X들아”라고 말한 것을 홍 후보의 막말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뒤 ‘대선 후보들의 막말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