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꾸준히 생각해온 질문입니다. 왜일까? 저도 몹시 궁금합니다. 제 결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론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건 정상 국가라면 대통령 퇴진감 아닙니까? 대명천지에 영토안에서 304명이 대기명령을 받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명도 못구했다? 도대체 어느 국민이 이런 정부를 신뢰하겠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구조부실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공동 연출자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기자가 블랙리스트 외압의 대표적 사례가 된 심정을 지난달 25일 미디어오늘과 서면인터뷰에서 털어놨다.

3년 전 참사 직후 다이빙벨을 구조현장에 투입-철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과 그 후 영화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벌어진 외압 의혹의 배후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 박영수 특검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 혐의(직권남용)로 기소했다. 김기춘 조윤선의 공소사실(특검 수사결과)과 이들에 대한 재판과정을 보면, 청와대가 얼마나 치밀하게 이 영화 한 편을 상영하지 못하게 했는지가 드러난다. 청와대와 정부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외대는 영화 '천안함프로젝트'와 '다이빙벨'에 대해 조직적인 압력을 행사했다. 아직 1심 재판이 진행중이므로 실체적 진실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특검수사 결과와 재판에서 출석한 증인들의 법정 증언을 들어보면 '정부비판' 영화를 청와대가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특검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014년 10월6일경 '다이빙벨'을 상영키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피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그해 10월2일경 실수비(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예술을 가장한 이념과 정치성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다이빙벨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김기춘 조윤선의 공소장에서 밝혔다. 이 같은 지시를 받은 당시 조윤선 정무수석(피고인)은 그 무렵 신동철 정무비서관, 정관주 소통비서관 및 정무수석실 소속 행정관 등에게 영화 '다이빙벨' 상영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고 전했다.

‘저명 보수 문화인의 기고, 시민단체의 활동 등을 통해 비판적 여론을 형성하도록 하라’

‘국회 교문위 여당 간사를 통해 국감장에서 상영의 문제점을 성토하도록 하라’

‘부산 국제영화제의 영화 다이빙벨 상영관의 전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하여 일반 시민들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상영 후 이를 폄하하는 관람평을 게시토록 하라’

‘부산 의원들을 통해 부산시장에게 영화 상영에 대해 항의토록 하라’

‘해외 공관이나 시민단체를 지원하여 상영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준비하라’

‘대응방안에 대한 액션 플랜을 마련하여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토록 하라’

상영 직전부터 영화가 상영되지 않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이상호 대표기자는 “권력이라는게 훨씬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짐작은 했지만 영화 한편을 막기 위해 저토록 정권의 무게를 싣고 진행한 줄은 몰랐다”며 “(과거 고발뉴스가 취재했던) MB 당시의 ‘압살 전략’을 해외공관이나 지방정부까지 한층 연장-강화시킨, 그야말로 독재치하의 문화압살 행태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가지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배에 취재차 동승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가지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배에 취재차 동승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청와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예정대로 상영되자 김기춘 피고인 등은 2014년 10월23일경 본격 개봉을 앞두고 열린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실수비)에서 ‘영화 다이빙벨 상영과 관련해 대관료 등 자금원을 추적하여 실체를 폭로하라’고 지시했다고 특검은 전했다. 이 같은 지시를 받은 피고인 김소영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은 문체비서관실 행정관을 통해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과 사무관 등에게 ‘다이빙벨 상영이 예정된 영화관의 현황과 그 영화관들에 영진위의 영화기금이 지원되었는지 여부 등 상황을 파악하여 교문수석실로 매일 보고하라, 영화 다이빙벨이 상영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특검은 밝혔다.

결국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는 시민단체로부터 다이빙벨 상영 요청을 받고도 문체부 과장과 사무관의 지시로 상영요청을 거부했다. 또한 롯데시네마와 CGV 등 일반 상영관조차 일절 배정받지 못했다.

이상호 기자는 “롯데시네마와 CGV는 물론이고 메가박스에서도 배정받지 못한 것은 당연히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본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하지만 기왕에 특검 조사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향후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멀티플렉스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 부분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영화계와 다이빙벨 제작팀은 상영을 막은 정부에 대해 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다이빙벨 상영을 막은 것과 관련해 조윤선 피고인측 변호인은 ‘잘못된 정보가 알려지고 상식에 어긋나는 여론 형성을 막기 위한 것’, ‘다이빙벨을 허망하게 시도하다 구조 시점을 놓친 사실에 대한 상당히 많은 논란과 의혹이 있었고, 다이빙벨 의혹은 언론인들의 허위 주장에 근거한 것임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요구한 것도 청와대나 정무수석실이 아닌 유족들이었다’고 주장했다고 뉴스1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허구의 주장으로, 다이빙벨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라며 “구조 시점을 놓친 것은 해경이 현장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를 논란과 의혹으로 왜곡해 증폭시킨 것은 정부의 지원을 받던 인터넷 매체들이었다”고 반박했다.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요구한 게 유족들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 기자는 “저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단원고 학생 유족이 아닌, 일반인 유족 중 그것도 극히 일부가 영화도 보지 않으신 상태에서 ‘중단’을 요구했는데, 정작 영화제에서 다큐를 본 뒤는 별문제가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청와대나 새누리, 이들의 사주를 받은 극우단체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가족들이 반대하는 다이빙벨 상영을 중단하라’는 주장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누구의 말을 듣고 기자회견까지 열어 ‘중단’ 요구를 했는지, 이 과정에 청와대나 정무수석실 쪽의 작업이 개입되지는 않았나 의심하고 있다고 이 기자는 주장했다.

김기춘 등의 공소장에 의하면, 일부 영화관 상영이 끝난 이후 피고인 조윤선 정무수석은 2014년 11월 경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결과 등 진행 상황을 보고서로 정리해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 등에게 보고했다. 이후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포함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교문수석실과 문체부는 일부 예술전용관에 대한 지원중단,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 방침을 정하여 실행에 착수했다. 

▲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직권남용)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달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직권남용)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달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피고인 김상률 교문수석, 피고인 김소영 문체비서관 등은 문체부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영진위 지원금 전액 삭감을 지시했으나 ‘일거에 전액을 삭감하는 경우 영화계의 심한 반발이 우려된다’는 영진위 등의 의견을 반영해 2014년 14억6000만 원에 달하던 지원금을 2015년 8억 원으로 삭감 조정하기로 했다. 또 김상률 교문수석과 김소영 문체비서관 등은 김종덕 문체부 장관 등을 통해 영진위로 하여금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영화나 영화관 등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했으며 정부 비판 특정 영화·영화관·영화제 등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했다고 특검은 상세히 기록했다.

이상호 기자는 “과거로 따지면 3족을 멸하는 식인데 영화와 영화관, 영화제라고 했으니 사실상 대한민국 모든 영화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한 것”이라며 “최소한의 저항기제가 작동한 MB와 달리 이번에는 무참히 쓸어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남 인터뷰 사건을 내부고발했다가 끝내 MBC에서 쫒겨나 영화계에 발을 들인 이상호 기자는 “영화계라는 낯선 곳의 문간방을 얻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가 내홍에 휘말리고 다이빙벨을 틀어준 전국의 작은 극장들이 경영난에 처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며 “어디에서나 죄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저야 각오한 것이지만, 영화와 함께 했던 분들이 다치는 모습을 지켜보는건 힘든 일이었다”며 “시네마달은 다이빙벨 배급을 맡아 저와 전국을 다니며 고생한 회사인데. 그곳도 한마디로 탈탈 털렸다”고 전했다. 최근 시네마달 살리기 스토리펀딩이 시작되기도 했다.

독립적 결정을 해야할 영진위의 심사위원회가 청와대 지시를 그대로 이행한 것을 두고 이 기자는 “청와대의 오더를 받고 특정 예술인의 지원배제를 관철시켰다면 당장 해체되야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며 “원점에서 영진위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해봐야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는 “20여년 고발기자 생활을 해오면서 진실은 느림보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며 “팽목항에서 정부의 언론플레이에 주류 언론들이 놀아나는 걸 보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던 것도 그런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그는 “충분한 시간과 조직을 가지고 박근혜-이명박 정권 시절 이뤄진 문화계 전반의 적폐에 대해 철저히 규명하고 바로 세우는 노력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며 “다이빙벨과 관련해 추가로 베를린영화제가 저희와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교환하면서 다이빙벨 상영을 추진하다가 막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한 배경도 밝혀졌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수사에서 드러난 범죄사실과 재판으로 인해 자신과 다이빙벨,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등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는지에 대해 이 기자는 “진실규명이 아직 멀었다”며 “철저한 진실규명 이후 충분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JTBC의 경우 다이빙벨 보도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징계를 받은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인 대표에 대해 이 기자는 “개인돈 1억5000만 원을 들여 구조하러 왔다가 두 번 쫓겨나고 마지막 2시간 잠수 성공했지만 실패로 매도되고 또 쫓겨났다”며 “이후 정부로부터 일거리를 받지 못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지난해 여름에는 수십년된 잠수장비를 비롯해 알파잠수 공사 시설이 불에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기자는 영화 ‘대통령의 7시간’ 제작과 관련해 “완성됐다”며 “공개 시점과 방법을 놓고 해외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곳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 실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보유하고 있는 잠수장비 다이빙벨. 사진=이치열 기자
▲ 실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보유하고 있는 잠수장비 다이빙벨.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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