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의 증언은 '삼성의 거짓말'을 반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정유라를 알지 못했다' '대통령 지시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노 전 부장은 이를 반박하는 다수 정황들을 증언했다.

노 전 부장은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재용 등 5인의 삼성그룹 뇌물공여 사건' 제10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5시간 여에 달하는 신문에 임했다.

▲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2017년 2월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2차 변론기일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2017년 2월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2차 변론기일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노 전 부장은 특검 조사에서 '삼성이 정유라 승마 지원에 나설 당시 삼성은 정씨가 최순실씨의 딸이란 점을 몰랐을 리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노 전 부장은 2015년 8월26일 삼성전자가 최씨의 독일 주재 회사 '코어스포츠'와 213억 원 대 용역계약을 최초 체결한 때 코어스포츠 측 실무자로 일한 적이 있다.

노 전 부장은 당시 정유라 승마지원을 도운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와 이 부회장이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노 전 부장이 2015년 8월 경 정씨 승마지원을 위해 박 전 전무와 독일에 머무르면서 그로부터 "이재용 부회장도 승마선수였다. 나랑도 아는 사이다. 부회장이 되고나서 '이 부회장님'이라고 부르니, (이 부회장이) '선생님 왜 그러세요' 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었다는 것이다. 노 전 부장이 "삼성에서 참 큰 결심한 것 같다"며 "어떻게 승마에까지 큰 금액을 지원했냐"고 물으니 박 전 전무가 말한 이야기였다.

이 부회장은 경복고 3학년 때부터 승마를 시작해 대학 재학 중인 1989년부터 1992년 경까지 한국 승마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이 부회장은 1989년 제2회 아시아승마선수권대회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전무는 삼성전자 측에서 계약 성사를 책임진 박상진 사장이 2015년 4~5월 경 정유라씨의 임신 사실을 물어본 적이 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증인으로 나온 최아무개 승마선수는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2013년 경부터 정씨가 최씨와 정윤회씨의 딸이라는 사실이 승마계에 풍문으로 퍼졌다고 밝혔다.

노 전 부장은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보도된 박관천 경정의 발언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를 언급했다. 노 전 부장은 "당시 언론의 화제이자 토픽이었다"며 삼성은 최순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삼성전자와 박 전 전무 및 승마계에 대한 관계를 고려할 때 이 부회장이 2014~2015년 경까지 정씨와 최씨의 존재를 몰랐을리가 없다는 게 노 전 부장의 주장이다.

"박상진 사장은 날 보더니 사색이 됐다"

노 전 부장은 박상진 사장이 2016년 1월18일 K스포츠재단 현판식에서 자신을 보자 사색이 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각각 코어스포츠측과 삼성전자측 계약 담당자로 8월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5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등 1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5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등 1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노 전 부장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돼 박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코어스포츠 노승일입니다'라고 인사하니 얼굴이 사색이 됐다"며 "얼굴색이 변하셨다. 왜 놀랐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계약 체결 사실을 극소수만 알고 있었는데 증인이 인사해서 놀란 거냐'는 특검 측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씨는 이후 그에게 '혹시 박상진 사장에게 인사를 했냐'고 물었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던 노 전 부장은 '없다'고 답했다. 최씨는 그에게 '행동 조심하고 다녀라'고 말했다.

노 전 부장은 '좋은 일'을 숨기는 태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전폭적인 승마 지원은 "승마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만드는 좋은 일이고 삼성에서 홍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박 전 전무가 '최순실이 본인과 삼성이 만나는거 발견되면 문제가 커진다'고 말했다고 전해줬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2015년 12월 노 전 부장에게 "삼성에서 받은 돈은 다 돌려줬고 독일 (계약) 건은 다 정리했다"며 "곧 있으면 애들도 다 들어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노 전 부장은 '승마단 지원이었지 정유라 1인 승마 지원이 아니었다'는 삼성 측 주장도 부인했다. 그는 박 전 전무가 자신에게 "정유라 혼자만 지원받으면 문제가 커진다. 다른 선수들을 뽑아 들러리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누가 계약 체결을 서둘렀는지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린다. 노 전 부장은 삼성 측이 계약을 서둘렀다는 입장이다.

그는 박 전 전무, 최씨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박 전 전무가 최씨에게 '삼성에서 계약을 8월 안에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보고하는 걸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는 '코어스포츠'가 설립되기 전으로 삼성전자가 계약상대방이 없음에도 계약체결부터 서둘렀다는 얘기가 된다.

노 전 부장은 "세계 일류기업 삼성이 반도체 생산을 못해내는 곳에 하청을 주는 경우나 마찬가지"라며 "(코어스포츠는)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삼성에서 조금만 살펴봤다면 이 계약은 안했을 것"이라 말했다.

회사 설립과 재무 업무 전담을 부탁받은 노 전 부장은 2015년 8월11일 독일로 출국해 보름도 채 지나지 않은 8월26일 삼성전자 측과 213억 원대 계약을 체결했다.

거침없는 증언 "지금 재판보도도 삼성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느냐"

노 전 부장은 증인신문 중 갑자기 삼성 측 변호인단과 이 부회장을 바라보며 "이재용 부회장께 여쭤봐도 돼요?"라고 말했다. '삼성이 계약서 초안을 자발적으로 보내준 것이 아니'라는 변호인 측과 공방전을 벌인 끝에 한 말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계약을 서두르는 또다른 근거로 2015년 8월18일 삼성전자가 먼저 계약서를 보낸 사실을 들었다. 그는 "우리 쪽에서 서두르면 우리가 만들어서 요청해야 하는데, 삼성 측에서 계약서를 만들어 준 것"이라며 "스포츠매니지먼트 대행사인 우리가 계약서를 작성해 논의해야 하는데 삼성에서 먼저 만들어서 준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전 부장은 '삼성은 이런 계약서 많이 갖고 있으니 박원오가 샘플을 보내달라 한 게 아니냐'는 변호인단 질문에 "그건 샘플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어 삼성측 변호인단이 '포스코가 최순실 영향력으로 결국 저자세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이 자금 지원한 건 대통령 독대 때 질책 당해서란 걸 아느냐'라고 질문하자 노 전 부장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직접 질문을 요구했다.

그는 "선수를 보내고 육성할 곳이면 누가 소유하고 누가 임대했는지는 확인해야 하는데, 계약서만 확인해도 최순실 개입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사전조사만 좀 했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이 여기에 앉아있지도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 전 부장은 또한 "2015년 12월 한국에 들어와서 삼성과 최순실 관계를 알리려고 했지만 고영태가 나에게 하는 말이 '지금 정권은 언론 장악 힘이 대단하다. 너가 죽을 수 있다'고 했다"면서 "그때는 박 대통령 언론장악이 어마어마할 때 아닌가. 지금 재판(보도)도 삼성에게 유리하게끔 언론이 많이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앞서 최씨를 다룬 언론 보도가 적기 때문에 삼성그룹 측이 보도를 보고 최씨를 파악할 수는 없다는 논지를 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